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부부는 화해했는데, 나만 아직 싸우고 있다
친구가 배우자와 싸웠다고 전화했다.
처음에는 듣기만 했다.
듣다 보니 같이 화가 났다.
“그건 너무한 것 아니야?”
“넌 왜 맨날 참고 살아?”
“나라면 같이 못 산다.”
"남편이 잘못했네!"
친구가 울면서 말한다.
“너밖에 없다.”
다음 날 친구의 사진이 올라왔다.
배우자와 소고기를 먹고 있다.'
와인도 있고
반지도 있고
명품 가방도 있다.
나는 어젯밤 그 사람의 인격을 거의 해체했는데.
두 사람은 관계 복원후, 해쉬태그로 나를 해체했다.
며칠 뒤 친구를 만났다.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 일은 어떻게 잘 해결 됐어?”
“뭐, 부부가 다 그렇지. 그런데 너는 우리 남편을 너무 나쁘게 보더라.”
어제는 너밖에 없다더니.
오늘은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됐다.
친하다는 이유로 들어간 이야기에, 내가 맡지 않아도 될 역할까지 생길 때가 있다.
친구가 힘들다고 하면 편을 들어주고 싶다.
그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날 들은 이야기는 그 친구가 이성을 잃은 상태, 즉 가장 화난 상황일 수 있다.
함께 살아온 시간.
서로 기대했던 것.
전에 주고받았던 말.
그 뒤에 나눈 대화.
나는 그중 일부를 편집된 상태로 들었다.
그런데 판결은 전체 인생을 다큐멘터리로 본 사람처럼 내렸다.
상대는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으러 왔는데, 이쪽에서는 이혼 이후의 주거 계획까지 짜줬다.
친한 사이에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집안일뿐만이 아니다.
술자리에서 친구가 사업 자금이 부족하다고 한다.
기운을 북돋워주고 싶어서 말한다.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다음 날 계좌번호와 필요한 금액이 온다.
생각했던 것보다 0이 많다.
나는 어깨를 빌려준 줄 알았다.
상대는 자금을 마련한 줄 알았다.
“그 정도까지는 어려운데.”
“어제는 도와준다며?”
마음이 앞서서 한 말에도, 상대는 구체적인 기대를 걸 수 있다.
명리에서 비겁은 친구와 동료처럼 나와 나란히 선 관계로 읽는다.
함께 화내고, 힘을 보태고, 내 편이라는 감각을 나눈다.
그런데 같은 편이라는 마음이 돈의 범위나 말의 책임까지 정해주지는 않는다.
재성의 현실적인 몫과 관성의 역할·기준도 함께 봐야 한다.
친구의 어려움을 이해한다.
이해하지만, 계좌번호를 받은 후, 전화번호를 스팸처리했다.
내 생활비까지 내놓을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친구가 속상한 것도 안다.
그 배우자에게 직접 전화해서 따질 권한까지 생긴 것은 아니다.
가끔은 친하다는 이유로 이런 구분을 생략한다.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따져.”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부터 아주 자세히 따지기 시작한다.
이건 다른거라면서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누가 먼저 부탁했는지.
그날 술값은 누가 냈는지까지 나온다.
처음에 생략한 이야기가 나중에는 증거 자료가 된다.
큰돈이 오간다고 모든 관계가 깨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밥값을 번갈아 내던 경험만으로, 몇 달 동안 큰돈이 묶이는 상황까지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돈까지 많이 빌릴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돌려받을 날짜가 지나면 친구의 근황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전에는 여행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이제는 숙박비가 얼마인지 궁금하다.
왜 내 돈은 안 갚으면서, 해외 여행을 가지?
나는 니가 돈 안 갚아서, 해외 여행 못간지 얼만데
돈을 빌려줬는데, 원하지도 않은 소비 관찰 취미가 생긴다.
말도 비슷하다.
“너는 원래 끈기가 없잖아.”
“네 배우자는 절대 안 바뀐다.”
“그건 내가 무조건 해결해줄게.”
잘 안다는 마음으로 단정하고.
위로하려다가 약속하고.
같이 화내다가 돌아올 수 없는 말까지 한다.
친구는 내 말을 오래 기억할 수 있다.
나는 그날 무슨 안주를 먹었는지도 가물가물한데...
물론 누군가 위험한 일을 겪고 있다면 집안일이라는 이유로 외면할 수는 없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과, 화난 이야기를 듣고 대신 결론을 내려주는 일은 구분해야 한다.
“많이 속상했겠다.”
여기까지 말할 수 있다.
그다음에는 물어볼 수도 있다.
“내가 들어주면 될까, 같이 방법을 찾아볼까?”
도와주겠다는 말도 범위를 정할 수 있다.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물어봐줄게.”
“이번 주말에 같이 알아볼 수 있어.”
그 정도로는 우정이 부족해 보일까 걱정되나? 사실 이 정도 해주는 것도 꽤 쉽지 않다.
그래도 하지 못할 약속을 크게 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도움을 실제로 주는 편이 낫다.
친구에게 또 전화가 왔다.
배우자 때문에 속상하다고 한다.
이번에는 끝까지 듣는다.
같이 욕할 문장이 몇 개 떠올랐지만 그냥 메모지에 적는다.
지난번에도 나는 밤새 화가 났고.
친구는 소고기를 먹었더라,,,
앞으로 하소연 할거면, 나에게 소고기 선물 세트를 보내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