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업트럭은 용달차가 아니야...
친구가 이사를 한다고 했다.
너 픽업트럭이 있다며 좀 도와달라고 한다. 픽업트럭은 오프로드에서 즐기려고 산건데... 이것 용달차 아닌데
“작은 짐 몇 개만 옮기면 돼.”
갔더니 작은 짐이 많았다.
하나하나는 작았다.
인생 전체가 작은 상자에 나뉘어 담겨 있었다.
두 번 왕복했다.
책장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잡고 서 있었다.
친구가 감동한 표정으로 말한다.
“역시 너밖에 없다.”
그 말을 들으니 허리가 조금 덜 아픈 것 같았다.
기분 탓이었다.
세 번째 상자를 들자 정확히 요추뼈 4,5번이 다시 아팠다.
저녁에 친구가 피자를 시켰다.
도미노 피자 였다. 그런데, 리센느 포카는 지가 가져간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며칠 뒤 연락이 왔다.
“이번 주말에 중고 책상 가지러 가는데, 네 차면 들어가겠지?”
내 차의 적재 공간은 언제 알아본거냐?
내 주말은 오프로드를 위해서 있는건데???
어렵다고 했더니 답이 온다.
“왜? 어디 가?”
어디 안 가면 내가 이삿집 운행해야 하는 모양이다.
차량 등록은 내 이름인데 배차는 친구가 한다.
내가 잘해줬다는 사실이, 상대도 내 사정을 헤아려줄 것이라는 보증은 아니다.
도움을 받으면 다음에는 부담을 줄여주려는 사람이 있다.
“지난번에 고생했으니까 이번에는 업체 부를게.”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반대로 도움을 받은 뒤, 앞으로도 쓸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다.
용달을 부를까. 돈 들 잖아.
아니다. 걔한테 연락하면 된다. 픽업트럭있는애.
그 놈 휴대폰에서 내 이름은 지워지고, 무료 이삿짐 센터로 기록된다.
나는 우정이 깊어졌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이사 비용이 줄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부탁하는 사람이 전부 계산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에 흔쾌히 도와줬으니 이번에도 괜찮을 것으로 여겼을 수 있다.
그래서 한 번 말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는 못 도와줘. 지난번에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들었어.”
"허리도 아펐고"
그다음 반응에서 보이는 것이 있다.
“아,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네.”
이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친구끼리 그것도 못 해줘?”
이렇게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친구끼리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친구의 거절도 친구끼리 받아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이상하게 우정의 의무는 늘 운전하는 쪽에 생긴다.
명리에서 인성을 이해와 보호의 작용으로 읽으면, 상대의 사정을 한 번 더 받아주는 마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비겁에서는 함께하고 힘을 보태는 관계를 볼 수 있다.
그 마음이 실제 생활로 옮겨오면 재성의 몫도 생긴다.
내 시간.
기름값.
체력.
미뤄둔 일정.
여자친구와 데이트
마음이 좋아서 시작했어도 이것들은 실제로 사용된다.
친구가 “고맙다”고 했다고 기름통이 다시 차지는 않는다.
게다가 픽업트럭이 얼마나 기름 잡아 먹는데
이놈의 호르무츠 해협
이넘의 트럼프
그런데 너까지?
기름 채우라고 2만원주냐? 그거 몇킬로미터 갈수 있다고?
관성의 역할과 기준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디까지 맡기로 했는지.
추가되는 일은 다시 물어보는지.
못 한다고 했을 때 누가 다른 방법을 찾는지.
나를 존중하는지는 칭찬할 때뿐 아니라, 내 몫을 남겨놓는지도 봐야 한다.
“너는 일을 정말 잘해.”
좋은 말이다.
그다음에 보너스 이야기가 나오는지, 다른 사람 일까지 내 자리로 오는지도 볼 일이다.
“너는 마음이 넓어.”
이 말도 좋다.
그런데 내 마음이 넓다는 이유로 상대의 짐이 계속 들어오면, 어느 순간 창고가 된다.
마음에 평당 임대료라도 붙여야 하나 싶다.
물론 말로 하면, 평생 "쪼잔한 놈" 딱지가 붙을수 있으니, 속으로 삭혀야 한다.
물론 나도 살펴볼 부분이 있다.
알아서 고마워하겠지.
나중에는 나를 먼저 챙기겠지.
그런 기대를 품으면서 계속 괜찮다고만 했을 수 있다.
상대가 몰랐다면 이제 알리면 된다.
알고도 무시한다면 다음 부탁을 다르게 받으면 된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상대가 악인이라는 판결까지 받아올 필요는 없다.
물론 악인일수도 있고, 뱀파이어일수도 있다. 악덕 사장일수도 있고,,,
“나는 이번 주말에 쉬려고.”
쉬는 일은 짐을 옮기는 일보다 덜 중요한 일정이 아니다.
달력에 장소가 안 적혀 있다고 빈 시간이 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내게 잘해주는 사람의 비용도 볼 수 있어야 한다.
태워줬다면 돌아가는 길이 멀어지지는 않았는지.
도와줬다면 밥도 못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로는 괜찮다고 해도 다음 부탁은 다시 물어야 한다.
내가 편해진 만큼 누가 더 움직였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친구가 다시 연락한다.
“용달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비싸네.”
지난번 내가 해준 일이 얼마짜리였는지 이제 견적이 나왔다.
“그러게. 옮기는 것도 일이더라.”
잠시 뒤 답이 온다.
“그럼 네가 해주면 내가 밥 제대로 살게.”
밥은 좋아한다. 한우 1++ 사주는건가? 그럼 생각이 달라질수도 있지,,
하지만 이번 주말은 쉬고 싶다.
“이번에는 업체 불러. 밥은 다음에 같이 먹자.”
친구가 묻는다.
“아무것도 안 해주는데 밥은 먹겠다고?”
그제야 알았다.
나는 친구랑 밥 먹은 줄 알았는데, 지난번 피자는 이삿짐비였구나. 그럼 리센느 포카도 줬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