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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 하나 고치는데, 남편 인생까지 억울해졌다

냉장고 옆에 선반을 달기로 했다.

남편이 공구를 꺼낸다.
나사도 챙기고 위치도 잡았다.

배우자가 말한다.

“설명서에는 이 부품부터 끼우라는데?”

“내가 이런 걸 한두 번 해봐?”

설명서는 식탁 위에 놓인다.

잠시 뒤 선반이 기울었다. 물건을 올리면, 아마 떨어질것이다.

벽이 이상하다고 한다.
나사가 싸구려라고 한다.
요즘 물건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아까 그 부품부터 넣었어야 하는 것 아니야?”

이제 선반 이야기는 끝났다.

“당신은 내가 하는 일마다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선반을 고치려다가 남편의 자존심을 먼저 수리해야 한다.

와이프는

이런 사람을 고집이 세다고 생각한다.

말이 안통한다고 생각한다.

왜? 저러지?

그런데 자세히 보면, 단순히 생각을 안 바꾸는 문제만은 아니다.

물론 명리학적으로 보면, 보통 비겁과 때론 비겁과 상관의 조합이 저런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잘못된 부분을 고치자는 말을, 자기 위치를 낮추는 말로 듣는다.

부품 순서가 틀렸을 수 있다.
전에 쓰던 제품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내용보다 먼저 걸리는 것이 있다.

누가 나에게 알려주느냐.

자기가 찾아내면 좋은 정보이기도 하고, 난 역시 똑똑해!
배우자가 알려주면 잔소리다.
후배가 말하면 건방진 것이다.
자녀가 말하면 아직 세상을 모른다.

정보보다 발신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듣는 내용이 자동으로 수정된다.

이런 사람이 꼭 공부를 못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분야에서 오래 인정받았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때 얻은 권위가 다른 분야까지 따라오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팀장님이다.
혹은 아주 유능한 인간으로 소문 났을수도 있다.
그런데
무선 공유기 앞에서는 비밀번호를 모르는 사람일 수 있다.
직장에서는 임원에 비서에 전용 운전기사를 쓰지만
지하철 앞에서는 지하철 표 사는 법 모르고, 어떻게 타는지 모르는 찌질한 아저씨일 수 있다.

그때는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공유기가 직급을 확인하고 연결해주지는 않으니까.
지하철 개찰구가 자동으로 아이고 임원님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으니까

명리에서 인성(印星)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작용으로 읽는다.

축적한 지식과 경험, 자신을 받쳐주는 익숙한 설명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이 배웠다고 새로 들어오는 것도 잘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배운 것을 지키는 데만 쓸 수도 있다.

새로운 방법을 보면 묻는다.

“그걸 왜 그렇게 해?”

정말 궁금해서 물을 수도 있다.
그런데 대답을 듣지도 않는다면 질문이 아니라 제지하는 거다.
내 방법론을 따르라! 그걸수도 있다.

내가 아는 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미 틀렸다고 정한 것이다.

그래서 인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학습 능력이 좋다고 끝내면 부족하다. 그게 때론 공고한 성이 되서, 내가 아는것 이외의 것은 거부하겠어. 그게 될 수 있다.

쌓아둔 지식이 판단을 받쳐주는가, 아니면 새로 확인할 필요를 없애버리는가.

그 작용을 봐야 한다.

그렇다고 인성이 많으면 고집이 세다고 외우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외우면 지금 설명하는 문제를 그대로 반복한다.

식상(食傷)은 배운 것을 표현하고 실제 결과물로 꺼내는 쪽으로 연결해볼 수 있다.

만들어본다.
예상과 다르다.
확인하고 수정한다.

이 과정이 이어지면 지식이 현실과 만난다.

그런데 결과물이 자기 능력을 증명하는 물건이 되어버리면 수정하기 어려워진다.

선반이 기울었으면 다시 맞추면 된다.

하지만 그 선반이 자기 자존심까지 받치고 있다면?

나사를 풀기가 어렵다.
아까 큰소리친 것까지 같이 풀릴 것 같으니까.

그래서 벽과 제품과 제조사를 차례로 의심한다.

확인할 대상은 늘어나는데, 자기 손으로 바꿀 것은 계속 미룬다.

이런 태도는 작은 부탁에서도 보인다.

“다 쓴 것은 제자리에 좀 놔줘.”

그러면 설명이 시작된다.

오늘 얼마나 피곤했는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평소 자기가 집안일을 얼마나 하는지.
당신도 지난번에 무엇을 안 했는지.

전부 사실일 수 있다.

그래도 지금 충전기는 식탁 위에 있다.

그걸 옮기면 끝날 일이었는데 부부의 기여도를 다시 평가하고 있다.

작은 문제를 작은 상태로 다룰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특히 부부나 연인 사이에서는
핵심 능력에 속한다.

부탁할 때마다 이렇게 되면 같이 사는 사람이 고민한다.

지금 기분은 괜찮나?
앞에 칭찬을 좀 해야 하나?
그냥 내가 치우는 게 빠르겠지?

그러다 말을 안 하고, 그냥 내가 하지 뭐가 되고,
그 결과 "이럴거면 왜 결혼한거지?" 가 된다.

당사자는 관계가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잔소리를 안 하네.”

문제가 없어졌을까.
혼자 처리하는 사람이 생겼을 수도 있다.

지금 인정하기 싫어서 피한 일이, 나중에는 상의할 사람이 없는 생활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차분하게 받아들여야만 성숙한 것은 아니다.

당황하면 변명부터 나올 수 있다.
자존심도 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아까는 내가 괜히 화냈네.”
“그 부분은 내가 잘못 알았어.”
“다시 보자.”

이렇게 돌아올 수 있는가.

기분이 나빴다는 이유로 틀린 상태까지 계속 유지하지 않으면 된다.

반대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로 끝내면 주변 사람만 적응해야 한다.

성격을 설명한 것 같지만, 수정할 계획이 없다는 통보일 수도 있다.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보내면서 말하고 싶을 수도 있다.

“딱 당신 이야기네.”
" 너야 ! 너"

잠깐 기다리자.

선반을 고치자고 했더니 인생 전체가 억울해지는 사람에게, 이번에는 인생 전체를 평가한 글을 보내는 것이다.
성격도 평가하고,
어떤 사람은 "선전포고"로 받아들일수 있다.

물론 글을 공유해주면, 내 입장에서는 고맙지만...

필요한 것은 상대의 수준을 판정하는 말보다 작을 수 있다.

설명을 끝까지 들어달라는 것.
함께 정한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
잘못 끼운 부품을 다시 맞추자는 것.

처음의 남편은 한참 뒤 설명서를 펼친다.

부품 순서가 달랐다.
아까 배우자가 말한 부분이다.

괜히 종이를 한 장 더 넘긴다.

그러다 말한다.

“이걸 먼저 넣는 게 맞네.”

그 한마디면 된다.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이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
이번 선반을 조립하는 순서 하나를 잘못 알았던 것이다.

나사를 풀고 다시 맞춘다.
배우자가 옆에서 선반을 잡아준다.

이번에는 수평이 맞는다.

남편이 설명서를 보며 말한다.

“처음부터 크게 써놓지.”

끝까지 한마디는 남는다.

그래도 고쳤다.

"내가 아까 이미 이야기했잖아." 이건 참자....
참을 인 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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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 내 사주로

글로 익힌 원리를 본인 명판에 직접 적용한 정밀 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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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8
  • 염화소녀_(구)남궁현자·

    ㅋㅋㅋ 남의 일이 아닌...

    • sean·

      누구일인가요?

    • 염화소녀_(구)남궁현자·

      또르르...(먼산)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

  • 퓨어뮤즈·

    하하하하하… 난 상관녀라 그냥 내가 선반 달아도 됌 ㅋㅋㅋㅋㅋ 말로 상처 줄 바엔 직접 해버리는게 어때요? 남성성 상실 시키는건가 …

    • sean·

      남자가 잠시 존재 이유를 생각한다...

    • 퓨어뮤즈·

      결국 지혜가 필요하네요 하하하

  • 익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