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을 했는데, 왜 내 인생이 불합격이지?
소개팅 상대의 사진을 받았다.
예쁘다. 말도 차분하게 할 것 같다. 성격도 좋을 것을 확신한다.
원래 이쁘면 성격이 좋다고 하더라.
이런 천사를 만나게 되다니...
연애 운 있다는 펀역앱 말이 맞았던가?
사진에는 성격이 안 찍혔는데 벌써 확인했다.
직업도 들었다. 내가 이름을 아는 회사다. 상여금 겁나 받는다던데,
갑자기 더 이뻐 보이고, 하늘이 내린 인연인것 같다.
이 여자를 만나려고, 내가 아직 솔로구나 생각한다. 대화도 잘 통할 것 같다. 아직 대화는 안 해봤지만,,,
친구가 묻는다.
“어때?”
“일단 만나봐야지. 외모만 볼 수는 없잖아.”
"내가 얼굴만 보는 남자는 아니잖아."
사진을 확대하면서 대답한다.
약속 날, 평소보다 옷을 오래 고른다. 상대가 마음에 들면 잘 보이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아니 소개팅 가면서, 대충 입고 가면, 그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벌써 4시간24분 째 매너를 위해 노력 중이다.
나는 신사인가봐...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잖아.
그런데 옷을 갈아입으면서 논게 아니다. 미래를 계획했다.
이런 사람이 나를 좋아하면, 나도 제법 괜찮은 남자라는 뜻 아닌가. 다음 모임에 같이 가면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
첫 고백은 어디서 하지? 꽃은 뭘 살까?
반지는 어디서 사야하지? 다이아몬드 요즘에 가치 떨어졌다던데
결혼식은 어디서 할까?
하객 초청장 , 아는 친구 시켜서 반값에 찍고
현우 이 놈에게 결혼 사진 찍으라고 하고
사촌형의 친구의 오빠의 사촌동생이 가수 누구의 매니저의 친구라는데, 그 가수를 섭외해서 축가를 불러야 겠다.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 결혼 준비를 마치고, 신혼 여행지를 고르기 시작한다.
카페에서 만났다.
상대가 웃으며 인사한다. 사진보다 더 마음에 든다. 사실 사진 보정버전인가? 긴가민가해서 완전 안심하진 않았다.
빛이 보인다.
진짜 신이 준 선물인가 보다.
이 사람은 참 따뜻하네.
나도 방금 웃었다. 침 흘린것 상대방은 못 알아차린것 같다.
대화를 하다 주말에 무엇을 하는지 물었다.
“거의 누워 있어요. 배달 시켜 먹고요.”
나도 그렇게 지낸다. 그런데 이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쉬는 것이고, 나는 빈둥거리는 것이다. 얼마나 힘들면 주말에 누워 있을까?
상대가 다니는 회사가 미워진다.
그래 배달 시켜 먹을수 있다. 뭐 해먹는것은 시간낭비에 재료 낭비일수도 있다.
혼자 머릿속에서 같은 행동의 등급을 다르게 매긴다.
살짝 의견이 다른 이야기도 나왔지만, 내가 잘못된 것으로 하기로 하고, 고치기로 맘 먹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 마음이 넓은 남자로 살기로 했다.
집에 와서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친절하다. 다시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약속을 물었더니, 좋은 분이지만 더 만날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는 답이 왔다.
하늘이 무너졌다.
갑자기 내가 작아진다.
일 이야기를 너무 했나. 옷이 별로였나. 차를 바꿔야 하나...? 친구 차 빌려올껄 그랬나? 아까 침흘린것 들켰나?
한 사람이 다음 만남을 원하지 않았는데, 내 생활 전체가 점검 대상이 됐다.
상대의 선택이 아쉬운 것과, 그 선택으로 내 가치를 판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상대도 자신의 취향과 사정으로 만났을 것이다. 예의 있게 웃었을 수 있고, 대화는 괜찮았지만 끌리지는 않았을 수 있다. 나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연애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는데...
그런데 내 차례가 되니 그 구분이 잘 안 된다.
그리고 계속 생각한다.
좋은 분이지만,,
좋은 분이다.
좋다.
무언가 사정이 있을거야
말못할 사정
내가 좋은 사람이라잖아. 역시 이쁜데 사람 보는 눈도 있네 ...
명리에서 관성의 기준과 평가를 의식하는 작용이 연애에서도 드러날 수 있다.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에, 그 사람에게 선택받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붙는 것이다. 비겁의 비교까지 들어오면 “나보다 어떤 남자를 만나려는 거지”라는 생각도 생긴다.
이때 살펴볼 것은 그 사람의 조건만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확인받고 싶었는지도 봐야 한다.
함께 있을 때 편했는가.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었는가. 아니면 마음에 들도록 답을 고르는 데 바빴는가.
상대를 알아가려는 자리에서 나를 합격시키려고만 했다면,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은 여전히 적을 수 있다.
친구에게 결과를 이야기한다.
“그 여자도 좀 눈이 높은가 봐.”
이 말을 하고 조금 편해진다.
아까까지 좋은 회사에 다니는 멋진 사람이었다. 나를 안 만나겠다고 하니 눈이 높은 사람이 됐다.
사진 한 장으로 올려놓았다가 메시지 하나로 내려놓는다. 상대는 그 사이에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안하면, 내가 힘드니까
완벽한 사람으로 올려놓지 않는다는 것이, 거절한 사람을 깎아내리는 일은 아니다.
좋은 점도 있고 내게 맞지 않는 점도 있는 사람으로 알아가는 것이다. 예뻐서 끌릴 수 있다. 좋은 조건이 반가울 수도 있다. 그 마음을 전부 없앨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조건이 상대의 성격과 우리 관계까지 대신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며칠 뒤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분이랑 잘 맞을 것 같은 친구가 있는데, 소개해줘도 되겠지?”
상관없다. 서로 선택하는 것이니까. 나도 이제 그런 것은 안다.
“어. 괜찮아.”
대답하고 잠깐 기다린다.
친구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
나는 다시 묻는다.
“근데 누구?”
친구가 이름을 말한다.
사진이 생각난다.
“걔가 나보다 뭐가 나은데?”
"너 중간에 이상한 이야기한 거 아니야? 내 결혼 상대를 그 따구에게 소개한다고? 너 정신 나간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