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한 만큼 잘된다면, 허리가 먼저 부자가 됐겠다
가게 매출이 줄었다.
사장은 영업시간을 늘렸다.
아침에 1시간 일찍 열고.
밤에 1시간 늦게 닫고.
쉬는 날도 없앴다.
이제는 동네에서 제일 먼저 불을 켜고, 제일 늦게 끈다.
얼마 뒤 지인이 묻는다.
“요즘 장사는 어때?”
“죽어라 하고 있지.”
얼마나 힘든지는 알겠다.
얼마나 나아졌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장부를 보니 늘어난 시간에 들어온 손님은 많지 않았다.
전기료와 식사 시간이 늘었다.
매출보다 사장이 가게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이 늘어난 것이다.
일이 안 풀릴 때, 우리는 방법보다 자기 몸부터 더 쓴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보는 일은 막막하다.
문을 1시간 일찍 여는 일은 당장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이만큼 하고 있으니, 적어도 놀고 있다는 소리는 안 듣겠지.
그런데 손님은 사장의 출근 시간을 보고 결제하지 않는다.
밤에 얼마나 피곤하게 잠들었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필요한 것을, 그 가게에서 살 이유가 있어야 들어온다.
고생이 쓸모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장사든 공부든 기술이든 반복하고 견뎌야 하는 구간이 있다.
다만 고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지금 방법이 맞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예전에 잘됐던 경험이 있으면 더 어렵다.
그때도 일찍 나왔고 늦게 들어갔다.
그러니 지금도 더 열심히 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근처에 경쟁 가게가 없었을 수 있다.
큰 회사 직원들이 점심마다 찾아왔을 수도 있다.
지금은 경쟁점이 생겼고, 그 회사는 이전했다.
내가 부지런했던 것은 사실이다.
손님이 올 조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는
성공한 뒤 기억을 정리하면 이상하게 두 번째 사실은 잘 빠진다.
남는 것은 “내가 남들 잘 때 일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또 내가 얼마나 장사 천재 였는지, 내가 얼마나 감각이 좋았는지가 남는다.
문제는
남들 잘 때 일한 사람 중에 문 닫은 사람도 있었을 텐데,
그런 정보는 자동 차단 삭제된다.
명리에서 원국과 운을 함께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가진 재주와 그것을 쓸 조건을 나누어 보는 것이다.
같은 능력이라도 대운과 류년에서 어떤 힘이 더해지고 관계가 달라지는지에 따라 쓰임을 다시 판단한다.
또 식상생재(食傷生財)를 말할 때도 만들어내는 힘만 보아서는 부족하다.
그 결과물이 현실의 수요와 만나 재로 이어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더 많이 만들었다.
더 오래 일했다.
그런데 사는 사람이 줄었다면, 생산량만 늘려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냉장고가 먼저 꽉 찰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당장 가게를 접고 유행하는 일을 시작하라는 뜻은 아니다.
남이 잘된다는 말에 따라가는 것도 판단을 생략하는 방법이다.
지금 하는 일이 힘들다고, 모르는 일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니까.
먼저 확인할 것이 있다.
늘린 시간에 실제로 손님이 오는가.
사람들이 무엇을 찾다가 그냥 나가는가.
많이 팔리는 것과 남는 것이 같은가.
내가 하루 빠지면 전부 멈추는가.
이런 질문은 조금 불편하다.
열심히 해온 방식에 손을 대야 할 수도 있다.
좋아하던 메뉴를 줄여야 할 수도 있다.
오래 했다는 이유로 붙잡고 있던 일을 놓아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냥 내일도 일찍 나오는 편이 마음에는 쉽다.
몸이 대신 고생하면 생각을 잠깐 미룰 수 있다.
물론 당장 선택할 여유가 없는 사람도 있다.
생활비 때문에 익숙한 일을 계속해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 생각 없이 산다고 말하는 것도 쉬운 평가다.
다만 바꿀 수 있는 작은 부분까지 전부 인내로 처리할 필요는 없다.
1시간을 더 일하기 전에, 지난 1시간이 무엇을 남겼는지 볼 수는 있다.
사장은 한동안 시간대별 매출을 적어봤다.
늦게까지 열었던 마지막 1시간에는 거의 팔린 것이 없었다.
문을 조금 일찍 닫기로 했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이렇게 편해져도 되나 싶었다.
편해진 것도 별로 없다.
남들 저녁 먹는 시간에 겨우 저녁을 먹게 됐을 뿐이다.
밥을 먹으며 장부를 다시 본다.
이번에는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 대신, 무엇을 바꿔 볼지 적는다.
그 옆에 빨간색으로 쓴다.
내 몸이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내 일이 앞으로 가고 있다고 믿지는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