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두 권 읽었는데, 명리학 강의를 한다.
명리학을 공부한 지 2년 됐다.
처음에는 천간과 지지도 헷갈렸다.
이제는 남의 글에서 틀린 부분이 보인다.
댓글을 쓴다.
“기본부터 다시 공부하셔야겠네요.”
조금 뿌듯하다.
공부한 보람이 있다.
남이 모르는 것은 너무 잘 보인다.
5년이 됐다.
소개에 적는다.
“오랜 연구를 통해 얻은 통찰.”
20년 공부했다는 사람의 글도 읽어본다.
그런데 설명이 이상하다.
조건은 빠지고, 외운 문장만 반복된다.
오래 공부하면 깊어질 줄 알았는데.
같은 설명이 오래됐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다.
공부한 기간과, 자기 생각을 고친 횟수는 같은 것이 아니다.
원래 뭐든지 처음 배우면 몇 가지 설명만으로 세상이 정리되는 순간이 온다.
상관은 말을 잘한다.
정인은 착하다.
편인은 의심이 많다.
비겁이 많으면 돈을 빼앗긴다.
주변 사람을 떠올리니 맞는 것 같다.
상사도 설명되고.
전 애인도 설명되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특히 정확하게 설명된다.
이쯤 되면 명리를 배운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 사용설명서를 받은 기분이다.
아직 목차를 읽는 중인데, 세상을 다 아는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아는 것이 조금 생겼는데, 그 설명이 어디까지 통하는지는 아직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확인해야 틀렸다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틀릴 일이 별로 없다.
식신이 있는데 말이 없다?
다른 글자 때문에 그렇다.
재성이 있는데 돈이 없다?
아직 운이 안 왔다.
운까지 왔는데 돈이 없다?
본인이 운을 못 쓴 것이다.
설명은 매번 살아남는다.
검토해야 할 것은 늘 상대방 인생이다.
모르는 것이 적어진 것과, 모르는 것을 알아볼 눈이 생긴 것은 다르다.
명리에서 인성을 배우고 받아들이며 설명을 축적하는 작용으로 읽어볼 수 있다.
그런데 많이 받아들였다고 전부 소화한 것은 아니다.
책의 문장이 익숙해졌다.
질문을 들으면 관련 문장이 바로 떠오른다.
그러면 이해한 것 같다.
하지만 “왜 그렇게 보는데?”라는 질문이 한 번 더 들어오면 막힌다.
그래서 유명 책의 구절 외운것을 이야기한다.
본인이 사사한 유명한 선생님 이름들도 말한다.
근거를 설명하라고 했는데 참고인들이 대거 출석한다.
식상의 표현이 앞서면 배운 것을 말하고 글로 만들면서 정리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도움이 된다.
다만 설명하는 속도가 확인하는 속도보다 빨라질 수도 있다.
오늘 배운 내용으로 내일 강의를 연다.
모레는 반대 의견을 반박한다.
강의 글을 올리고, 유투브로 강좌를 한다.
여기에 비겁의 경쟁이 붙으면 질문이 더 불편해질 수 있다.
내 해석을 검토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저 사람보다 아래인지 위인지 정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 조건에서는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용을 물었는데 이렇게 답한다.
“공부 몇 년 하셨어요?”
명식에 없던 글자가 등장했다.
연차다.
그렇다고 오래 공부한 경험이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사례를 보고, 틀린 판단을 고치고, 설명의 조건을 다듬었다면 시간은 깊이를 만든다.
문제는 그 과정 없이 기간만 늘어날 때다.
책을 20년 보고, 임상을 20년 했다고 한다.
고객이 20년 단골이 얼마나 되냐? 아니면 몇년단위로 싹 다 바뀌냐?
그 20년 공부한 책들은 뭐냐? 중구난방 수백권이냐?
앞에만 검고, 뒤에는 안 열어본 것 아니냐?
요리도 비슷하다.
20년 요리 경력이 있다고, 음식이 맛있다는 보장이 있냐?
맛집에서는 만든 된장 찌개가 20년간 권위를 얻는다.
그러나 맛없는 된장찌개를 50년 끓였다고 장인이라고, 대가라고 하지 않는다.
실력이 쌓이는 데 필요한 것은 반복뿐 아니라, 그 반복을 수정할 근거다.
이 해석은 어떤 조건에서 성립하는가.
반대되는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무엇이 확인되면 내 판단을 바꿀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불편해진다.
외운 문장을 잠깐 내려놓아야 한다.
그동안 자신 있게 쓴 글을 고쳐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차라리 반대하는 사람을 초보자로 만드는 편이 쉽다.
내 설명은 그대로 두고 상대의 수준만 낮추면 되니까.
약간 아는 지식으로 상대방의 권위를 의심하면, 내가 똑똑하게 느껴지니까...
명리학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투자를 조금 배우고 남의 포트폴리오를 평가하고.
운동을 조금 하고 모든 사람의 자세를 고치고.
심리학 용어 몇 개로 가족 전원을 진단하기도 한다.
배운 것이 생기면 써보고 싶다.
그런데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내가 아는 것을 확인하는 데만 쓰면, 사람마다 다른 조건은 귀찮은 예외가 된다.
처음의 사람은 여전히 글을 쓴다.
“이런 사주는 반드시 이렇게 됩니다.”
"격국 같은 것 현대 사회에서는 없어요"
"희신, 용신, 기신, 구신, 한신 이런것 의미 없어요."
"좋은 사주, 나쁜 사주 없어요."
"나 사주 오래 공부했는데, 사주 안 믿어요."
좋아요 많이 받는다.
그리곤, 어떤 역술인에게 가서 댓글을 단다.
“뭘 이렇게 복잡하게 설명하세요? 기본도 모르시네.”
프로필을 눌러본다.
명리학 30년차.
상담 문의는 DM.
본인 프로필?
명리학 N년 차(반올림도 년으로 친다. 1년도 N이다.), 상담 문의는 DM, Opencha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