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는 눈은 깊은 데서 생긴다: 자기를 깊이 파는 사람의 여섯 가지 습관
멀리 내다본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올라선 모습을 떠올린다.
남보다 먼저 바람의 방향을 읽고, 뜰 업종에 먼저 올라타고, 남들이 눈치채기 전에 판에 돈을 거는 사람.
그런데 바람은 겉에서 부는 것이다. 바람이 바뀌는 건 세상과 사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먼저 움직였기 때문이다.
멀리 보는 힘은 높이에서 나오지 않는다. 깊이에서 나온다.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는 열매를 잔뜩 달아도 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뽑히지 않는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에 이런 대목이 있다.
且夫水之積也不厚,則其負大舟也無力。
覆杯水於坳堂之上,則芥為之舟,置杯焉則膠,水淺而舟大也。
물이 두텁게 고이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 마루의 움푹 팬 자리에 물 한 잔을 부으면 겨자씨 하나쯤은 배처럼 뜬다. 그런데 거기에 잔을 올려놓으면 바닥에 들러붙는다. 물은 얕은데 배가 크기 때문이다.
다들 큰 배 이야기는 열심히 한다. 물 이야기는 잘 안 한다.
요즘 사람이 치르는 가장 큰 비용은 기회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관심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관심 업종이 하나 늘 때마다, 결제해 둔 강의가 하나 늘 때마다, 길을 한 번 갈아탈 때마다, 같은 능력 곡선의 두께가 한 겹씩 깎여 나간다.
강의를 결제하는 순간 머리는 이미 배운 것으로 친다. 저장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미 읽은 것으로 친다. 수집은 공부의 얼굴을 한 쇼핑이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한 군데를 깊이 파는 일은 사람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 됐다. 그런데 바로 그 거스름 때문에 웃돈이 붙는다. 누구나 하는 일에는 웃돈이 붙지 않는다.
그래서 깊이 판다는 말의 첫 번째 뜻은 빼기다. 한정된 관심을 충분히 작고, 충분히 깊은 한 점으로 모으는 것이다.
도덕경(道德經) 22장은 이렇게 말한다.
少則得,多則惑。
적으면 얻고, 많으면 헷갈린다.
48장은 한 걸음 더 나간다.
為學日益,為道日損。
배움은 날마다 보태는 것이고, 도는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 지식은 더해서 쌓이지만, 그 지식을 꿰뚫는 눈은 덜어낸 자리에서 생긴다.
덜어내려면 세 가지 힘이 필요하다.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첫째, 거절하는 힘.
괜찮아 보이는 기회를 거절하는 힘이다.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투자를 펀치 카드에 비유한 적이 있다. 평생 투자할 수 있는 횟수가 스무 번뿐인 카드를 받았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한 번 투자할 때마다 구멍이 하나씩 뚫린다. 그러면 정말 좋은 기회만 고르게 되고, 고른 것은 끝까지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사람은 평범해진다. "나도 한번 해볼까"가 늘어날 때마다 줄기는 묽어진다.
둘째, 정체 구간을 버티는 힘.
깊이 파는 일의 보상은 일직선으로 오지 않는다. 처음 한참 동안은 들인 것과 얻는 것이 도무지 비례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이 구간에서 대부분 삽을 내려놓고 옆 땅으로 간다. 옆 땅에서도 똑같은 구간을 만난다. 그렇게 얕은 구덩이만 여러 개 남는다.
셋째, 값을 매길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힘.
가장 쉽게 잊히는 힘이다. 시장이 알아보지 못하는 능력은 경제적으로는 없는 것과 거의 같다. 억울하지만 그렇다.
그래서 자기를 깊이 판다는 일은 두 방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안쪽, 판단과 능력을 꾸준히 쌓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바깥쪽, 쌓은 것에서 꾸준히 돈이 되는 입구를 찾아 고리를 닫는 일이다.
가장 좋은 투자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투자라는 말이 있다.
다들 들어봤고, 다들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왜 맞는지는 잘 모른다. 이유는 복리다.
그러면 복리가 붙는 건 무엇인가.
지식의 양에는 복리가 잘 붙지 않는다. 복리가 붙는 건 판단력이다.
깊이 판 사람의 머릿속에는 이미 뼈대가 서 있다. 새 지식이 들어오면 알아서 걸릴 자리를 찾아간다. 걸린 지식끼리 서로 이어지고, 그 이어짐이 다시 새 지식을 낳는다.
깊이 판 사람이 배울수록 더 빨리 배우는 이유가 여기 있다. 머릿속 구조가 대신 공부해 준다.
한 업종을 십 년 들여다본 사람은 분기 실적 한 줄에서 남들이 못 읽는 것을 읽는다. 그 사람이 특별히 똑똑해서가 아니다. 그 한 줄이 걸릴 자리가 이미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다.
칼 뉴포트(Cal Newport)는 「딥 워크(Deep Work)」에서 깊은 일을 이렇게 정의했다. 방해받지 않는 상태에서 일에 몰두해, 자기 인지 능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활동. 이런 노력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기술을 끌어올리고, 남이 흉내 내기 어렵다.
집중이 귀한 자산이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에게 맡길 수도 없고, 기계로 대신할 수도 없고, 묽게 탈 수도 없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1만 시간에 대한 오해
깊이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오해받는 것이 1만 시간의 법칙이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이것을 시간을 쌓는 이야기로 단순하게 만들었다. 근거가 된 것은 안데르스 에릭슨(Anders Ericsson)이 1993년 베를린 음악학교의 바이올린 전공생들을 조사한 연구였다.
그런데 정작 에릭슨 본인은 마법의 숫자 같은 건 없다고 분명히 반박했다. 그가 「1만 시간의 재발견(Peak)」에서 내놓은 조건은 네 가지다.
| 조건 | 뜻 |
|---|---|
| 분명한 목표 | 막연히 잘하기가 아니라, 무엇을 고칠지 정해져 있다 |
| 높은 집중 | 딴생각하며 채운 시간은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
| 즉각적인 피드백 | 틀린 자리를 바로 안다 |
| 편한 구역 밖으로 | 할 줄 아는 것만 반복하지 않는다 |
이 가운데 가장 쉽게 빠지는 것이 피드백이다. 혼자 하는 수련이 자주 헛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간만 채운 사람은 1만 시간 뒤에 1만 시간짜리 습관을 갖게 된다. 실력이 아니라.
깊이는 서재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일 위에서, 구체적인 좌절에 몇 번이고 갈려 나가면서 만들어진다.
보통 사람은 "돈으로 바꾼다"는 말에 묘한 거부감이 있다. 속물스럽고, 계산적이고, 성장의 순수함을 더럽히는 것 같다.
꽤 비싼 착각이다.
들이기만 하고 내놓지 않는 사람, 내놓아도 값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생기는가.
짧게 보면 차곡차곡 쌓는 중으로 보인다. 길게 보면 대개 둘 중 하나로 흘러간다.
하나는 방향이 떠다닌다. 바깥에서 오는 반응이 없으니 내가 쌓은 것에 값어치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이 방향 저 방향을 계속 찔러본다.
다른 하나는 힘이 마른다. 순전히 자기 다짐만으로 삼사 년을 고강도로 버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짐은 생각보다 빨리 닳는다.
시장은 가장 정직한 피드백이다. 위로해 주지 않고, 예의도 차리지 않는다. 그 대신 시장이 주는 신호가 진실에 가장 가깝다. 내가 배운 것이 값이 나가는지 아닌지는 손님이 알려준다.
나발 라비칸트(Naval Ravikant)는 이것을 특수 지식(Specific Knowledge) 이라고 불렀다. 학원에서 가르쳐 줄 수 없는 앎이다. 그의 말은 이렇다.
"사회가 당신을 훈련시킬 수 있다면, 사회는 다른 사람을 훈련시켜 당신을 대신할 수도 있다."
다만 돈으로 바꾸는 일에도 함정이 있다. 뭐든 일단 팔고 보는 쪽이다. 유행을 쫓아다니며 이 돈 저 돈 조금씩 벌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깊어지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얕은 구덩이를 돈 받고 여러 개 파는 셈이다.
반대로 한 우물만 미련하게 파라는 말도 아니다.
만화 「딜버트(Dilbert)」를 그린 스콧 애덤스(Scott Adams)는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 풀었다. 그림 실력은 평범하고, 유머도 최고는 아니고, 회사 생활 경험도 흔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셋이 한 사람 안에 모이자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자리가 생겼다.
어느 한 가지에서 세계 1등이 될 필요는 없다. 두세 가지에서 상위권에 들면, 그 조합 자체가 귀해진다. 깊이의 값은 때로 깊이 그 자체보다, 남이 쉽게 베낄 수 없는 조합이 되는 데서 나온다.
첫째, 멀리 본다는 것의 핵심은 맞히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 군형(軍形)편에 이런 말이 있다.
昔之善戰者,先為不可勝,以待敵之可勝。
不可勝在己,可勝在敵。
옛날에 잘 싸우던 사람은 먼저 지지 않을 태세를 만들어 놓고, 적을 이길 수 있는 때를 기다렸다. 지지 않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고, 이길 수 있는 것은 적에게 달려 있다.
지지 않는 나를 만드는 일은 전부 내 손 안에 있다. 상대를 이기는 일은 상대가 실수해 줘야 가능하다. 내 손 안에 있지 않다.
미래 앞에서 바깥 변수는 하나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업종은 사라지고, 플랫폼은 규칙을 바꾸고, 정책은 방향을 틀고, 기술은 판을 엎는다. 손에 쥘 수 있는 변수는 나 하나뿐이다.
둘째, 미래를 맞히는 사람이 되지 말고, 어떤 미래에서도 살아남는 사람이 된다.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가 한 말이 있다. 앞으로 십 년 동안 무엇이 바뀌겠느냐는 질문은 아주 자주 받는데, 앞으로 십 년 동안 무엇이 바뀌지 않겠느냐는 질문은 거의 받지 않는다고.
자기를 깊이 파는 일은 특정한 미래에 판돈을 거는 일이 아니다. 어느 미래가 오든 굶지 않게 해 주는 일이다.
충분히 깊은 능력 하나, 그리고 언제든 그 값을 확인받을 수 있는 출구 하나. 이 둘을 가진 사람은 바깥 사정이 험해져도 함부로 무너지지 않는다.
셋째, 멀리 본다는 건 정체 구간을 견디는 힘이다.
복리 곡선의 실제 모양은 이렇다. 앞쪽 긴 구간은 거의 평평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가팔라진다.
깊이에 관한 모든 불안은 평평한 구간에서 생긴다.
도덕경 64장에 이렇게 적혀 있다.
合抱之木,生於毫末;九層之臺,起於累土;千里之行,始於足下。
아름드리나무도 털끝만 한 싹에서 자라고, 아홉 층 높은 대도 흙 한 줌을 쌓는 데서 시작하고, 천 리 길도 발밑 한 걸음에서 시작한다.
싹일 때는 아무도 그것을 나무라고 부르지 않는다. 멀리 보는 사람은 남들 눈에 아무 변화도 없어 보일 때, 그 아래에서 변화가 쌓이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이건 의지력 문제가 아니다. 보는 눈의 문제다.
넷째, 깊이 판 사람에게는 남이 못 보는 정보가 들어온다.
장자 양생주(養生主)편의 포정(庖丁)은 소를 잡는 백정이었다. 그는 왕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始臣之解牛之時,所見無非牛者。三年之後,未嘗見全牛也。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보이는 것이 온통 소였다. 삼 년이 지나자 통째로 된 소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통째로 된 소가 안 보인다는 건, 소가 뼈와 근육과 그 사이 틈으로 나뉘어 보였다는 뜻이다. 칼은 그 틈으로만 들어갔다. 포정은 같은 칼을 십구 년 동안 쓰면서 소 수천 마리를 잡았는데, 칼날은 막 숫돌에 간 것 같았다고 했다.
한 분야를 깊이 알수록 보이는 연결이 늘어나고, 알아챌 수 있는 어긋남이 늘어난다. 남들 눈에는 그냥 소 한 마리인데, 깊이 판 사람 눈에는 칼이 들어갈 틈이 보인다.
기회를 알아채는 코는 깊이가 준다. 충분히 깊이 서 있으면 귀한 정보와 자원이 그쪽으로 흘러온다. 물이 낮은 데로 모이듯이.
첫째, 세 겹이 겹치는 자리를 찾는다.
잘할 수 있는 범위, 시장이 원하는 것, 십 년을 해도 괜찮은 일. 이 셋이 겹치는 자리다.
앞의 두 개만 있으면 지친다. 뒤의 두 개만 있으면 서 있지 못한다.
둘째, 목표 대신 문제를 잡는다.
"올해 책 50권 읽기" 같은 목표는 굳이 세울 필요가 없다. 이런 목표는 대개 2월쯤 얇은 책을 고르는 기술로 바뀐다.
대신 "이 분야의 이 질문 하나는 끝까지 알아낸다"로 바꿔 본다. 질문을 들고 움직이면 같은 시간에 훨씬 멀리 간다.
셋째, 공개된 출력 고리를 만든다.
글을 쓰든, 작품을 내든, 사례를 쌓든, 복기를 하든. 내가 잘하고 자주 하는 것 하나를 골라 꾸준히 바깥에 내놓는다.
공개의 값은 조회수에 있지 않다. 바깥에서 돌아오는 피드백 회로, 그리고 언제든 검색될 수 있는 신뢰. 이 둘이 쌓인다.
넷째, 연습에는 반드시 피드백을 붙인다.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에게 내 것을 보여주거나, 진짜 시장에 내놓고 반응을 본다.
피드백 없는 반복은 연습이 아니다. 소모다.
다섯째, 수입의 일정 비율을 자기에게 다시 넣는다.
많을 필요 없다. 버는 돈의 열에 하나면 충분하다. 다만 고정해서, 오래 한다.
세금이 가장 적게 붙고,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자산 배분이다.
여섯째, 해마다 곁가지 하나를 자른다.
깊이의 적은 게으름이 아니다. 욕심이다.
괜찮아 보이는 방향 하나를 해마다 스스로 내려놓아야, 남은 줄기가 굵어진다.
장자는 물 이야기 바로 뒤에 바람 이야기를 이어 붙였다. 바람이 두텁게 쌓이지 않으면 큰 날개를 실어 나를 힘이 없다고. 그래서 붕새는 구만 리를 올라가 바람을 발밑에 쌓은 뒤에야 남쪽으로 날아간다고.
붕새가 날아오르는 장면만 보면 높이 이야기 같다. 실은 발밑에 무엇이 얼마나 쌓였느냐는 이야기다.
물이 얼마나 고였는지는 배를 띄워 봐야 안다. 띄워 보기 전까지는 누구의 물이든 비슷해 보인다.
그 전에 한 가지는 미리 세어 볼 수 있다. 결제만 해 두고 아직 열어 보지 않은 강의가 몇 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