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안 읽었는데, 이 책이 돈 되는지는 알아봤다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집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몇 장 넘겨보니 문장도 좋다.
그러다 생각한다.
이걸 읽으면 어디에 쓰지?
일에 도움이 되나?
돈 버는 데는 관계가 없겠네.
책을 내려놓고 옆으로 간다.
인공지능으로 자동으로 수익내는 법.
시간을 아끼는 법.
남보다 빨리 성공하는 법.
세 권을 샀다.
집에는 아직 남보다 빨리 성공하지 못하게 해준 책들이 여러 권 쌓여 있다. 휴대폰에는 밀리의 서적이 깔려 있지만, 안 열어본지 오래다.
알라딘, 예스24도 깔려 있긴 하다. 그런데 찾으려면 헤메야 한다.
책을 싫어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예전에는 나름 책 좋아했다고, 취미에 독서를 썼었다.
다만 책에도 자꾸 실적을 요구한다.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보다, 읽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가 먼저 궁금해진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 남의 사정이 조금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큰 깨달음을 얻은 느낌이다.
역사책을 읽다가 당연하게 알던 것을 의심하기도 한다.
좋은 문장 하나 때문에 잠깐 멈출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이력서에 쓰기 어렵다.
이번 달 수입에도 바로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니 읽다가도 마음이 급해진다.
이 시간에 다른 것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만 뒤쳐지는 것 같아서,
인문학책이 좋다면 인문학책도 억지로 읽지만,
누구는 부업을 하고, 누구는 자격증을 따는데,,,
그런 생각이 들면 마음이 불안하다.
소설 속 부부가 왜 싸우는지 읽고 있을수록 감정이입만 잘한다.
우리 집 부부가 싸우는 것도 해결 못 했는데, 소설속의 부부의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을것 같다.
명리에서 **재극인(財剋印)**은 재성이 인성을 극하는 관계다.
그 작용이 필요한 인성을 손상시키는 방향으로 나타날 때 재괴인(財壞印)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재성을 눈앞의 현실적 성과와 효용으로, 인성을 배우고 받아들이며 생각을 축적하는 작용으로 연결해볼 수 있다.
그러면 이런 장면이 보인다.
무언가를 충분히 읽고 이해하기도 전에 묻는다.
그래서 이것으로 뭘 할 수 있는데?
배움이 자리 잡기도 전에 활용 계획부터 제출해야 한다.
당장 쓸 곳이 없으면 시간을 낭비한 것 같다.
물론 재성은 돈 욕심이고 인성은 고상한 독서라는 뜻이 아니다.
재와 인은 일간에 따라 정해지는 관계이므로, 상업은 무조건 금수이고 독서는 무조건 목화라고 고정할 수도 없다.
재성이 필요할 때도 있다.
책만 읽고 준비만 하던 사람이 현실의 요구를 만나 배운 것을 쓰기 시작할 수 있다.
인성이 과해 익숙한 설명만 붙들고 있었다면, 실제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도움이 된다.
문제는 실용성을 따지는 것 자체보다, 당장 쓸모가 확인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다.
책을 안 읽는 이유가 전부 이것은 아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 문장을 따라갈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
종이책 대신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으로 읽는 사람도 있다.
종이 넘기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배움까지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쉬려고 읽는 책에까지 성과를 요구하고 있는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여행기를 읽으며 쉬려고 했다.
어느새 여행 콘텐츠를 만들어 돈 버는 방법을 찾는다.
취미 책을 펼쳤다.
이걸 배워서 판매할 수 있을지 계산한다.
내 관심사가 생기기도 전에 사업성이 검토된다.
머릿속에 작은 투자심사위원회가 있어서, 뭐든 수익 전망이 없으면 반려한다.
현대 사회에는 돈이 너무나 중요해져서
"재"가 너무 중요해서
그러다 책을 덮고 숏폼을 본다.
이상하게 여기는 쓸모를 묻지 않는다.
고양이가 상자에 들어가는 영상, 잔디 깍는 영상을 40분째 보고 있다.
책에는 투자수익률을 요구하고, 고양이에게는 무조건 시간을 준다.
모든 독서에서 교훈을 뽑을 필요는 없다.
반드시 끝까지 읽을 필요도 없다.
읽다가 마음에 걸리는 문장이 있으면 잠깐 머물러도 된다.
당장 써먹지 못한 생각이 나중에 다른 경험과 만나 이해될 수도 있다.
끝내 돈이 되지 않아도, 그 시간을 즐겼다면 그것으로 남는 것이 있다.
며칠 뒤 서점에서 내려놓았던 책을 다시 펼친다.
여전히 어디에 써먹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다음 장이 궁금하다.
이번에는 그 이유로 산다.
책 한 권이 내 인생을 책임질 필요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