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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할수록 소문이 커지는 사람

sean··읽음 16
해명할수록 소문이 커지는 사람

진짜 오해는 해명이 안 된다.

말솜씨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나와 상대 사이에 높이가 맞지 않는 무언가가 있고, 그 어긋남이 말을 먹통으로 만든다.

아무리 설명해도 풀리지 않는 오해를 받고 있다면, 내 안의 어떤 부분이 보통을 벗어나 있을 가능성이 크다.

보통을 벗어났다고 해서 더 높다는 뜻은 아니다. 대부분은 그냥 드물다는 뜻이다. 다들 비슷한 이유로 비슷하게 움직이는데, 나 혼자 다른 이유로 움직이는 경우다.

문제는 드문 사람이 자기가 드물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오래 같이 지내 보면 알게 되지만, 그만큼 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흔한 경우에 나를 대입해서 읽는다.

읽고 끝나면 다행이다. 잘못 읽은 해석을 들고 와서 나를 고치려 들고, 가르치려 들고, 그게 안 되면 싫어하고 따돌린다.


하루 열네 시간 일하는 여자

이런 사람이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십수 년, 그동안 하루 열네 시간 안팎을 일했다. 일로는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만큼 잘나간다.

회사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저렇게까지 하는 건 정상이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추측이 시작됐다.

집에 빚이 있어서 돈이 급한 거 아니냐.

윗선이 뭘 약속해 준 거 아니냐, 둘이 무슨 뒷거래가 있는 거 아니냐.

부모를 안 모시는 걸 보니 집안에 큰 문제가 있을 거다.

저러고 사니 남편은 분명 바람이 났을 거고, 이혼 직전일 거다.

급기야 정신과에 한번 가 보라고 권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소문은 한동안 회사를 돌았다. 본인도 다 알았다. 그래도 해명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없어요. 할 일이 아직 많거든요. 하고 싶은 말은 하라죠."

결과는 이랬다. 그녀가 너무 담담했기 때문에, 소문은 "저 사람 이상하다, 분명 뭔가 있다, 우리 다 쟤 싫어해"로 굳었다.

사실은 단순했다. 원래 기운이 넘치는 체질이고, 하루 네 시간만 자도 멀쩡하고, 하는 일이 좋아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한 사람씩 붙잡고 "저 원래 네 시간만 자도 되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담담함도 남의 화를 돋운다.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흔들어 보려던 쪽이 더 약이 오른다.


해명을 해 봤다

그녀도 결국 한 번은 풀어 보려고 했다.

빚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에둘러 말했다. "저는 돈 관리를 꽤 하는 편이라 형편은 늘 괜찮았어요. 빚은 통제가 안 되잖아요. 그런 건 안 해요."

그 사람은 사무실에서 언성을 높였다. 손가락이 그녀의 코앞까지 왔다.

"지금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내가 못 알아들을 줄 알아? 그래, 나 빚 있다, 왜! 갚을 능력 되거든!"

빚이 있는 건 그녀가 아니라 그 사람이었다.

집안에 문제가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저 어릴 때 정말 행복했어요. 부모님이 제 선택을 늘 존중해 주셨고, 이 일도 좋아서 하는 거예요. 부모님은 오빠랑 사셔서 제가 따로 챙길 일이 별로 없어요."

그 사람은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옮겼다. 새로운 뒷말이 한 바퀴 돌았다. 꼬리에는 이런 말이 붙었다.

"덮으려는 거지. 알 사람은 다 알아."

남편이 바람났다고 믿는 사람에게.

부부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했다. "저희는 서로 많이 아껴요. 다만 드러내는 걸 안 좋아하고, 남들 앞에서 티 내는 것도 안 좋아해요. 각자 공간이 있는 조용한 생활이 좋아서요. 남편이 나중에 바람을 피울지는, 그 사람 됨됨이를 믿어요. 정말 그런 날이 오면 그것도 받아들이고 깔끔하게 헤어지겠죠."

그 사람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머, 굳이 나한테 부부 얘기는 왜 해. 남의 집 사정은 그 집 사람만 아는 거지. 좋은 말은 누구나 하잖아~"

해명은 세 번 다 실패했다. 한 번은 싸움이 됐고, 한 번은 새 소문이 됐고, 한 번은 비웃음이 됐다.

그녀는 지쳐서 말했다. "이제 해명 안 해요. 안 돼요. 피곤해 죽겠어요."

틀린 판단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그녀에게 달아 놓은 백 가지 주석은,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그 사람들 자신의 이야기였다.

빚이 있는 사람은 빚을 봤다. 남의 집안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집안을 봤다. 자기 부부 사이가 불안한 사람은 남의 부부에게서 불안을 봤다.

남을 해석하는 말만큼 자기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말도 없다.


평소에는 없던 악이 한순간에 붙는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 사람들이 원래 악한 사람들은 아니다. 집에 가면 좋은 부모이고, 친구에게는 의리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 안의 어떤 욕망 하나가 건드려지면, 평소 생활에는 없던 악이 튀어나온다. 한 번의 마주침, 한 번의 눈빛, 별일 없던 어느 날의 행동 하나에 불이 붙는다.

열네 시간을 일하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나는 왜 저렇게 못 하나"를 건드린다. 그 불편함이 견디기 싫으니 이유를 만든다. 저 사람은 빚이 있어서, 뒷거래가 있어서, 마음이 병들어서. 그래야 내가 덜 초라하다.

도가에서는 이런 일을 수행의 시험으로 본다. 남의 악이 내 앞에서 불붙는 순간, 내 안의 무엇이 같이 불붙는지를 보는 시험이다.


메추라기는 붕새를 비웃는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큰 새 붕(鵬)이 나온다. 바람을 타고 구만 리를 올라 남쪽 바다로 간다. 그걸 보고 늪가의 메추라기가 웃는다.

斥鴳笑之曰 彼且奚適也 我騰躍而上 不過數仞而下 翱翔蓬蒿之間 此亦飛之至也 而彼且奚適也

"저건 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나는 뛰어올라 봐야 몇 길 못 가서 내려앉고, 쑥대밭 사이를 날아다니지. 날 수 있는 건 이게 끝인데, 저건 대체 어디로 가겠다는 거야?"

메추라기가 나쁜 새는 아니다. 자기가 날아 본 높이가 하늘의 전부인 새일 뿐이다.

쑥대밭이 세상의 끝인 새에게 구만 리를 설명할 방법은 없다. 붕새가 아무리 친절하게 말해도, 메추라기 귀에는 잘난 척으로 들린다.

내 쪽에서 보면 내 삶은 입체다. 배경이 있고, 층이 있고, 돌아 돌아 걸어온 길에서 쌓인 것들이 있다. 그런데 상대에게 건너가는 건 그 입체를 얇게 썬 단면 한 장이다.

내가 걸어온 길을 몇 마디로 남의 머릿속에 다시 넣어 줄 방법은 없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상대는 자기가 가진 틀로 받는다. 틀이 작으면 말이 안 들어간다.

말도 마찬가지다. 말은 대부분의 사람이 겪는 일을 담으려고 만들어진 그릇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겪어 보지 않은 것을 그 그릇에 담으면 모양이 일그러진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려고 할수록 "말로 하는 순간 이미 그게 아닌데" 하는 답답함만 커진다. 듣는 쪽도 내 말 전체를 받지 않는다. 자기가 받고 싶은 부분, 자기 눈에 보이는 부분 한 점만 골라서 받는다.

열네 시간 일하는 사람이 "저는 이 일이 좋아요"라고 말해도, 듣는 사람이 일이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다면 그 말은 거짓말 칸으로 분류된다.

들어갈 자리가 없는 말은 버려지거나, 들어갈 자리가 있는 다른 말로 바뀐다. "돈 때문이겠지." "뭔가 숨기겠지."


사람은 남의 사주도 자기 글자로 읽는다

판을 오래 들여다보면, 사람은 남을 볼 때도 자기 사주에 있는 글자로 읽는다는 걸 알게 된다.

열네 시간 일하는 이유를 두고 사람들이 붙인 해석을 십신(十神)으로 옮겨 보면 이렇다.

붙인 해석깔고 있는 글자그 사람에게 일이란
빚이 있어서 돈이 급하다정재(正財)일한 만큼 받아 살림을 꾸리는 것
윗선과 뒷거래가 있다정관(正官)자리와 인정을 얻는 것
한몫 크게 노리는 거다편재(偏財)기회를 잡아 크게 버는 것

셋 다 일 바깥에 목적이 있다. 일은 수단이고, 보상은 다른 데 있다.

그런데 그녀가 서 있는 자리는 다른 글자다.

식신(食神): 하는 것 자체가 보상이다

식신은 먹고 마시고 노는 글자이면서, 재주를 펼치는 글자다. 식신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일은 밥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다 보면 시간이 가고, 하고 나면 배가 부르다.

이 사람에게 "왜 그렇게까지 해?"라고 물으면 대답이 궁하다. 왜 밥을 먹느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재나 정관이 앞에 선 사람에게 이 감각은 설명이 안 된다. 그쪽에서 보면 대가 없이 열네 시간을 일하는 건 셈이 맞지 않는 일이고, 셈이 맞지 않으면 숨겨진 셈이 있다고 본다.

편인(偏印): 설명을 건너뛴다

편인은 남들이 가는 길로 생각하지 않는 글자다. 남다른 방식으로 알고, 남다른 방식으로 판단한다.

편인이 강한 사람은 오해를 받아도 해명보다 침묵을 고른다. 어차피 말해 봐야 안 통한다는 걸 일찍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침묵이 바깥에서는 "뭔가 있다"로 읽힌다. 그녀가 처음에 아무 말도 안 했을 때 소문이 더 굳은 것도 같은 이치다.

상관(傷官): 맞는 말이 남의 아픈 데를 찌른다

상관은 드러내어 말하는 글자다. 상관이 강한 사람은 잘못 읽히는 걸 오래 참지 못한다. 결국 입을 연다.

문제는 상관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확한 말이 하필 상대의 아픈 곳을 정확히 짚는다. "빚은 통제가 안 되잖아요"라는 한마디가 빚 있는 사람 귀에는 정면 공격으로 들린다.

상관이 해명을 하면 오해가 풀리는 대신 적이 하나 는다.


오해는 고장이 아니다

오해는 고쳐야 할 고장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값이다. 드문 쪽에 선 사람이 내는 통행료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통행료는 누구나 어느 한 구간에서는 낸다.

남이 아직 받아 들지 못하는 무언가를 들고 있다면, 일단 내 손으로 꽉 쥐고 있으면 된다.

그건 남이 이해해 줘서 확인되는 물건이 아니다. 내가 계속 그렇게 살아서, 살아 낸 것으로 확인되는 물건이다.

도덕경 41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下士聞道 大笑之 不笑 不足以爲道

"모자란 선비는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 웃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도 부족하다."

비웃음을 사지 않는 길이라면, 그다지 드문 길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 여자는 지금도 하루 열네 시간을 일한다. 소문도 여전히 돈다.

둘 중 어느 쪽이 먼저 지칠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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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4
  • 염화소녀_(구)남궁현자·· (수정됨)

    찐 실화입니다. 실제: "이 대리가 요즘 한달에 야근을 50시간한데요" 소문1: 이 대리가 야근비로 대치동 아파트를 샀데. 소문2: 이 대리가 야근비로 명품을 샀데요. 소문을 들은 이대리: 실제로 상욕을 하면서 소문의 근원인 사람과 싸우려 했으나 참았음...ㅋ (이 싸움으로 더 부풀려질까봐)

    • sean·

      뭐. 그런 세상이죠. 인간이 젤 무서움 ㅋㅋ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

  • 潤潤 (윤윤)·

    수많은 오해를 받고도 맘대로 생각하라며 대응없이 담대하게 넘기던 선배는 알고보니 편인이 발달했던 분이었더라구요. 절절히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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