우리 다 잘 나왔다며. 왜 너만 잘 나왔냐
우리 다 잘 나왔다며. 왜 너만 잘 나왔냐
이다해가 현지 스태프의 스타일링과 사진 보정을 거치면서 자신에게도 낯선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사진 속 내가 낯선 경험.
연예인이 아니어도 해볼 수 있다.
친구가 찍어준 원본을 받으면 된다.
가령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남자가 있다.
밥 먹고 단체사진을 찍는다.
“그냥 찍어. 남자들끼리 뭘.”
아주 시원시원하다.
아직 사진을 안 봤으니까.
집에 가는 길에 단톡방에 사진이 올라온다.
확대한다.
“야, 내 얼굴 왜 이래?”
“왜? 잘 나왔는데.”
친구가 눈이 나쁜가.
사진을 더 확대해본다.
눈은 내가 나쁜 것 같다. 확대할수록 불리해진다.
찍을 때는 분명 턱을 당겼다.
턱이 하나 더 생겼다.
당기라는 게 이런 뜻은 아니었는데.
“이거 카메라가 좀 이상한 거 아니냐?”
“다른 사람은 괜찮잖아.”
그게 제일 이상하다고.
평소에는 사진 고르는 사람들을 보고 생각했다.
똑같은 사진을 왜 저렇게 오래 보지?
지금 보니 다 다르다.
이건 눈이 작고, 저건 배가 나오고, 이건 웃는 게 좀 그렇다.
친구들은 전부 비슷하게 잘 나왔다.
나만 기복이 심하다.
아니, 나만 보고 있어서 그런가.
명리에서 정관은 나를 극하면서 음양이 다른 기운이다.
갑목에게 신금이 정관이다.
규칙이나 직책뿐 아니라, 남들 앞에서 처신을 가다듬고 체면을 지키려는 쪽으로도 읽는다.
잘 나온 사진 한 장 찾는다고 정관이 강한 사주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남에게 보여줄 나’를 검사하는 마음은 이런 작용을 떠올리게 한다.
밥 먹을 때는 편했다.
그 편했던 모습이 사진으로 남으니 불편해졌다.
특히 회사 사람들도 보는 곳에 올라가면 곤란하다.
평소에는 꽤 침착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데
이 사진에서는 고기 추가를 기다리는 사람으로만 보인다.
실제로 기다리긴 했다.
그렇다고 그 순간을 대표로 뽑을 필요는 없지.
“다른 사진 없어?”
“서른 장 올렸잖아.”
그중 한 장을 찾았다.
눈도 뜨고 있고, 턱도 하나다.
“이게 제일 자연스럽네. 이걸로 올려.”
“나는 눈 감았는데?”
이제야 친구 얼굴을 본다.
정말 감고 있다.
옆 친구는 말하는 중이고, 끝에 있는 놈은 반쯤 잘렸다.
“야, 원래 이런 게 추억이지. 너무 완벽하면 재미없어.”
불과 5분 전까지 원본 폐기를 요구하던 사람이
갑자기 추억의 소중함을 안다.
결국 친구가 자기 사진 한 장씩 골라서 보내라고 한다.
각자 잘 나온 얼굴로 합쳐주겠단다.
좋은 친구다.
기술은 이렇게 사람 사이를 평화롭게 하는 데 써야지.
수정본이 왔다.
넷 다 잘 나왔다.
다만 나는 고기를 기다리고, 옆 친구는 건배하고,
다른 놈은 식사를 마친 얼굴이다.
한 장 안에서 저녁을 세 번 먹고 있다.
그래도 이게 낫다.
사진이 올라가자 다른 친구가 댓글을 단다.
“너희 왜 이렇게 어색하냐?”
답한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래.”
우정에는 문제가 없다.
얼굴끼리 처음 만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