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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인과에 손대지 않는다: 나무를 너무 넣으면 불이 꺼진다

sean··읽음 23

어릴 때는 이렇게 배운다. 누가 잘못 가는 걸 보고도 말하지 않으면, 그건 차가운 사람이라고.

나이가 들면 다른 걸 배운다. 어떤 말은 해 봐야 소용이 없다. 어떤 말은 하는 순간 원수가 생긴다.


그림자는 대신 들어 줄 수 없다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은 첫머리를 이렇게 연다.

禍福無門 惟人自召 善惡之報 如影隨形

화와 복에는 정해진 문이 없고, 사람이 스스로 불러들인다. 선과 악의 갚음은 그림자가 몸을 따르듯 따라온다.

그림자다. 남의 그림자를 내가 대신 들어 줄 방법은 없다.

그 사람 앞에 서서 해를 가려 주면 그림자는 잠깐 사라진다. 대신 내 그림자가 그 사람을 덮는다.

남의 화를 한 번 막아 주면 어떻게 되나. 그 사람은 고마워하기보다 "별것 아니었네" 한다. 그리고 같은 길로 다시 간다. 이번에는 더 빠르게. 브레이크가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목이 쉬도록 말리면 어떻게 되나. 그 사람 귀에 걱정은 들리지 않는다.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한다"만 들린다.


나무를 너무 넣으면 불이 꺼진다

오행(五行)에서 목은 화를 낳는다. **목생화(木生火)**다. 장작이 있어야 불이 붙는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안다.

명리학에는 그다음 줄이 있다.

목다화식(木多火熄). 나무가 너무 많으면 불이 꺼진다.

아궁이에 장작을 한 아름 쑤셔 넣어 보면 안다. 불이 살아나지 않는다. 숨이 막혀서 연기만 피어오른다. 불에게 필요한 건 장작과 장작 사이의 빈틈이다. 바람이 드나들 틈.

도움도 똑같다. 한두 개비는 불을 살린다. 한 아름은 불을 끈다.

남의 인생에 끼어드는 사람은 대개 자기가 장작을 보태고 있다고 믿는다. 아궁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연기가 새어 나온 뒤에야 안다.

물과 나무 사이도 그렇다. 수생목(水生木), 물은 나무를 키운다. 그런데 물이 넘치면 나무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둥둥 떠내려간다. 수다목표(水多木漂) 다.

물을 준 쪽은 끝까지 자기가 키웠다고 기억한다. 떠내려간 쪽의 기억은 조금 다르다.


깎여야 재목이 된다

상생(相生)만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상극(相剋)도 일을 한다.

금은 목을 친다. 금극목(金剋木) 이다. 나무 입장에서는 도끼날이니 반가울 리 없다.

그런데 도끼가 한 번도 닿지 않은 나무는 그냥 나무로 남는다. 기둥이 되고 대들보가 되는 건 깎인 나무다.

한 사람이 넘어지고, 손해 보고, 망신당하는 일. 그게 그 사람 인생에 들어온 도끼날이다.

옆에서 그 도끼를 대신 막아 주면 나무는 다치지 않는다. 대신 끝내 재목이 되지 못한다.

남의 밥을 대신 먹어서 그 사람 배를 불릴 수 없다. 남의 도끼를 대신 맞아서 그 사람을 다듬을 수도 없다.


일곱 구멍을 뚫어 준 친구들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편 맨 끝에 짧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남쪽 바다의 임금은 숙(儵), 북쪽 바다의 임금은 홀(忽), 가운데 땅의 임금은 혼돈(渾沌)이었다.

숙과 홀은 가끔 혼돈의 땅에서 만났다. 혼돈은 둘을 아주 극진히 대접했다.

둘은 그 은혜를 갚기로 했다.

"사람은 누구나 일곱 구멍이 있어서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쉰다. 그런데 혼돈만 하나도 없다. 우리가 뚫어 주자."

하루에 구멍 하나씩 뚫었다.

日鑿一竅 七日而渾沌死

이레째 되는 날, 혼돈이 죽었다.

숙과 홀은 나쁜 친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좋은 친구였다. 받은 게 고마워서 갚으려 했고, 자기들에게 좋은 것은 혼돈에게도 좋을 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이레 만에 친구를 죽였다.

"다 너 잘되라고"라는 말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 있다. 악의는 막을 수 있다. 선의는 막기가 어렵다. 하는 쪽도 당하는 쪽도 그게 칼인 줄 모르니까.


손에도 음양이 있다

손을 떼라는 말이 마음을 끊으라는 말은 아니다.

손에도 음양(陰陽)이 있다.

앞으로 뻗어 붙잡는 손은 양(陽) 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펴 두기만 하는 손은 음(陰) 이다.

절벽 쪽으로 달려가는 사람의 옷깃을 잡아끄는 건 양의 손이다. 상대는 그 손을 뿌리친다. "네가 뭔데."

넘어진 사람 옆에 조용히 펴져 있는 손은 음의 손이다. 상대는 그 손을 잡는다. "혼자가 아니었구나."

노자는 도덕경 마흔째 장에서 이렇게 적었다.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고, 약한 것이 도의 쓰임이다.

양은 끝까지 가면 음으로 돌아선다. 붙잡는 손이 끝까지 가면 통제가 되고, 통제가 끝까지 가면 원망이 된다.

구하려던 사람이 원수가 되는 건, 대개 이 순서를 그대로 밟아서다.


가장 어려운 건 가까운 사람이다

남이면 쉽다. 어려운 건 부모, 친구, 배우자, 자식이다.

불구덩이 쪽으로 걸어가는 걸 뻔히 보면서 서 있는 일. 그 무력함에 숨이 막힌다.

그래도 가까울수록 선이 필요하다.

할 말은 한 번, 분명하게 한다. 문은 잘 닫아 둔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선다.

맞게 가면 같이 기뻐하면 된다. 틀리게 가면, 그 사람이 뒤돌아보는 날 그 자리에 서 있으면 된다.

이건 차가움과는 거리가 멀다. 참는 일이다. "내가 구해야 한다"는 충동을 참고, "다 너를 위해서"라는 오만을 참는다.

결국 한 사람의 인생에서 맨 앞에 서야 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다.


등불이 하는 일

화(火)는 밝음이다.

등불이 하는 일은 비추는 데까지다. 등불이 사람 대신 걸어 주지는 않는다. 어느 길로 가라고 정해 주지도 않는다.

내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건, 많아 봐야 등불 하나다. 그 불빛을 따라 걸을지, 등지고 걸을지는 그 사람 몫이다.

남의 인과에 손대지 않는 것. 어른과 어른 사이에 지킬 수 있는 가장 깊은 예의다.

그래도 손이 근질거린다면, 그 손으로 내 집 아궁이부터 한번 들여다보면 된다. 남의 불 걱정에 바쁜 사람 집 아궁이는, 대개 연기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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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3
  • 익명.·

    가까운 사람 간섭하지 않는 건 정말 머무 어려워요. 기어이 말이 나오고 만다니까요..ㅠ.ㅠ

  • 블루베리파이·

    감사합니다

  • 사랑뽀·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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