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려고 쓴 장문인데, “보고 싶어”에 전부 지웠다
친구가 연애를 시작했다.
만난 지 2주 됐는데 이번에는 다르다고 한다.
“말이 너무 잘 통해.”
“이렇게 잘 맞는 사람 처음이야.”
“전생에 알던 사이 같아.”
"만나는 순간, 아 이 여자를 만날려고"
"빛이 보이더라니까"
지난번에도 전생 이야기를 했다.
이놈의 빛은 맨날 보인다. 그러게 왜 역광에서 만나고 지랄이야?
전생에 인간관계를 꽤 넓게 한 모양인데, 좋겠다.
그런데, 어째 다 악연이냐?
물론 속으로 생각했다...
한 달 뒤에는 전화가 온다.
답장이 없다고 한다.
“어제까지는 잘 자라고 하트도 보냈는데.”
같이 메시지를 본다.
하트는 있다.
오늘의 답장은 없다.
친구는 지난 대화를 위로 올린다.
잘해줬던 부분을 찾아서 보여준다.
“봐.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야.”
현재의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 자료를 제출한다.
좋았던 날은 캡처가 있다.
기다린 날은 너무 많아서 따로 저장하지 않았다.
처음에 얼마나 강하게 끌렸는지와, 지금 어떤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지는 따로 봐야 한다.
주말에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다.
금요일 밤까지 장소도 시간도 정해지지 않았다.
물었더니 답이 왔다.
“이번 주는 힘들 것 같아. 미안.”
화가 났다.
이번에는 말해야겠다고 한다.
이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맞냐고? 물어보겠단다.
왠지 상처 받을것 같다.
내가 보기엔 별관계 아닌것 같은데
그런데 상대가 덧붙인다.
“너는 나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친구의 말투가 달라진다.
“많이 힘들어?”
“내가 너무 재촉했나?”
약속이 취소됐는데.
취소한 사람을 위로하고 있다.
통화를 끝내고 내게 말한다.
“그래도 나한테는 힘든 이야기를 하잖아.”
서운할 이유를 찾다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증거를 하나 더 찾았다.
좋겠다.... 탐정하라고 해야겠다.
명리에서 인성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쪽으로 작용하면, 상대의 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그런데 이해가 반복해서 내 판단을 덮는 데 쓰이기도 한다.
바빠서 그렇다.
상처가 있어서 그렇다.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다.
이유는 점점 정교해진다.
약속은 계속 흐려진다.
전통적으로 관계를 살피는 한 축인 관살과 인성의 연결을 생각할 때도, 상대에게 마음이 쏠리고 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관인상생이라는 이름만으로 사랑받는 관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의 인물처럼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는 힘이, 자기 불편함을 계속 뒤로 미루는 데 쓰이는지도 살펴야 한다.
친구에게 물었다.
“그 사람 사정은 알겠는데, 네 사정은 그 사람이 알아?”
잠깐 조용해진다.
알 것이다.
아마 알 것이다.
내가 말을 안 했지만 눈치가 있으면 알 것이다. (사실 뭐 인성과다/편인보유자는 이런 경향이 강하다.)
내가 말 하지는 않지만, 넌 다 알아야 해.
"촉"없는 인간들은 다 죽으란 이야기냐? ??
다시 생각해보니.
내 사정까지 설명하면 상대가 더 힘들까 봐 말을 안 했다.
나는 왜 이리 선량하지? 잠시 감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상대는 힘들어도 된다.
나는 이해해야 한다.
둘 다 힘들면 관계가 안 굴러가니까, 내가 괜찮은 쪽을 맡았다.
누군가의 사정이 이해된다고, 내가 계속 같은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설렜으면 악연이고, 심심하면 정연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래 떨어져 지낸다고 관계가 틀린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반복되는 행동이다.
약속을 못 지키면 다시 잡는가.
내가 서운하다고 말해도 대화가 가능한가.
한 사람이 계속 기다리고 설명하고 양보해야만 이어지는가.
설렘의 크기로 이 질문을 대신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이런 일을 겪었다고 내가 부족해서 나쁜 사람을 끌어당겼다고 할 필요도 없다.
상대의 행동은 상대가 책임질 일이다.
내가 돌아볼 것은 다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기다릴 것인지다.
친구도 안다고 한다.
이번에는 정말 정리하겠다고 한다.
정리만 당해본 놈이,,,, 말은 늘 지가 정리한다고 한다.
메모장에 글을 쓴다.
약속을 기다리며 비워둔 주말.
말하지 못했던 서운함.
계속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지 않았던 순간.
꽤 길다.
다 쓰고 나니 조금 후련하다고 한다.
마지막 문장까지 적었다.
“이런 관계는 더 이상 원하지 않아.”
그때 메시지가 온다.
“보고 싶어.”
"지금 시간되? "
친구가 화면을 본다.
방금 쓴 글을 다시 읽는다.
보내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 같다.
상대도 먼저 마음을 표현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전체 선택을 누른다.
삭제한다.
“나도.”
곧 전화가 온다.
친구는 나와의 통화를 끊으며 말한다.
“일단 이야기 좀 들어보고.”
나는 안다.
오늘도 그 사람의 사정은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정은 무엇이든 간에, 친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난 친구의 하소연을 또 2주를 더 들어야 한다.
챗지피티에게 하소연 하면 잘 들어준다고, 속여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