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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를 왜 오른쪽부터 적을까: 누운 책과 서 있는 명조

한국 만세력 앱을 열면 명판 오른쪽 끝에 년주(年柱)가 서 있다.

그 왼쪽으로 월주(月柱), 일주(日柱), 시주(時柱)가 차례로 선다. 눈이 늘 하던 대로 왼쪽부터 읽으면 시, 일, 월, 년이다.

중국 대륙의 배반 앱을 열면 반대다. 왼쪽 끝이 년주이고, 오른쪽 끝이 시주다.

같은 사람의 같은 여덟 글자가 두 나라 화면에서 거울에 비친 듯 뒤집혀 있다.


같은 사주, 두 개의 명판

1984년 양력 2월 24일 사시(巳時)에 태어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여덟 글자는 갑자(甲子), 병인(丙寅), 무자(戊子), 정사(丁巳)다.

한국 앱에서는 이렇게 보인다.

시주일주월주년주
천간정(丁)무(戊)병(丙)갑(甲)
지지사(巳)자(子)인(寅)자(子)

중국 대륙 앱에서는 이렇게 보인다.

년주월주일주시주
천간갑(甲)병(丙)무(戊)정(丁)
지지자(子)인(寅)자(子)사(巳)

한국에서 명리를 배운 사람은 첫 시간에 사주는 오른쪽부터 읽는 것이라고 배운다.

중국에서 배운 사람은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냥 왼쪽부터 읽는다.

어느 쪽이 맞는지 따지기 전에, 옛 책 한 권을 먼저 펼쳐 볼 필요가 있다.


옛 책은 오른쪽에서 출발했다

옛 동아시아의 책은 세로로 썼다.

한 줄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고, 줄과 줄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어간다. 책의 첫 장은 지금 책으로 치면 뒤표지 자리에 붙어 있었다.

간지를 적는 일 자체가 오래전부터 그랬다. 거북 껍데기와 짐승 뼈에 새긴 육십갑자 표도 여섯 줄에 스무 자씩 새겨 놓고 오른쪽 줄부터 왼쪽 줄로 읽었다.

명리 책도 다르지 않았다.

명조를 적을 때는 천간을 위에, 지지를 아래에 두어 두 글자씩 한 기둥으로 세웠다. 그 기둥 넷을 본문 줄과 같은 방향으로 늘어놓았다. 첫 줄이 오른쪽 끝이니, 첫 기둥인 년주도 오른쪽 끝에 섰다.

세로 책을 읽는 사람의 눈은 늘 오른쪽 위에서 출발한다. 그 눈으로 읽으면 년, 월, 일, 시다. 한 글자도 뒤집힌 것이 없다.

그러니까 한국 앱의 명판은 옛 세로 책 속 명조의 모양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한국이 거꾸로 적은 것이 아니다. 옛 책의 자세를 아직 지키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 자세를 지키는 동안 종이가 돌아누웠다는 데 있다.


1956년, 대륙의 책이 드러누웠다

중국 대륙에서 가로쓰기를 나라의 회의 자리에 올린 사람은 화교 사업가 천자겅이다. 1950년 전국정협 회의에서 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 쓰자고 제안했다.

1955년 1월 1일 광명일보가 먼저 지면을 가로로 짰다. 그해 가을까지 중앙급 신문 열일곱 가운데 열셋이 뒤를 따랐다. 1956년 1월 1일에는 인민일보가 가로로 바뀌었다. 교과서도 같은 무렵 간체자와 함께 가로로 누웠다.

책이 누우면 눈이 출발하는 자리가 바뀐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위로 간다.

명조도 따라 돌아누웠다. 첫 기둥인 년주가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으로 옮겨 갔다.

여기서 달라진 것은 방향 하나다. 년에서 월로, 월에서 일로, 일에서 시로 가는 순서는 그대로 남았다.

종이눈이 출발하는 곳년주의 자리읽는 순서
세로로 짠 책오른쪽 위오른쪽 끝년, 월, 일, 시
가로로 짠 책왼쪽 위왼쪽 끝년, 월, 일, 시

중국의 명판이 년월일시인 것도, 옛 책의 명조가 오른쪽에서 시작하는 것도 같은 규칙에서 나왔다. 명조는 그 책의 글줄을 따라간다.


대만과 홍콩, 그리고 일본의 책

대만과 홍콩은 대륙처럼 한 번에 눕지 않았다.

대만은 정부 공문서를 2005년에야 가로로 바꿨고, 교과서와 신문은 그 뒤로도 세로 조판을 한동안 지켰다. 홍콩은 200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대부분 가로로 넘어갔다. 일본은 지금도 단행본과 만화를 세로로 짜는 쪽이 주류다.

이 세 곳에서 나온 명리 책은 세로로 짠 것이 많았다. 세로 책이니 그 안의 명조는 당연히 오른쪽 끝이 년주다.

그런데 같은 대만이라도 가로로 짠 명반 사이트를 열어 보면 년주가 왼쪽 끝에 서 있다. 표 머리에 년주, 월주, 일주, 시주가 왼쪽부터 차례로 붙어 있다.

방향을 정한 것은 나라가 아니었다. 그 명조가 찍힌 종이였다.


한국은 책을 눕히고 명조는 세워 두었다

한국도 오랫동안 세로로 썼다.

해방 뒤 한글 교과서부터 가로쓰기가 시작됐고, 공문서는 1960년대 들어 가로로 규범이 잡혔다. 신문은 훨씬 늦었다. 1988년 한겨레가 중앙 일간지로는 처음 가로 지면을 냈고, 1990년대에 들어 다른 신문들이 차례로 따라왔다. 단행본도 1990년대를 지나면서 가로쓰기로 완전히 넘어갔다.

명리 책도 이 흐름을 따라 가로로 누웠다. 그런데 본문만 누웠다.

명조는 세로 책 시절의 그림 그대로 옮겨졌다. 오른쪽 끝에 년주를 세운 채로 가로 페이지 위에 올라앉았다.

여기에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들어온 대만과 홍콩의 명리 책이 한몫을 했다. 한국에서 명리를 깊이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그 책을 교재로 삼았고, 그 책들은 대부분 세로로 짜여 있었다. 세로 책 속의 명조를 보고 배운 사람들이 가로 책을 쓰면서 그 그림을 다시 한 번 굳혔다.

그 뒤에 만세력 프로그램이 나왔다.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은 책 속의 그림을 그대로 화면에 옮겼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명판은 이런 모양이 됐다. 페이지는 가로 시대의 것이고, 명조는 세로 시대의 것이다.

어디서책의 조판년주의 자리글줄과 맞는가
옛 명리 책세로오른쪽 끝맞음
중국 대륙, 1956년 이후가로왼쪽 끝맞음
대만·홍콩의 세로 책세로오른쪽 끝맞음
대만의 가로 명반 사이트가로왼쪽 끝맞음
오늘날 한국가로오른쪽 끝어긋남

표의 다섯 줄 가운데 글줄과 명조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는 곳은 한 곳뿐이다.


한 쪽 안에 흐르는 두 방향

한국 명리 책을 아무 쪽이나 펼쳐 보면 이 어긋남이 바로 보인다.

본문에서는 "갑자년 병인월 무자일 정사시에 태어난 사람은"이라고 쓴다. 왼쪽부터 년, 월, 일, 시다.

바로 아래 표에서는 정사, 무자, 병인, 갑자로 늘어놓는다. 한 쪽 안에서 글은 오른쪽으로 흐르고, 명조는 왼쪽으로 흐른다.

그래서 처음 배우는 사람은 일간(日干)은 오른쪽에서 세 번째 글자라고 외운다. 평생 왼쪽부터 읽어 온 눈에게 이 표만은 오른쪽부터 세라고 가르치는 셈이다.

대운(大運)도 마찬가지다. 첫 대운을 오른쪽 끝에 두고 왼쪽으로 늘어놓는 만세력이 많다. 화면 속의 사람은 나이를 왼쪽으로 먹는다.


그림이 오래 가면 뜻이 붙는다

한 가지 모양이 수십 년 이어지면 그 모양을 설명하는 말이 생긴다.

사주는 뿌리부터 적는 것이라 오른쪽에서 시작한다는 설명이 나오고, 오른쪽은 과거이고 왼쪽은 미래라는 설명도 나온다.

이런 말이 기대는 것은 대개 근묘화실(根苗花實)이다. 년주는 뿌리, 월주는 싹, 일주는 꽃, 시주는 열매다. 조상에서 부모로, 부모에서 나와 배우자로, 다시 자식으로 이어지고, 어린 시절에서 늘그막으로 흘러간다.

이 비유가 말하는 것은 순서다. 뿌리가 종이의 어느 쪽에 있어야 하는지는 들어 있지 않다.

굳이 나무를 그린다면 뿌리는 오른쪽이 아니라 아래에 그린다.

명리 책들이 정해 둔 것은 네 기둥의 순서였다. 종이 위의 방향은 그 책이 어떤 종이에 찍혔는지가 정했다.

방향에 뜻이 있다면, 1956년 이후 대륙에서 나온 명리 책은 전부 사주를 뒤집어 읽어 온 셈이 된다. 그 책들이 풀어 놓은 명조의 판정은 방향 하나 때문에 달라진 적이 없다.


세로 책이 서점에서 거의 사라진 뒤에도, 한국의 명조는 세로 책의 자세로 서 있다.

앱 화면 오른쪽 끝의 년주는 사라진 책장의 첫 줄 자리를 아직 지키고 있다.

그것을 지켜야 할 전통으로 볼지, 이삿짐을 옮기다 방향을 돌려놓지 못한 가구로 볼지는 명판을 여는 사람의 눈이 어느 쪽에서 출발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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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2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

  • 익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