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해 보이는 사람, 똑똑한 사람: 말수와 실력은 왜 반대로 가는가
주변에 꼭 이런 사람이 하나씩 있다.
모임에서든 단톡방에서든 회의에서든 유난히 활발하다. 무슨 화제가 나와도 두어 마디는 보탠다. 어제 뜬 뉴스에도, 오늘 터진 논란에도 자기 의견이 있다. 듣고 있으면 머리가 좋구나 싶다.
그런데 몇 년 지나 보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있다. 같은 종류의 뉴스에 같은 종류의 의견을 단다. 화제만 바뀌었다.
다른 한 사람은 평소 말이 별로 없다. 가끔 입을 열면 정확히 핵심을 짚는다. 몇 년 뒤에 보면 아예 다른 분야로 옮겨 가 있고, 손에 쥔 것이 있다.
누가 더 똑똑한가. 묻는 것부터 싱겁다.
그런데 현실에서 우리 눈은 늘 첫 번째 사람에게 간다. 반응이 빠르고, 말을 잘하고, 아는 게 많아 보인다. 우리가 '똑똑하다'고 할 때 떠올리는 그림과 딱 맞는다.
두 번째 사람의 똑똑함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소리가 안 나니 안 들린다.
바둑의 이창호는 '돌부처'라고 불렸다. 대국 중에도 표정이 없었고, 끝나고도 말이 없었다. 말 대신 계산이 정확했고, 반집을 이기는 바둑으로 이름이 났다. 그 조용한 사람이 1990년대 세계 바둑을 쓸어 담았다.
똑똑함은 무대 위 공연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운영체제(operating system)에 가깝다.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무엇을 들이고 무엇을 버리느냐, 어떻게 결정하느냐, 한정된 시간과 주의력을 어디에 쓰느냐에서 드러난다.
요즘은 정보가 모자라서 문제인 시대가 아니다. 넘쳐서 문제다.
눈 뜨자마자 쏟아진다. 짧은 영상, 실시간 검색어, 단톡방 알림, 친구의 하소연, 옆자리 동료가 물어 온 남의 소문.
대부분은 이걸 전부 받아들이고, 받은 대로 반응한다. 뜨는 걸 보고, 들은 걸 믿고, 자극받은 만큼 화내고 웃는다.
똑똑한 사람은 순서가 다르다. 먼저 거르고, 그다음에 처리한다.
머릿속에 촘촘한 체가 하나 있다. 무엇을 들이고, 무엇을 흘려보내고, 무엇은 아예 못 본 척할지 안다. 인기 검색어 하나에 기분이 출렁이지 않고, 그럴듯한 주장 하나에 판단이 흔들리지 않는다.
들어오는 것 대부분이 잡음(noise)이고, 쓸 만한 신호(signal)는 몇 개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1997년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가 처음 손댄 것이 이것이었다. 당시 애플은 제품이 감당 못 할 만큼 불어나 있었다. 잡스는 화이트보드에 네 칸짜리 표를 그렸다. 일반용과 전문가용, 데스크톱과 휴대용. 이 네 칸에 들어가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접었다.
그해 개발자 회의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집중이란 집중할 대상에 '예'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다른 좋은 아이디어 백 가지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체는 사람 사이에도 그대로 쓰인다. 거절하는 것, 그리고 정리하는 것.
똑똑한 사람은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려 하지 않는다. 모든 인연을 붙들고 관리하려 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쓸 수 있는 기운에는 끝이 있고, 그걸 가장 중요한 몇 사람에게 써야 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자기를 갉아먹는 사람과는 스스로 거리를 두고, 남는 것 없는 모임에서는 스스로 빠진다. 차갑다고 할 사람도 있겠다. 본인은 정신이 맑을 뿐이다.
모임 열 군데에 빠짐없이 얼굴 비추는 사람은 인맥이 넓다는 말을 듣는다. 그 열 군데 중에 새벽 두 시에 전화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인지는 본인만 안다.
똑똑하면 아이디어가 많을 거라고들 생각한다. 거꾸로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아이디어가 많지 않다.
아이디어는 값이 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값이 나가는 건 실행이다.
오늘은 창업, 내일은 대학원, 모레는 공무원 시험. 이렇게 갈아타지 않는다. 생각은 오래 한다. 대신 한 번 정해지면 거기로 파고들고, 뒤돌아보지 않는다.
1991년 7월, 빌 게이츠가 워런 버핏을 처음 만났다. 게이츠의 어머니가 마련한 자리였다. 게이츠는 처음에 "주식 고르는 사람하고 무슨 할 얘기가 있겠느냐"며 가기 싫어했다고 한다. 막상 만나서는 몇 시간을 떠들었다.
그날 저녁 식탁에서 게이츠의 아버지가 손님들에게 물었다. 살면서 여기까지 오는 데 가장 중요했던 게 무엇이냐고.
버핏과 게이츠는 같은 단어를 댔다.
집중(focus).
반대편에는 반응 빠르고 말 잘하는 사람이 있다. 삼 년 동안 방향을 다섯 번 바꾼다. 방향마다 일 년씩 발만 담갔다 빼고, 그만둘 때마다 이유는 넉넉하다. 시장이 별로였고, 때가 아니었고, 동업자가 안 맞았다.
삼 년 뒤 그는 다음 '기회'를 찾고 있다. 출발선에서.
값어치 있는 일은 다 오래 묵혀야 한다. 똑똑한 사람은 당장 돌아오는 게 없다고 접지 않고, 옆 사람이 빨리 벌었다고 흔들리지 않는다. 빛을 한 점에 모으고, 못을 한 자리에 박는다.
복잡한 문제 앞에서 보통 사람 눈에는 덩어리가 보인다. 똑똑한 사람 눈에는 뼈대가 보인다.
자기계발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치자. 보통은 강의부터 잔뜩 결제한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들을지 몰라, 장바구니 같은 수강 목록만 남는다.
똑똑한 사람은 먼저 묻는다.
- 지금 내 약한 곳은 어디인가
-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하나
- 그 능력은 어떤 구체적인 기술로 나뉘나
- 기술마다 어떻게 연습하나
그다음에 계획을 짜고, 한 칸씩 간다.
영국 사이클 대표팀을 맡았던 데이브 브레일스퍼드(Dave Brailsford)가 이 방식으로 이름을 얻었다. 그는 자전거 경주라는 덩어리를 수백 개의 작은 요소로 쪼갰다. 정비실 바닥을 하얗게 칠해 먼지를 찾아냈고, 선수들에게 외과 의사의 손 씻는 법을 가르쳤고, 원정 숙소에는 선수가 쓰던 베개를 따로 챙겨 갔다.
하나하나는 우스울 만큼 작은 손질이었다. 그가 '작은 이득의 합(marginal gains)'이라고 부른 방식이다. 2012년, 그가 이끈 팀에서 브래들리 위긴스가 영국인 최초로 투르 드 프랑스를 우승했다.
쪼개는 힘은 생활 곳곳에 쓰인다.
다툼이 생기면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양쪽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둘 다 사는 길이 있는지를 본다. 기회가 오면 그 정체가 뭔지, 무슨 조건이 필요한지, 위험은 어디 숨어 있는지, 내가 그 조건을 갖췄는지를 본다.
겉모습에 속지 않고, 감정에 끌려가지 않는다. 외과 의사처럼 차분하게 갈라서 문제의 한복판을 찾아낸다.
대부분은 일을 마치면 거기서 끝이다. 똑똑한 사람은 마친 다음에 한 번 더 들여다본다.
뭐가 잘됐나. 뭐가 안 됐나. 왜 그랬나. 다음엔 뭘 바꾸나.
바둑에는 복기라는 관습이 있다. 대국이 끝나면 이긴 사람과 진 사람이 마주 앉아 첫 수부터 다시 놓아 본다. 진 사람에게는 쓰리고, 이긴 사람에게는 귀찮은 일이다. 그런데 고수일수록 이걸 거르지 않는다. 이긴 판에도 운으로 넘어간 수가 있고, 진 판에도 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육군에도 같은 장치가 있다. 사후 검토(After Action Review)라는 것인데, 훈련이나 작전이 끝나면 계급을 내려놓고 둘러앉아 네 가지를 묻는다.
| 질문 | 들여다보는 것 |
|---|---|
| 무엇을 하려 했나 | 처음의 계획 |
|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나 | 벌어진 사실 |
| 왜 차이가 났나 | 어긋난 이유 |
| 다음엔 어떻게 하나 | 고칠 것 |
이 습관이 있으면 행동 하나하나가 쌓인다. 남들이 같은 일을 되풀이할 때 이 사람은 나선을 그리며 올라간다. 똑같은 일을 열 번 해도, 누구는 열 번째가 첫 번째와 같고 누구는 열 번이 다 다르다.
복기는 지난 일을 정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 판을 준비하는 일이다. 실패를 거름으로 바꾸고, 넘어진 이유를 알아 두었으니 같은 돌부리에 두 번 걸리지 않는다.
같은 돌부리에 두 번 걸리는 사람은 대개 돌부리 탓을 한다. 세 번째에도.
결국은 손발로 끝난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완벽은 오지 않는다는 걸 안다. 거칠게 하나 만들어 내놓고, 돌아오는 반응을 보며 고친다. 실패가 무서워서 시작을 미루지 않는다. 실패는 과정에 원래 들어 있는 부품이다.
다만 움직이기 전에 두 가지는 갖춰 둔다.
- 목표가 쪼갤 수 있을 만큼 또렷할 것
- 쪼갠 조각이 하나하나 바로 손댈 수 있을 만큼 작을 것
일이 틀어지는 이유는 대개 노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목표가 흐릿했거나, 출발할 때부터 방향이 비뚤어져 있었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은 목표를 단계로, 단계를 과제로, 과제를 동작으로 나누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마지막 동작은 '오늘 오후에 바로 시작할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
그 정도로 잘게 쪼개지면 실행에 의지력이 필요 없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쉬워서 안 할 핑계가 없다.
'운동하기'는 안 한다. '운동화 신고 현관문 열기'는 한다. 문을 열고 나면 대개 나간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만 하나 해 두자. 우리 대부분은 꽤 오래 '똑똑한 척'하며 산다.
짧은 영상으로 지식을 넘겨보며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 술자리 저 식사 자리를 돌며 인맥을 쌓고 있다고 느낀다. '나중에 읽을 글'을 수백 개 저장해 두고 충전하고 있다고 느낀다.
나중은 오지 않는다. 저장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미 읽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것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쁘고 꽉 찬 느낌은 주는데, 삶에서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
똑똑함은 아는 양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는 것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느냐에서 나온다.
감 대신 확률로 따져 보는 것도 선택이다. 비위 맞추기 대신 거르는 것도 선택이다. 무작정 덤비는 대신 쪼개는 것, 잊어버리는 대신 복기하는 것도 선택이다.
하나씩 떼어 보면 별것 아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몇 년 겹쳐 쌓이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된다.
도덕경 56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이천오백 년 전에 나온 말인데, 단톡방이 생긴 뒤로 더 자주 들어맞는다.
주위에 그런 사람이 하나쯤은 있다. 별로 바빠 보이지 않고, 말수도 적은데, 걸음마다 땅을 단단히 딛는 사람.
곁에 오래 있으면 물이 든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을 알아보는 일부터가 쉽지 않다. 조용하니까.
그 조용한 사람도 지금 누군가를 거르는 중이다. 단톡방에서 제일 말이 많은 사람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