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는 통계로 증명할 수 있을까, 표본이 많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
사주를 통계로 증명하려는 시도는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지금까지 의미 있는 결론에 이른 연구는 없다. 표본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사주의 실제 경우의 수는 흔히 말하는 50만 개를 훨씬 넘고, 같은 명식(命式)이라도 태어난 시대와 정치 체제와 땅에 따라 전혀 다른 삶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통계는 평균을 내는 순간 바로 그 차이를 지운다.
장자(莊子) 추수(秋水)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井蛙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夏蟲不可以語於冰者 篤於時也 曲士不可以語於道者 束於教也.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말할 수 없는 것은 사는 곳에 갇혀 있어서이고,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할 수 없는 것은 제 계절에 묶여 있어서이며, 한쪽으로 치우친 선비에게 도(道)를 말할 수 없는 것은 배운 것에 얽매여 있어서라는 뜻이다. 사주를 통계로 다루려는 시도가 부딪히는 벽도 이 셋, 공간과 시간과 가르침이다.
먼저 숫자부터 보자. 사주는 몇 개나 될까. 년주(年柱) 60개에 월주(月柱) 12개, 일주(日柱) 60개에 시주(時柱) 12개를 곱하면 518,400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녀에 따라 대운(大運)의 순행과 역행이 갈리니 1,036,800개가 되고, 대운이 시작되는 나이인 대운수(大運數)는 다음 절기까지 남은 날짜로 정해지니 대략 1세부터 10세까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원국(原局)을 타고났어도 대운이 2세에 바뀌는 사람과 9세에 바뀌는 사람은 인생의 고비가 찾아오는 시점이 다르다. 이것만으로도 경우의 수는 천만 단위로 올라간다.
60년마다 같은 사주가 돌아온다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 한 달은 30일 남짓이라 그 달 안에는 60개의 일주 가운데 절반 정도만 나타난다. 60년 동안 실제로 존재하는 날은 약 21,900일이니, 년월일의 조합도 그만큼만 실제로 태어난다. 이론상 가능한 조합 43,200개의 절반 남짓이다. 한 번의 육십갑자(六十甲子) 주기 안에서 이론상 사주의 절반 가까이는 아예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사주는 수백 년에 한 번 나타난다. 여기에 진태양시(眞太陽時) 보정과 출생지의 경도, 야자시(夜子時)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학파 간 차이까지 더하면 시주의 경계마저 사람마다 흔들린다.
서양 점성술은 이 문제를 사주보다 먼저, 더 체계적으로 시험했다. 1985년 물리학자 숀 칼슨(Shawn Carlson)은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 이중맹검(double-blind) 실험 결과를 실었다. 점성가들에게 출생 차트를 주고 그 사람의 성격검사 결과를 고르게 했더니 우연히 맞힐 확률을 넘지 못했다. 2003년 제프리 딘(Geoffrey Dean)과 이반 켈리(Ivan Kelly)는 1958년 3월 초 런던에서 몇 분 간격으로 태어난 2,000여 명, 이른바 시간 쌍둥이(time twins)를 수십 년 추적한 자료로 직업, 지능, 불안 성향, 결혼 여부 등 100개가 넘는 항목을 비교했다. 같은 시각에 태어난 사람끼리 닮았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미셸 고클랭(Michel Gauquelin)이 유럽 정상급 운동선수의 22%가 특정 구간에 화성을 두고 태어났다며 내놓은 이른바 화성 효과(Mars effect)는 일반 표본의 17%보다 높다는 이유로 한동안 화제가 됐지만, 미국 선수 표본에서는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한국의 명리 연구는 규모도 설계도 이보다 약하다. 2018년 제주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은 폐업한 자영업자 100명의 사주를 명리 전문가 3명이 각자 분석하게 했고, 93%가 재성(財星)이 약한 사주였으며 71%가 폐업 당시 대운이 흉했다고 보고했다. 언뜻 그럴듯하지만, 폐업하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았으니 보통 사람 중 재성이 약하다고 판정될 비율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 표본은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는 방식으로 모았고, 판정은 세 명 중 두 명이 일치하면 정답으로 처리했다. 신강(身强)과 신약(身弱), 용신(用神)의 판정이 학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다수결로 덮은 셈이다. 이미 2002년에 한 명리 연구가는 사주 유형이 100만 개를 넘는데 이혼 하나를 연구하려 해도 10만 쌍은 봐야 한다며, 명리는 통계학이 아니라고 썼다.
그렇다면 표본을 백만 명, 천만 명으로 늘리면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통계는 많은 경우 표본이 커질수록 오히려 의미를 잃는다. 1950년대 미 공군의 길버트 대니얼스(Gilbert Daniels)는 조종사 4,063명의 신체 치수 10가지를 재서 평균에 맞춘 조종석을 설계하려 했다. 그런데 10가지 치수 모두가 평균 범위에 드는 조종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4천 명이 넘는 사람으로 만든 평균은 실제로는 아무도 아닌 사람이었다. 1973년 UC 버클리 대학원 입학 자료는 전체로 합치면 여성의 합격률이 눈에 띄게 낮았지만, 학과별로 나눠 보면 오히려 여성이 약간 유리했다. 여성 지원자가 경쟁률 높은 학과에 몰렸기 때문이다. 합치는 방식에 따라 결론이 뒤집히는 이 현상을 심슨의 역설(Simpson's paradox)이라 부른다.
명리에 대입하면 이렇다. 같은 재성 두 개라도 어떤 구조에서는 재물이 되고, 어떤 구조에서는 재다신약(財多身弱)이 되어 오히려 짐이 된다. 이 두 무리를 한데 섞어 재성과 재산의 관계를 계산하면 반대 방향의 효과가 서로 상쇄되어 관계 없음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표본을 늘리면 늘어나는 것은 상쇄의 정밀도뿐이다. 명리는 구조를 읽는 학문인데, 통계는 요소를 떼어낸다. 재성의 개수나 특정 신살(神煞)의 유무를 하나씩 떼어 상관을 보는 순간 그것은 이미 명리가 아니다. 투자에서 말하는 에르고딕성(ergodicity) 문제와도 닮았다. 수많은 사람의 평균 수익률과 한 사람이 시간 속에서 겪는 수익률은 다르다. 집단으로 보면 남는 게임도 한 사람이 계속하면 파산하는 구조가 얼마든지 있다.
더 큰 문제는 시대와 체제가 명식을 덮어버린다는 데 있다. 중국에서는 1980년 무렵부터 2015년까지 한 자녀 정책이 시행됐다. 그 시기에 태어난 사람은 사주에 자녀성이 몇 개든 자녀가 한 명이었다. 그 세대의 자료로 자녀운을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후반까지 중국의 대학 졸업생은 국가가 일자리를 배정하는 분배(分配) 제도 아래 있었고, 1968년부터 1980년까지는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으로 1,600만 명이 넘는 도시 청년이 농촌으로 보내졌다. 1966년부터 1977년까지는 대학 입시인 고고(高考) 자체가 멈췄다. 그 시절 사람의 직업과 학력은 재능이나 적성이 아니라 국가가 정했다. 그들의 식상(食傷)이나 인성(印星)을 직업과 대조해 통계를 낸다면, 그것은 명리를 재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재는 일이다.
유리한 사주도 시대마다 바뀐다. 문화대혁명 시기 지식인은 냄새나는 아홉째라는 뜻의 취로구(臭老九)로 불리며 탄압받았다. 인성이 강한 사람에게는 가장 가혹한 시절이었다. 사유재산이 부정되던 때에는 재성이 아무리 강해도 재물로 드러날 길이 없었다. 그러다 1978년 개혁개방과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지나며 공직을 버리고 장사에 뛰어드는 하해(下海) 열풍이 불자, 재성과 식상이 강한 사람들이 비로소 무대에 올랐다. 같은 명식이 불과 20년 사이에 정반대의 평가를 받은 것이다.
한반도는 더 선명한 사례다. 1945년 이후 남과 북에서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사람은 같은 명식을 가졌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출신성분이 직업과 거주지와 혼인까지 먼저 정했다. 같은 시대 안에서도 직업의 의미는 나라마다 다르다. 조선의 의원은 잡과(雜科)를 거친 중인 신분의 기술직이었지만, 지금 한국의 의사는 입시 경쟁의 맨 꼭대기에서 걸러진 고소득 전문직이다. 앞의 경우에는 손재주의 식신(食神)과 남다른 앎의 편인(偏印)이 중심이었다면, 뒤의 경우에는 시험을 통과하는 인성과 면허라는 제도를 상징하는 관성(官星)이 길목을 지킨다. 미국은 학부를 마친 뒤에야 의대에 들어가고, 중국에서는 의사의 대우가 상대적으로 낮고 진료 현장에서 폭력에 노출되는 일이 사회 문제가 되어 왔다. 같은 의사라는 이름 아래 앉은 사주가 시대와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주를 제대로 통계 내려면 명식, 성별, 대운수, 출생 시대, 정치 체제, 지역, 민족으로 칸을 나눠야 한다. 그렇게 나누면 한 칸에 들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거나 한 명뿐이다. 표본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칸이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현장의 임상(臨床)도 이 벽을 넘지 못한다. 술사가 만나는 손님은 이미 여러 번 걸러진 사람들이다. 상담료가 한 번 거르고, 술사가 자리 잡은 동네와 활동하는 매체가 또 거르고, 술사의 말투와 명성이 끌어당기는 층이 다시 거른다. 주역(周易) 문언전(文言傳)의 同聲相應 同氣相求가 말하듯, 술사는 결국 자기 격에 맞는 손님을 만난다. 시장 골목 철학관의 술사가 수십 년 동안 본 명식에는 재벌 총수의 사주가 거의 없고, 재계 인사를 상대하는 술사는 생계가 막막한 사람의 사주를 깊이 들여다볼 일이 드물다. 게다가 사람은 일이 잘 풀릴 때 술사를 찾지 않는다. 막혔을 때 온다. 술사는 남의 인생 가운데 흉한 구간만 골라서 보게 되고, 맞았다고 느낀 손님만 단골로 남는다. 표본 편향(selection bias)과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이 겹친 구조다. 그래서 임상은 일정한 양을 넘어서면 같은 층의 사람을 되풀이해 보는 일이 되고, 그 층에서만 통하는 해석이 법칙처럼 굳어진다.
인공지능은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시장은 이미 빠르게 커졌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5년 12월 운세 앱 점신의 월간 이용자는 약 79만 명이었고, 그중 20대와 30대가 65.6%를 차지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상당수 서비스가 자체 모델이 아니라 해외 대형 언어 모델의 API를 불러 쓰고, 차별점은 A4 서너 장 분량의 지시문과 국내 명리 자료라고 한다. 한자와 동양 전문 자료가 부족해 그럴듯하지만 틀린 답, 이른바 환각(hallucination)이 잦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중국에서도 언어 모델에 생년월일을 넣고 명식을 직접 뽑게 하면 틀리는 경우가 많아, 실제 서비스들은 절기와 진태양시를 정확히 계산하는 별도의 배반(排盤) 엔진 위에 해석을 얹는 구조를 택한다. 지금까지 정확도를 검증해 공개한 AI 사주 서비스는 찾기 어렵다.
인공지능은 송나라 문장과 청나라 주석과 오늘날의 블로그 글을 한 그릇에 섞어 배웠다. 어떤 해석이 어느 시대, 어느 땅의 현실을 전제로 쓰였는지 스스로 가려내지 못한다. 통계가 평균을 내서 구조를 지운다면, 언어 모델은 수많은 해석의 평균을 문장으로 만들어낸다. 그럴듯하지만 어느 한 사람에게도 정확히 맞지 않는 답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반대 방향으로도 읽힐 수 있다. 통계에서 효과가 보이지 않는 것이 서로 상쇄되었기 때문인지, 애초에 효과가 없어서인지는 통계만으로는 가려낼 수 없다. 구조를 읽는 학문이라면 검증도 구조의 단위로, 한 사람의 명식을 놓고 미리 판단을 남겨 두는 방식이어야 할지 모른다.
같은 시각에 태어나 같은 명식을 받은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1966년 베이징에서, 다른 한 사람은 202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명리가 읽어야 하는 것은 두 사람이 함께 가진 여덟 글자일까, 아니면 두 사람이 각자 서 있는 자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