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은 끝났는데, 머릿속에서는 아직 2차 중이다
모임에서 별말을 안 했다.
잘 지냈냐고 해서 잘 지냈다고 했고.
요즘 뭐 하냐고 해서 그냥 지낸다고 했다.
나 "i"라고 좀 그만 말 걸어.. 생각한다. 물론 입밖으론 못 내보냈다.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한다.
너무 성의 없었나?
잘 지낸다고 하니까 민수가 살짝 웃던데.
내가 잘 지낼 리 없다는 뜻인가?
그 웃음은 혹시 나에 대한 관심? 나 남자 안좋아하는데,,,
택시 안에서 대화를 다시 돌린다.
샤워하면서 다른 각도로 돌려서 본다.
누워서는 민수의 표정만 확대한다.
모임에서는 말 세 마디 했는데.
혼자 돌아와 감독판 영화를 만들고 있다.
독백도 붙고, 상대방의 숨겨진 스토리도 나오고, 상영 시간이 계속 늘어난다.
이런 사람에게 누군가 말한다.
“네가 사람을 너무 잘 봐서 그래.”
"너 촉이 좋잖아."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나는 낯을 가리는 줄 알았는데 인간관계 감별사였구나.
역시 "편인"
아싸
그런데 잠깐.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과, 그 변화의 이유를 정확히 아는 것은 다른 일이다.
민수가 웃은 것은 봤다.
왜 웃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내 말이 우스웠을 수도 있고.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을 수도 있고.
그냥 웃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가장 기분 나쁜 해석이 주연을 맡는다.
다른 가능성들은 대사도 못 받고 퇴장한다.
왜? 좋은 의미로 해석해 버리면, 의심할게 없고, 곱씹을게 없잖아?
명리에서 편인은 익숙한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빠진 부분과 이상한 낌새를 붙잡는 작용으로 읽어볼 수 있다.
다들 넘어간 한마디가 걸린다.
왜 굳이 저 말을 했지?
아까와 말투가 다른데?
그 말을 할때, 손가락이 떨리던데, 눈은 옆을 보면서,
이것이 도움이 되면 남들이 놓친 질문을 한다.
하지만 의심만 커지면 관찰한 것보다 추측한 것이 많아진다.
물론 "촉"은 틀리는 법이 없다.
“요즘 잘 지내?”
여섯 글자를 받았는데.
그 사람의 질투와 열등감, 숨겨진 의도까지 139438번 검토한다.
난 닥터 스트레인지인가봐... 속으로 좋아한다.
정작 질문한 사람은 집에 가서 발톱 깎고 잔다.
분석당하는 사람보다 분석하는 사람이 더 고생한다.
괜찮다.
예언자가 되려면, 이 정도 쯔음이야.
편인의 촉이 도움이 되려면, 촉이 틀릴 자리도 남아 있어야 한다.
다음 날 민수에게 연락이 왔다.
“어제 반가웠어. 다음에는 좀 더 이야기하자.”
그럼 어제의 추측을 고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읽으면 끝이 없다.
어제 티가 났으니까 오늘 수습하나???
왜 오늘 달라붙는 옷을 입고 나왔지?
차갑게 굴면 역시 수상하다.
잘해주면 갑자기 왜 잘해주나 싶다.
이 정도면 상대는 어떻게 해야 무죄가 나오는지 안내문이라도 받아야 한다. 물론 상대방은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지 모르니까,,,
그렇다고 내가 느낀 불편함을 전부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남을 은근히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다른 자리에서 웃음거리로 쓰는 사람도 있다.
그걸 잡아낼때의 쾌감으로 의심하는것 아니겠나
다만 한 번의 표정과 반복되는 행동은 나누어 봐야 한다.
웃는 얼굴이 찜찜했는가.
아니면 그 사람이 실제로 내 말을 여러 번 왜곡했는가.
뒤의 일이 반복됐다면 거리를 조정할 이유가 있다.
눈빛 해독 자격증을 딸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또 말을 잘하고 분위기를 맞추는 사람이 아무것도 못 보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자랑을 시작했을 때 다들 모르는 척 듣는다.
나는 혼자 생각한다.
저 사람들 정말 순진하네.
그런데 옆 사람이 귓속말한다.
“알아. 그 이야기 세 번째야. 빨리 끝내야 고기 먹지.”
나만 알아본 줄 알았는데.
저쪽은 이미 알아보고 식사까지 챙기고 있었다.
식상의 표현이나 재성의 현실적인 판단이 함께 쓰이면, 알아차린 뒤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도 고를 수 있다.
모든 모순을 그 자리에서 폭로할 필요는 없다.
넘겨도 될 것은 넘기고, 내게 영향을 주는 것은 확인한다.
보통 식신용신자는 맛있는 것으로 해결한다. 먹으면 고민이 사라진다.
관찰이 많아도 행동을 고르지 못하면 머릿속 회의만 길어진다.
회의비는 내가 낸다.
주로 잠으로 결제하면 좋다.
불면증으로 결제하면, 손해 * 손해다.
다음 모임에서는 조금 다르게 해본다.
궁금한 것은 하나 물어본다.
대답이 짧다고 바로 미움받았다고 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불편한 말이 나오면 그 말에 대해 묻는다.
돌아오는 길에도 생각은 난다.
아까 그 표정은 무슨 뜻이었을까?
아직 모르겠다.
오늘 안에 알아내야 하는 일도 아니다.
잠시 플러그를 뽑아야 한다.
휴대폰에 단체 사진이 도착했다.
확대하려다가 멈춘다.
친구 표정은 그만 보고, 배경은 그만 보고, 손가락, 손톱, 발의 위치, 입은 옷, 사진의 조명.... 이것 분석이 자동으로 되서 힘들다.
일단 내 눈 감긴 사진부터 내려달라고 해야겠다. 그런데, 왜 여기에 민선이가 좋아요 눌렀지? 민선이는 무엇을 보고 좋아요 누른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