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을 만났는데, 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이 선배에게 연락했다.
그 분야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다.
선배가 시간을 내서 포트폴리오를 봐줬다.
빼야 할 것과 보완할 것을 알려줬다.
지원해볼 회사도 몇 군데 적어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좋았다.
혼자 고민할 때는 막막했는데, 이제 길이 보이는 것 같다.
다음 날 다시 메시지를 보낸다.
“말씀하신 부분은 어떻게 고치면 될까요?”
선배가 예시를 보내준다.
잠시 뒤 또 묻는다.
“제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쓰는 게 좋을까요?”
이번에는 선배가 답이 없다.
조금 서운해진다.
어제는 그렇게 잘 도와주더니.
그런데 아직 파일은 열지 않았다.
고치다가 막힌 것이 아니라, 고치기 전에 다음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움을 받았다는 기분과, 도움을 써서 무언가 바뀌었다는 것은 다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일이 풀릴 수 있다.
혼자서는 몰랐을 정보를 얻는다.
기회를 소개받기도 한다.
오래 헤맬 부분을 한마디로 짚어주기도 한다.
다만 그 사람이 내 문제를 잘 안다고 해서, 앞으로 내 문제를 맡기로 한 것은 아니다.
포트폴리오를 봐줬다.
취업 담당자가 된 것은 아니다.
한 번 조언했다.
매일 의욕을 확인하고 달래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다.
도움을 받는 쪽에서는 질문 하나다.
답하는 쪽에서는 다시 자료를 열고, 맥락을 떠올리고, 설명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질문 끝에 “간단하게만 알려주세요”라고 붙였다.
간단한지는 답할 사람이 판단할 일이다.
명리에서 인성을 배움과 도움, 나를 받쳐주는 자원으로 읽는다.
좋은 설명을 듣고 필요한 지원을 받는 것은 분명 힘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식상의 표현과 실행으로 이어지는지도 보아야 한다.
배운 것을 내 말로 정리한다.
직접 만들어본다.
예상과 다른 부분을 확인한다.
이 과정 없이 도움만 더 받으려 하면, 아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내 결과물은 그대로일 수 있다.
귀인의 연락처는 저장되어 있다.
작업 파일은 지난달 날짜다.
인성이 많으면 의존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받은 것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지, 더 받아야 움직일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물론 질문한다고 전부 떠넘기는 것은 아니다.
처음 배우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도 모를 수 있다.
설명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차이는 질문이 점점 어디로 가느냐에 있다.
“말씀하신 대로 두 가지로 고쳐봤습니다. 이 부분은 어느 쪽이 더 적절할까요?”
이 질문에는 자기가 해본 것이 있다.
상대도 어디에서 막혔는지 알 수 있다.
반면 이런 질문이 계속될 수도 있다.
“그런데 저는 시간이 없어서요.”
“저는 그걸 잘 못해서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방법이 없다는 답을 얻을 때까지 방법을 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그렇다고 조언하는 사람의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이유를 물었다고 불쾌해하고, 다른 의견을 내면 건방지다고 한다면 그 관계도 살펴야 한다.
배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복종이 아니다.
이해하고 판단해서 자기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다.
잘 아는 사람도 내 사정을 전부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도움을 잘 받는 사람은 무엇을 해달라는지만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까지 부탁하는지도 안다.
언제까지 답을 기다릴지도 정한다.
답이 없으면 자기가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 한다.
선배에게 다시 연락하기 전, 파일을 열었다.
불필요하다고 했던 페이지를 지웠다.
설명이 부족하다고 했던 작업에는 과정을 붙였다.
막상 해보니 어제는 몰랐던 질문이 생긴다.
이제야 구체적으로 물을 수 있다.
며칠 뒤 선배에게 수정한 자료를 보냈다.
짧게 답이 왔다.
“훨씬 낫네. 여기 한 군데만 더 고쳐봐.”
처음에는 저 사람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가 줄지 궁금했다.
이번에는 고칠 곳이 보이자 직접 해보고 싶어졌다.
귀인을 만난 효과는 그 사람과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보다, 만나기 전에는 못 하던 것을 이제 내가 하는지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