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팔자라는 말을 다시 읽는다: 때, 자리, 가운데, 바름
萬般皆是命 半點不由人
중국에서 오래 굴러다닌 속담이다. 세상만사가 다 명(命)이고, 사람 뜻대로 되는 것은 반 점도 없다는 말이다.
젊을 때 들으면 핑계로 들린다. 시험에 떨어진 사람, 가게를 접은 사람, 술이 세 병째 넘어간 사람이 하는 말 같다.
나이가 들어 다시 들으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주저앉으라는 말보다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먼저 갈라 보라는 말에 가깝다.
명리로 보면 이 속담은 꽤 정확하다.
태어나는 순간 여덟 글자가 정해진다. 원국(原局)이다. 대운(大運)이 어느 방향으로, 어떤 순서로 흐를지도 그때 정해진다.
해마다 들어오는 류년(流年)은 육십갑자 순서대로 온다. 2026년이 병오(丙午)년이면 2027년은 정미(丁未)년이다. 아무리 간절히 빌어도 순서를 건너뛰는 해는 없다.
그러면 반 점도 없다는 말이 맞는가.
주역에는 한 사람의 처지를 재는 네 글자가 있다. 때(時), 자리(位), 가운데(中), 바름(正). 반 점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는 이 네 글자를 펼쳐 보면 보인다.
때(時) 는 언제냐의 문제다. 움직여야 할 때 가만히 있으면 놓치고, 멈춰야 할 때 움직이면 일을 그르친다.
자리(位) 는 어디냐의 문제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 손에 무엇을 쥐었는지가 할 수 있는 일의 크기를 정한다.
가운데(中) 는 얼마나의 문제다. 지나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 센 척하지도 않고, 스스로를 내던지지도 않는다.
바름(正) 은 어느 쪽이냐의 문제다. 방향이 틀어지면 길이 순해도 엉뚱한 데 닿는다. 손에 쥔 것이 많아도 지키지 못한다.
이 네 글자는 주역 괘의 생김새에 그대로 들어 있다.
괘 하나는 여섯 개의 효(爻)로 이루어진다. 아래에서부터 첫째, 셋째, 다섯째 칸은 양의 자리이고, 둘째, 넷째, 맨 위 칸은 음의 자리다.
양효가 양의 자리에, 음효가 음의 자리에 앉으면 바르다(正)고 한다. 아래 괘의 한가운데인 둘째 칸과 위 괘의 한가운데인 다섯째 칸은 가운데(中)다.
가운데이면서 바르기까지 한 효는 두 가지뿐이다. 둘째 칸의 음효, 다섯째 칸의 양효.
예순네 괘의 효 384개 가운데 이 조건을 갖춘 효는 64개다. 여섯에 하나다.
성인의 책이라는 주역 안에서도 제자리에 바로 선 효는 그 정도다. 사람 사는 세상은 말할 것도 없다.
명은 대개 때와 자리에서 드러나고, 운은 가운데와 바름에 숨어 있다.
명리 말로 옮기면 이렇다. 자리는 원국이 정하고, 때는 대운과 류년이 정한다. 둘 다 태어날 때 이미 적혀 있다. 속담이 말한 "만반", 모든 것은 여기까지다.
여덟 글자는 한 사람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를 적어 둔다. 그런데 그 기울기 위에서 발을 얼마나 멀리 뻗을지, 어느 쪽으로 디딜지까지 적어 두지는 않는다.
반 점은 그 사이에 있다.
태어난 집, 자란 동네, 부모, 출발선. 어느 것도 고른 적이 없다.
어떤 사람은 언덕 위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비탈 밑에서 태어나 일단 오르막부터 탄다.
명리에서 원국은 한 사람이 올라설 수 있는 기초의 높이를 정한다. 대운은 그 기초를 십 년씩 다지기도 하고, 허물기도 하고, 한동안 다른 모양으로 바꿔 놓기도 한다.
주역의 첫 괘인 건괘(乾卦)는 용 한 마리가 여섯 칸을 오르는 이야기다.
| 칸 | 효사 | 뜻 |
|---|---|---|
| 첫째 | 潛龍勿用 | 물에 잠긴 용이니 쓰지 마라 |
| 둘째 | 見龍在田 | 용이 밭에 나타났다 |
| 셋째 | 君子終日乾乾 | 군자가 종일 애쓴다 |
| 넷째 | 或躍在淵 | 뛰어오르거나 못에 머문다 |
| 다섯째 | 飛龍在天 |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 |
| 맨 위 | 亢龍有悔 | 끝까지 오른 용은 뉘우침이 있다 |
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용이다. 달라지는 것은 칸뿐이다. 그런데 칸마다 해야 할 일이 다르다.
첫째 칸의 잠룡물용(潛龍勿用)은 영영 쓰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아직 물속이니 지금은 쓰지 말라는 말이다. 그동안 할 일은 몸을 두텁게 만드는 것 하나다.
자리가 낮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자기가 몇째 칸에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첫째 칸의 용이 자기가 다섯째 칸에 있다고 믿으면 물속에서 날갯짓을 한다. 물만 튄다.
명리에서 흔한 착각도 비슷하다. 좋은 대운이 와서 판이 잠시 다른 모양이 되었는데, 그 모양을 원래 제 키로 안다. 대운이 바뀌면 키는 원국의 높이로 돌아온다. 그때 가서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말한다.
출신은 명이다. 그 위에서 내가 몇째 칸인지 알아보는 눈은 운이다.
평생 가장 붙잡기 어려운 것이 사람 마음이다.
누가 나를 만나고, 누가 다가오고, 누가 떠날지는 대개 내가 정하지 않는다. 첫눈에 반했다고 생각하지만 때가 와서 만난 것이다. 붙잡으면 남을 것 같지만 이미 때가 지났다.
명리에서 사람이 들고 나는 일은 대개 류년에서 터진다. 류년은 누구에게나 오는 바깥의 힘이고, 한 해 동안은 원국과 대운보다 세게 작용한다.
그해 들어온 두 글자가 판의 어느 자리를 건드리느냐에 따라 들어오는 사람이 있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
때가 오면 사람은 모이고, 때가 가면 흩어진다. 인연이 깊으면 돌고 돌아 다시 만나고, 얕으면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봐도 멀어진다.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누군가를 잃은 일보다, 때가 지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일 때가 많다.
떠난 사람의 SNS를 하루에 몇 번씩 새로 고침하는 일은 때를 거스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들어가는 힘에 비해 나오는 것이 없다.
모였을 때 아끼고, 흩어질 때 보내 준다.
말로는 쉽다.
죽을힘을 다해도 손에 안 들어오는 일이 있고, 별로 애쓰지 않았는데 굴러 들어오는 일이 있다. 노력이 소용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때와 자리가 맞물렸는지에 따라 갈린다.
한나라를 세운 공신 두 사람이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둘의 행적이 자세히 남아 있다.
한신(韓信) 은 회음(淮陰)의 가난한 청년이었다.
동네 백정 패거리의 한 젊은이가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 덩치는 크고 칼은 차고 다니지만 속은 겁쟁이라며, 죽을 각오가 있으면 찔러 보고 그게 아니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라고 했다.
한신은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엎드려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갔다. 시장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물속의 용이 자기 칸을 안 것이다.
그 뒤로 한신은 유방(劉邦)의 대장군이 되어 이기고 또 이겼다. 나중에 초왕(楚王)이 되어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 젊은이를 불러 중위(中尉) 벼슬을 주었다. 그때 죽이려면 못 죽였겠느냐, 죽여 봐야 명분이 없어서 참았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날아오른 용이다.
문제의 싹은 그보다 앞서 있었다.
기원전 203년, 유방이 항우(項羽)에게 에워싸여 위태롭던 때였다. 제나라를 평정한 한신은 사람을 보내, 이 땅은 변덕이 심하니 임시 왕이라도 두어야 다스려진다며 자기를 임시 왕(假王)으로 세워 달라고 했다.
유방은 크게 화를 냈다. 곁에 있던 장량과 진평이 유방의 발을 밟았다. 유방은 말을 바꿔, 사내대장부가 제후를 평정했으면 진짜 왕이 될 일이지 임시 왕이 다 뭐냐며 한신을 제왕(齊王)으로 세웠다.
자리를 달라고 한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문제는 때였다. 주군이 포위된 날 날아온 자리 청구서는, 받는 사람이 평생 잊지 않는다.
천하가 정해진 뒤 한신은 초왕에서 회음후(淮陰侯)로 깎였다.
그는 깎인 자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장군 번쾌(樊噲)가 무릎을 꿇고 신하의 예로 맞으며 대왕께서 와 주셨다고 했는데, 한신은 문을 나서며 웃었다. 살다 보니 번쾌 따위와 한 줄에 서는구나.
기원전 196년, 한신은 장락궁(長樂宮)에서 여후(呂后)의 손에 죽었다. 마지막 말이 사기에 적혀 있다.
吾悔不用蒯通之計 乃爲兒女子所詐 豈非天哉
괴통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이 한스럽다. 아녀자에게 속았으니, 이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장량(張良) 은 유방의 책사였다. 장막 안에서 계책을 짜서 천 리 밖의 승부를 정한 사람이라고 유방이 직접 평했다.
유방은 공을 따져 제나라 땅 삼만 호를 직접 고르라고 했다.
장량은 사양했다. 처음 유방을 만난 곳이 유(留)라는 작은 고을이니 거기 봉해 주시면 족하다고 했다.
얼마 뒤에는 세상일을 내려놓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노닐고 싶다며 곡식을 끊고 몸을 가볍게 하는 수련에 들어갔다. 그는 여후의 시대를 지나 제명대로 죽었다.
같은 주군, 같은 시대, 같은 개국 공신이다. 때는 같았다.
주역은 건괘 맨 위 칸의 항룡유회(亢龍有悔)를 이렇게 풀었다.
亢之爲言也 知進而不知退 知存而不知亡 知得而不知喪
끝까지 올랐다는 말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 모르며, 있는 것만 알고 사라질 것을 모르며, 얻을 줄만 알고 잃을 줄 모른다는 뜻이다.
그리고 바로 뒤에 덧붙였다. 나아가고 물러남, 있고 사라짐을 알면서 그 바름을 잃지 않는 이는 오직 성인뿐이라고.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병 하나, 사고 하나가 모든 계획을 뒤집는다.
착하게 산 사람이 고생하고, 남을 해친 사람이 잘사는 것을 보면 하늘이 공평한지 묻게 된다.
춘추시대 노나라 대부 민자마(閔子馬)의 말이 좌전(左傳)에 남아 있다.
禍福無門 唯人所召
화와 복은 따로 드나드는 문이 없다. 오직 사람이 부르는 대로 온다.
흔히 이 말을 사람이 다 지어서 받는다는 뜻으로만 읽는다. 명리로 보면 반만 맞다.
언제, 어떤 모양으로 오는지는 대운과 류년이 정한다. 2026년 병오년에는 세상 모든 사람의 판에 똑같은 병화(丙火)와 오화(午火)가 들어온다.
어떤 사람은 그 화에 언 몸이 풀리고, 어떤 사람은 그 화에 덴다. 들어온 화는 같다. 받는 판이 다르다.
받는 쪽에서 사람이 손댈 수 있는 것이 가운데와 바름이다.
명리의 오래된 기준이 중화(中和)다. 아무리 반가운 글자도 한쪽으로 넘치면 병이 된다.
사람 처신도 같다. 욕심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 가운데다. 남을 해치지 않고 나를 해치지 않는 것이 바름이다. 요행에 판돈을 걸지 않고, 센 척으로 버티지 않는 것도 여기에 들어간다.
명에 있는 복이라도 지킬 줄 알아야 남는다. 명에 있는 고비라도 바르게 디뎌야 넘어간다.
모든 게 팔자라는 말은 여전히 맞다.
한신의 팔자에도 유방이 있었고, 여후가 있었고, 기원전 196년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포위된 주군에게 왕 자리를 청하는 편지 한 장, 그건 여덟 글자 가운데 어느 칸에 적혀 있었을까.
한신은 그것까지 하늘에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