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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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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다음 주인데, 서운함은 벌써 도착했다

친구가 말한다.
“나는 이상하게 생일만 가까워지면 싸워.”

작년에는 식당 예약 때문에 싸웠다.
재작년에는 선물 때문에 싸웠다.
올해는 아직 아무 일도 없는데 벌써 기분이 좋지 않다.

“왜?”
“다음 주가 내 생일인데 아무 말이 없어.”
“생일 주간인데!!"

아직 일주일 남았다.
그런데 친구에게는 겨우 일주일 남았다.

상대가 묻는다.
“생일에 뭐 하고 싶어?”

친구는 대답했다.
“그냥 같이 있으면 되지.”

말은 그렇게 했다.
같이 어디에 있을지는 조금 중요했다.

집은 아니었으면 좋겠고.
평소에 가는 국밥집도 아니었으면 좋겠고.
분위기가 있었으면 좋겠고.
깜짝 이벤트도 있었으면 좋겠고
꽃도 있으면 좋겠고
바다도 좀 보면 좋겠고
장소 예약도 상대가 했으면 좋겠다.

같이 있기만 하면 된다.
조건에 맞는 곳에서.

선물은 필요 없다고도 했다.
정말 꼭 필요한 것은 없다.

그런데 필요 없는 것을 받고 싶을 때도 있는 것 아닌가.
내가 갖고 싶었지만, 아까워서 못 사던 것이 선물 아닌가?
그게 필요한 것은 아니지...
필요한 것은 내가 이미 다 샀다.

기념일에는 하루의 일정뿐 아니라, 내가 이 사람에게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어갈 수 있다.

평소에는 넘어갔다.
답장이 늦어도 바쁘겠지 했다.
약속을 미뤄도 피곤하겠지 했다.
데이트 장소를 매번 내가 골라도 내가 잘 찾으니까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일이 다가오니 계산이 달라진다.

이날 정도는.
이번 한 번쯤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일년에 한번 있는 날인데
이 날 없었으면, 나 못만났는데

생일 케이크에 초만 꽂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참았던 기대도 꽂는다.

초는 18개면 되는데. 그렇다. 18살 이후 영원히 18살이다.
기대는 한강에서 불꽃 축제를 해야 할 기세다.
불을 붙이기도 전에 뜨겁다.

상대가 정말 생일을 잊었다면 서운할 수 있다.
함께하기로 해놓고 아무 말 없이 약속을 바꿔도 그렇다.

그런데 기억하고 있다는 것과, 내가 기대한 방식으로 준비한다는 것도 같은 일은 아니다.

친구들이 기억해준다고, 친구들이 파티해준다고
남자도 꼭 그래야 하냐?

상대는 케이크를 주문했다. 이런것 잘 못해서, 연구하는데 오래 걸렸다. 인공지능 여러개에게 물어보고 주문한 거다.
나는 식당도 예약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는 갖고 싶다던 내 취향이 아닌 디자인의 물건을 샀다.
지난 번에 몰라서 상품권을 줬더니, 성의가 없다고 싸워서다.
덜 로맨틱 하지만, 이 놈은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르니, 교육 겸
나는 함께 고르러 가는 시간을 기대했다.

둘 다 생일을 생각했다.
서로 다른 생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명리에서 인성의 돌봄과 이해를 바라는 마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내 말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요즘 지쳤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줬으면 한다.

그 마음이 커질 때는 직접 말하는 일이 조금 서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내가 다 말하면 무슨 의미가 있어?”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말로 하면 요구하는 것 같잖아.
그런데 정확히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다.
그게 사랑 아닌가?
그게 관심 아니냐고?

눈치껏 고르되 취향은 틀리지 말 것.
놀라게 해주되 싫어하는 것은 하지 말 것.
놀라게 해달랬다고, 어두운데 숨어있다가 "왁"하지 말라고,
애 떨어진다.
부담 갖지 말되, 성의는 충분히 보일 것.
내가 집을 사달란것도 아니고, 집은 부담 되지,
자동차를 사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상대는 생일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출제 중이다.
시험 범위는 공개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것은 반갑지만, 말하지 않은 기대가 전부 상대의 의무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매번 설명해야만 움직이는 관계의 피로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작년에도 말했다.
비싼 선물보다 미리 시간을 잡아주면 좋겠다고.
당일에 “뭐 할까?”부터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올해도 당일 오후에 묻는다.
“그래서 오늘 뭐 먹을래?”

이때 서운한 것은 식당 하나를 못 정해서만은 아니다.
말했던 것이 남아 있지 않은 느낌이다.

한 번 취향을 잘못 짚은 것과, 여러 번 말한 바람을 계속 가볍게 넘기는 것은 나누어 봐야 한다.

또 날짜 하나만으로 마음 전체를 판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당일에 함께하지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대신 시간을 정하고, 연락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챙길 수도 있다.

친구들과 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누군가
못 온다는 말 뒤에 무엇이 이어지는지를 볼 일이다.

“그날은 어려워. 토요일에 같이 보내자.”
“미안. 바빠.”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상을 치르러가야 해."

셋 다 당일에는 못 온다.
그다음은 다르다.

관성의 약속과 책임이라는 관점에서는, 거창한 행사를 했는지보다 합의한 것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보인다.

누가 시간을 내는지.
일정이 바뀌면 먼저 알려주는지.
못 지킨 약속을 다시 잡는지.

꽃다발이 작다고 약속이 작은 것은 아니다.
꽃다발이 크다고 지난 석 달의 잠수가 자동으로 취소되는 것도 아니다. 잠수부냐? 폐활량 더럽게 좋네

꽃은 생생하다.
관계는 아직 확인할 것이 있다.

생일이 더 복잡해지는 순간도 있다.
나보다 생일이 일주일 빠른, 내 친한 친구의 SNS를 봤을 때다.

고급 부띠크 호텔.
호텔 방안을 가득 채운 꽃들
또 거기 가득한 선물 상자.
접시에 초콜릿으로 적힌 이름.
생일 주간이라고, 매일 어떤 사람들과 생일 파티를 했는지?
이날은 고교동창들과 파자마 파티
다음날은 대학 친구들과
다다음날은 가족과
다다다음날은 직장동료들과

댓글들이 달린다.
“사랑받는 여자네.”
"부럽다"
"얼굴도 이쁜데, 성격도 좋은 가봐요."

갑자기 내 생일에도 평가 항목이 생긴다.
즐거웠는가보다, 올릴 만한가가 궁금해진다.

비겁의 비교하는 시선이 붙는 장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나도 축하받았다.
밥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친구의 사진을 보고 나니 내가 받은 것이 조금 작아 보인다.
"나는 사랑 받지 못하나?"
"내가 못생겼나?"
"내가 살이 쪄서?"

아까까지 좋았던 케이크가 갑자기 동네 빵집 케이크가 된다.
맞다.
원래 동네 빵집에서 샀다.

먹을 때는 맛있었다.
비교하고 나니 출신 성분이 마음에 걸린다.
내가 하찮아지는 기분이다.

상대가 묻는다.
“아까는 좋다며?”

좋았다.
그런데 아까는 친구가 올린 사진을 보기 전이었다.

식상의 표현과 즐거움을 살려 함께 웃고 먹던 시간에,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끼어든다.
내가 받은 기쁨보다 남이 받을 부러움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물론 나도 그런 줄은 몰랐다.
나는 원래 물질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솔직히 물질적인것을 원한게 아니다.
"성의"
"진심" 을 원했다.

다만 사진에 선물 상자가 조금 나왔으면 하는 것이다.
상표가 보이는 방향으로. 그래야 진심이 느껴지니까

기념일을 잘 보냈는지와, 남에게 잘 보일 기념일이었는지는 다른 질문이다.

생일 즈음 다퉜다고 곧바로 악연이라고 이름 붙일 필요도 없다.
생일이 나쁜 관계를 자동으로 걸러주는 날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생일만 잘해주는 놈 만난다.

기대가 커지는 날에는 평소에 넘기던 차이가 더 또렷해질 수 있다.
그 차이를 이야기하고 조정하는 관계도 있고, 매번 같은 자리에서 서로를 탓하는 관계도 있다.

명리를 살피더라도 원국과 운의 조건을 함께 보아야 한다.
생일 며칠 전에 싸웠다는 사실 하나로 인연의 정체를 판정할 수는 없다.

“생일 전에 헤어지는 것은 하늘이 걸러주는 거래.”
이런 위로 하는 인간들 뇌를 살펴봐라...
그러고는 자기들은 잘 산다.

위로가 될 수는 있다.
그런데 매년 무엇을 기대했고, 무엇을 말했고, 상대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지 않으면 내년에도 하늘이 바빠진다.

하늘도 일정이 있을 텐데.
내 연애 정산을 매번 맡기기는 좀 그렇다.

친구에게 물었다.
“그래서 올해는 뭐 하고 싶은데?”

친구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둘이 저녁 먹고, 좀 걸었으면 좋겠어. 휴대폰 안 보고.”
물론,,,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그 이상 이야기하면, 속마음을 이야기하면, 속물된 기분이라서

그 정도라면 말해도 되지 않을까.

친구도 안다고 한다.
다만 말하고 나면 시켜서 받은 것 같을까 봐 싫단다.

이해는 된다.
선물을 받는 기쁨과, 내가 말한 선물을 정확히 배송받는 기쁨은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래도 상대가 내 마음을 얼마나 맞히는지만 기다리면, 생일 전 일주일을 혼자 채점하며 보내게 된다.

친구는 메시지를 쓴다.

“이번 생일에는 저녁 같이 먹고 산책하고 싶어. 식당은 네가 골라주면 좋겠어.”

보내고 나니 조금 후련하다.
이번에는 원하는 것을 말했다.
숨은 조건은 니가 찾아봐.... 숨은 그림 찾기 좋아한다면서

답이 왔다.

“좋아. 예약할게.”

잘됐다.
친구도 웃는다.

그러다 휴대폰을 다시 든다.
메시지를 하나 더 쓰려다가 지운다.

내가 묻는다.
“왜?”

친구가 작게 말한다.

“근데 저녁 먹고 산책하자고 했다고, 진짜 그것만 하면 어떡하지?”

아직 선물은 필요 없다는 말이 유효한 상태다.

친구는 갖고 싶은 가방 사진을 찾아 프로필 배경으로 바꾼다.

이번에는 분명히 말했다고 생각하면서.

♡ 좋아요 6
이 주제, 내 사주로

글로 익힌 원리를 본인 명판에 직접 적용한 정밀 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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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4
  • 절제와행복·

    읽은후 피곤한데 사실 몇개는 제가 하던짓인듯요

    • sean·

      왜 피곤하세요? ㅋㅋ

    • 절제와행복·

      글만 봐도 유투브처럼 막 영화장면으로 재생 소리가 막 들려요 내면의 그 서운함의 독백이 상대입장되면 아 .. 피곤할듯요

  • 익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