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커뮤니티

“우리 사이에 뭘”이라고 했던 사람이 계산을 시작했다

sean··읽음 16

친구가 가게를 연다고 한다.
메뉴판 디자인을 좀 도와달라고 한다.

“네가 이런 것 잘하잖아.”
“친구끼리 뭘. 보내봐.”

주말 하루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메뉴가 바뀐다.
가격도 바뀐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다른 색이 좋겠다고 한다.

메뉴판을 만들었더니 입간판도 필요하다.
입간판을 만들었더니 배달 앱에 올릴 이미지가 필요하다.

친구는 고맙다고 한다.
그러면서 파일을 하나 더 보낸다.

처음에는 개업을 돕고 싶었다.
지금은 가게에 취직한 것 같다.
출근은 안 하는데 퇴근도 없다.
수당도 없는데, 매일 야근한다.

어느 날 친구가 다른 업체에 광고를 맡겼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돈을 꽤 썼다.

그때 마음이 이상해진다.
나한테는 비용 이야기가 없었는데.
친구가 막 창업해서 돈이 없는 줄 알았는데...

결국 한마디 한다.
“나도 이거 하느라 주말 다 썼어.”

친구가 당황한다.
“처음에 그냥 해준다고 했잖아.”

맞다.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뒤에 붙은 문장이 있었다.

이 정도로 일이 커지면 알아서 챙겨주겠지.
적어도 어디까지 부탁해도 되는지는 물어보겠지.

그 문장은 상대에게 전달된 적이 없다.

조건을 말하지 않았다고 기대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끔 친한 사이일수록 설명을 생략한다.
알아서 알 것 같으니까.
돈 이야기를 먼저 하면 사이가 갑자기 저렴해지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입으로는 괜찮다고 하고, 마음속에서는 기록한다.

지난주 토요일.
이번 주 일요일.
밤 11시에 온 수정 요청.
고맙다는 말 뒤에 또 붙은 부탁.

상대는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배려가 없는 사람을 참고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일을 하는데 관계에 대한 설명이 달라진다.

명리에서 비겁을 친구와 동료처럼 나란히 서는 관계로 읽고, 재성을 현실의 자원과 몫에 연결해본다.
친구라는 사실이 시간과 돈의 배분까지 대신 정해주지는 않는다.
관성의 역할과 기준도 필요하다.

누가 무엇을 맡는지.
어디까지 해주는지.
일이 늘어나면 어떻게 할지.

친하다는 마음과 실제로 감당할 몫은 함께 확인해야 한다.
친구니까 잘해줄 수 있다.
친구니까 무한정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상대가 정말 몰랐을 수도 있다.
반대로 모르는 척하는 사람도 있다.
말을 안 하면 계속 부탁하고, 범위를 정하면 갑자기 서운해한다.

“너까지 이렇게 계산적으로 나올 줄 몰랐다.”

이상한 말이다.
자기는 계속 받을 것을 계산했는데, 이쪽이 쓸 시간을 계산하니 관계가 변했다고 한다.

친분을 이유로 조건을 묻지 못하게 한다면, 그 친분은 누구에게 유리하게 쓰이고 있는지 봐야 한다.

그렇다고 밥 한 끼 살 때마다 계약서를 쓰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사주고 싶어서 사줄 수 있다.
돌려받을 생각 없이 도울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어디까지 기꺼이 할 수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그 선을 넘었는데도 계속 “괜찮아”라고 하면 상대는 그 말을 믿거나, 편하게 이용한다.
어느 쪽이든 내 속마음대로 조정되지는 않는다.

처음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다.

“메뉴판 하나는 내가 해줄게. 수정은 두 번 정도 하자. 다른 홍보물까지 필요하면 그건 따로 이야기하고.”

조금 어색하다.
그래도 세 번째 주말을 보내고 “넌 원래 그런 사람이었냐”고 묻는 것보다는 작게 끝난다.

이미 시작했어도 말을 바꿀 수 있다.
조건이 바뀌었으니까, 말 바꾸는게 죄악은 아니다.

처음 약속한 것보다 일이 늘었다면 그 사실부터 이야기하면 된다.
처음에 무료로 해줬다고 앞으로 추가되는 모든 일까지 무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메뉴판은 마무리해줄게. 배달 앱 이미지는 별도 작업이라 비용과 일정을 정해야 해.”

잠시 뒤 답이 온다.
“아, 그것도 그냥 바꾸면 되는 줄 알았어. 얼마 정도 들어?”

생각보다 대화가 짧다.
물론 여기서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반응까지 미리 없애놓고 말할 수는 없다.

메뉴판 파일을 닫는다.
친구의 가게는 곧 문을 연다.
개업식에 화분 보내 말고, 내 맘속으로 퉁치기로 했다.
개업할때 가서 많이 먹어야지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이번 주말에는 약속을 잡는다.

서로 좋은 사람이기를 기대하는 것만으로는, 누가 주말을 내놓을지 정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 좋아요 3
댓글 쓰기 · 寫

로그인후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

댓글 · 答2
  • 익명.·

    좋은 글 감사드려요

  • 염화소녀_(구)남궁현자·

    친구야.. 코덱스로 수정해...ㅋㅋ🤣🤣

이어 읽기 · 續 자유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