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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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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애를 하고 있는 걸까, 다음 기회를 결제하고 있는 걸까

친구가 묻는다.
“둘이 사귀는 거야?”

대답하려다가 잠깐 멈춘다.

밥은 여러 번 먹었다.
생일 선물도 줬다.
늦게 끝나는 날에는 데리러 갔다.
노트북이 고장 났다고 해서 알아봐줬고, 이사할 때도 도왔다.

그런데 사귀느냐고 물으니 설명할 것이 많다.

“아직은 서로 알아가는 중이지.”
“그 사람이 원래 마음을 천천히 열어.”
“전에 연애하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대.”

친구가 다시 묻는다.
“그건 그 사람이 한 말이야?”

일부는 들었다.
일부는 내가 정리했다.
정리가 잘돼서 이제는 어디까지 들었는지 구분이 안 된다.

그날 밤 메시지가 온다.

“오늘 진짜 고마웠어. 너밖에 없다.”

오늘 둘 사이 거리가 1센티 가까워진 기분이다.

기분이 좋아진다.
아까 친구가 한 질문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너밖에 없다는데.
아직 사귀지는 않지만, 거의 독점적 지위인 것 같다.

다음 날 주말에 만나자고 했더니 답이 온다.
“이번 주는 좀 바빠.”

괜찮다.
바쁜 것은 이해한다.
나도 바쁘다.
현대인 중 안 바쁜 사람이 어디 있나?

다만 나는 그 사람을 만나려고 비워둬서 바쁘지 않아졌지만,
일정은 잡기 마련,,,

관계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는 사실과, 두 사람이 같은 관계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다르다.

남자도 관계에 몰입하면서 판단을 놓칠 수 있다.
그 모습이 반드시 하루 종일 연락을 기다리거나 감정적으로 매달리는 형태만은 아니다.

오히려 아주 실용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필요한 것을 사준다.
불편한 일을 해결해준다.
차를 가져간다.
예약을 한다.
돈이 드는 부분을 맡는다.

겉으로 보면 행동력이 좋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문제는 그 행동으로 무엇을 확인하려 하고 있는가다.

좋아서 해주고 싶은 것인지.
상대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것인지.
이번에 잘해주면 관계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인지.

이 셋은 함께 있을 수 있다.
다만 마지막 기대를 숨긴 채 첫 번째 마음만 있다고 생각하면, 자기 부담을 알아차리기 어려워진다.

“나는 바라는 것 없어.”

그렇게 말하고 집에 와서 휴대폰을 본다.
답장이 왔는지? 계속 메신저를 본다.
이것 서버 다운된거야? 왜 메세지가 없지?
친구가 메세지 보낸다.
하마터면, 카톡 고객 센터에 신고할 뻔 했다.

메시지가 왔다..
말투가 달라졌는지.
하트가 붙었는지.
과거에는 관심없던 이런것까지 챙겨본다.
소심해진다.

바라는 것은 없다더니.
확인할 것은 꽤 많다.

전통 명리에서는 남명에서 재성을 배우자와 이성 관계를 살피는 한 축으로 쓴다.
그렇다고 재성이 곧 특정 여자 한 사람이고, 재성이 강하면 무조건 여자를 좋아한다는 식으로 읽을 수는 없다.

재성에는 내가 다루려는 현실의 대상과 자원, 생활의 몫이라는 의미도 함께 들어간다.
관계에서는 마음이 가는 사람과 실제 생활을 어떻게 연결하려 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 식상의 표현과 산출이 재성으로 이어지는 식상생재의 흐름을 생각해보자.

마음이 움직인다.
무언가 해주고 싶어진다.
내 재주와 시간, 행동으로 상대에게 닿으려 한다.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했다가 예약한다.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가 사놓고, 선물로 준다.
필요한 것을 알아보고 준비한다.
상대의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이런 표현은 관계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좋아하는 마음이 구체적인 행동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식상생재가 있다는 것과, 상대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같은 판단이 아니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힘과 상대가 나를 선택하는 일은 구분해야 한다.
상대는 내 명식 안에서 자동으로 반응하는 글자가 아니다.
자기 마음과 사정, 선택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많이 움직일수록 상대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나는 다음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상대는 지난 도움에 감사하고 있을 수 있다.

나는 관계가 깊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상대는 편하게 부탁할 사람이 생겼다고 느낄 수도 있다.

누가 반드시 거짓말을 하고 있어야만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의미를 같은 장면에 붙이고 있을 수 있다.

“고마워.”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덕분에 살았다.”

좋은 사람이란 단어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진심일 수 있다.
하지만 고마움이 곧 연애 의사는 아니다.

감사의 말을 관계의 약속으로 번역하기 시작하면, 내가 해준 일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현실을 보기 어려워질 수 있다.

처음에는 좋아서 밥을 샀다.
다음에는 지난번보다 좋은 곳을 예약했다.
선물도 조금 더 신경 썼다.

관계가 분명해지지 않으면 멈추어 물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더 잘해주기로 한다.

아직 내 진심을 다 모르나 보다.
내가 더 믿음을 줘야 하나 보다.
한 번만 더 좋은 시간을 보내면 달라질 것 같다.

어느새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는 일보다,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증명하는 일이 커졌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인 것과
연애 감정이 생기는 것
키스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긴 하다.

여기서 비겁의 경쟁이 붙는 장면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른 남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갑자기 내가 원래 하려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

그 사람보다 더 좋은 곳.
더 세심한 선물.
더 빠른 답장.
더 늦은 시간까지 가능한 픽업.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에 지기 싫은 마음이 섞인다.
이게 경쟁인지? 사랑인지 확인하기 전에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본인에게는 전부 사랑처럼 느껴진다.

관계가 편안해지는지보다 내가 밀리고 있지는 않은지가 중요해진다.
상대의 하루를 함께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내 자리가 큰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이럴 때는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이 다른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아도 나는 이 관계를 원하는가.
지금 하는 행동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이 행동 뒤에도 관계가 그대로라면, 그래도 괜찮은가.

마지막 질문에서 마음이 불편해질 수 있다.

괜찮지 않다.
이 정도 했으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 행동에는 기대가 들어 있다.
그 기대를 인정해야 다음 선택도 정직해진다.

기대가 있다는 이유로 잘못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혼자 정한 대가를 상대가 이미 약속한 것처럼 여기면 안 된다.

상대가 분명히 선을 그었는데도 계속 선물을 주며 마음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연애할 생각이 없어.”
“나는 친구로 생각해.”

듣기는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에 밑줄을 긋는다.
친구라는 말보다 앞으로의 가능성이 더 크게 들린다.
아직 기회가 있어

거절을 받은 것이 아니라 대기 번호를 받은 것처럼 살아간다.

반대로 상대가 마음을 알면서도 계속 가능성을 암시하고, 필요할 때만 가까워지는 관계도 있다.
그때는 상대의 행동도 살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나를 이용했다는 판결을 받아야만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관계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거리를 조정할 수 있다.

재성이 관살을 생하는 흐름에서는 관계가 현실의 역할과 책임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살펴볼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실제로 함께 살게 된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돈은 어떻게 쓸 것인가.
일과 휴식은 어떻게 맞출 것인가.
서로의 가족과 어떤 거리를 둘 것인가.
갈등이 생겼을 때 누가 어떻게 풀어가는가.

이 질문은 마음을 식히기 위해 억지로 현실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그 사람과의 생활인지, 그 사람에게 선택받았다는 감격인지 구분하는 데 필요하다.

데이트를 성사시키는 능력과 생활을 함께 꾸리는 능력은 같지 않다.
선물을 주는 일에는 적극적인데, 의견이 다를 때는 대화가 안 될 수도 있다.
서로 좋아하면서도 원하는 생활은 크게 다를 수 있다.

다만 재생관살을 무조건 성숙한 연애로 읽어서도 안 된다.
명식에서 관살이 어떤 역할을 하고, 그 부담을 감당할 조건이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살펴야 한다.

관계에 들인 자원이 현실적인 책임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이미 버거운 관계에 의무만 더해질 수도 있다.

아직 서로 어떤 사이인지도 분명하지 않은데.
상대의 생활 문제를 계속 맡는다.
내 일정은 점점 사라진다.
그런데 나는 책임감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책임은 많이 떠안는다고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 합의한 관계와 역할 안에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 오면 가장 어려운 것이 이미 쓴 시간과 돈이다.

지금 물러서면 그동안 한 일이 전부 헛된 것 같다.
조금만 더 하면 달라질 수도 있는데, 여기서 그만두는 내가 성급한 것 같다.

하지만 계속한다고 지난 지출의 의미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시간과 돈이 더 들어갈 뿐일 수도 있다.

사람을 좋아했던 시간을 실패라고만 부를 필요는 없다.
내가 어떤 말에 기대하고, 어떤 순간에 자기 기준을 놓치는지 알게 됐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배운 것이 있으니 계속 수업료를 낼 필요도 없다.

자기 생활을 다시 살핀다는 것은 일부러 차갑게 굴거나 연락을 끊어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라는 뜻이 아니다.
밀고 당기기로 주도권을 되찾으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번 주에 내가 원래 하려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약속 때문에 무엇을 계속 미뤘는지.
상대를 만나고 돌아온 뒤 내 마음이 대체로 어떤지.
그것부터 보는 것이다.

그리고 관계에 대해 물을 수 있다.

“나는 친구 이상의 마음으로 만나고 있어. 너는 이 관계를 어떻게 생각해?”

그런데, 상관이 강하다면, 내가 상대를 원하는 이유는 어쩌면 성욕 때문일 수 있다. 그것도 고려에 넣어야 한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 질문은 대답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채로 한쪽의 투입만 계속 커지는 상황을 멈추기 위한 것이다.

상대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도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선택할 수 있다.

기다릴 수 있다.
다만 기다리는 동안 연인처럼 모든 역할을 맡을 필요는 없다.
확실하지 않은 관계를 위해 내 생활 전체를 대기 상태로 두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선물을 같은 금액으로 받는지가 아니다.
연락 횟수가 정확히 반반인지도 아니다.

상대도 먼저 시간을 내는가.
내 사정을 궁금해하는가.
내가 어렵다고 했을 때 받아들이는가.
관계에 관한 대화를 계속 피하지는 않는가.

서로의 형편에 따라 표현의 크기와 방식은 다를 수 있다.
마음을 여는 속도도 다를 수 있다. 식어가는 속도도 다를수 있다.
그래도 관계를 이어가려는 선택이 양쪽에서 나오는지는 살펴볼 수 있다.

처음의 남자는 이번 주말을 또 비워두려다가 멈춘다.
친구와 하기로 했던 운동 약속을 잡는다.

메시지가 온다.
“토요일에 뭐 해?”

반갑다.
심장이 먼저 일정을 취소하려 한다.
아직 상대는 만나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한다.
“오후에는 약속 있어. 왜?”

“가구 보러 가는데 같이 가줄 수 있나 해서.”

예전 같으면 바로 시간을 맞췄을 것이다.
차를 가져가고, 같이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도 좋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먼저 물어보기로 한다.
가구 크기 말고,,, 차에 안들어가면, 예전엔 친구에게 픽업트럭을 빌렸다.
몇 시인지 말고, 과거에는 수시 대기를 했다.

이젠 물어본다.

우리 관계에 관해서...

입이 쉽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대답을 들으면 더는 지금처럼 기대할 수 없을까 봐 두렵다.

그동안 몰라서만 묻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모르는 상태에서는 계속 희망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마음은 소중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보여준 뒤에야, 상대의 마음을 물을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휴대폰을 들고 문장을 쓴다.

“가구 보러 가기 전에, 우리 이야기 좀 할까?”

보내기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잠깐 멈춘다.

가구는 내가 옮길 수 있다.
이 관계까지 혼자 옮길 수 있는지는 이제 물어봐야 한다.

그런데, 두렵다.
이렇게 끝날까봐

메시지를 지우고
다시 쓴다.

"너에게는 언제나 가능해, 무슨 가구 살건데?"

♡ 좋아요 3
이 주제, 내 사주로

글로 익힌 원리를 본인 명판에 직접 적용한 정밀 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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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3
  • 염화소녀_(구)남궁현자·

    꺅... "언제나" ㅋㅋ

  • 절제와행복·

    아 이언 연애는 하면 앙대

  • 익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