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기 전에, 좋은 소식부터 지우는 사람
친구에게 새로 맡게 된 일을 이야기하려다가 멈춘다.
지난번에는 이런 말을 들었다.
“그거 오래 못 갈 텐데.”
“요즘은 아무나 시켜주나 보네.”
농담이었다고 한다.
웃었으니 넘어갔다.
이번에는 그냥 별일 없다고 한다.
친구는 편하게 이야기한다.
누가 마음에 안 들고, 회사가 얼마나 이상하고,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가식적인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나는 오늘 무슨 이야기를 했지?
별로 없다.
말하면 피곤해질 것들은 미리 빼고 갔으니까.
어떤 관계에서는 거짓말을 해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줄어서 멀어진다.
그렇다고 친구가 많으면 가짜이고, 적으면 진실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친구가 적은 이유가 본인의 까다로움일 수도 있다.
혼자 남았다고 자동으로 인품 인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볼 것은 숫자보다, 그 관계에서 반복되는 반응이다.
십신의 시선으로 보면 같은 친구의 좋은 소식도 다르게 들린다.
비견의 동일시가 작동하면 함께 기뻐한다.
“우리 중에 이런 일 하는 사람이 생겼네.”
친구의 성과가 가깝게 느껴진다.
반대로 자기 기준이 너무 강하면, 자기가 인정하는 방식의 성공만 축하한다.
“좋긴 한데, 나라면 그런 일은 안 해.”
친구가 선택했는데 최종 승인은 아직 자기에게 있는 모양이다.
겁재의 경쟁심이 먼저 움직이면 위치를 비교한다.
저 친구가 저만큼 갔으면 나는 어디쯤이지?
축하하면서도 속이 쓰릴 수 있다.
여기까지는 사람에게 생길 수 있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처리하려고 친구의 성과를 깎기 시작하면 달라진다.
“걔는 운이 좋았지.”
자기가 올라가는 대신 상대를 내려놓는다.
말 몇 마디라 당장은 훨씬 편하다.
상관은 좋은 소식에서도 허점을 발견한다.
“그 방식에는 문제가 있는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지적일 수 있다.
그런데 상대가 기뻐할 틈도 없이 평가부터 시작한다면, 다음 소식은 늦게 듣게 된다.
본인은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본다고 생각한다.
주변은 이 사람 없는 데서 이야기하면 된다는 것을 배운다.
편인은 숨은 사정을 찾는다.
“갑자기 왜 그 일을 너한테 맡겼대?”
위험을 먼저 알아챌 수도 있다.
반면 아무 근거 없이 뒷사정을 만들어내면, 친구의 좋은 일은 매번 수상한 일이 된다.
잘되면 누가 뒤에 있다.
안되면 자기가 그럴 줄 알았다.
어느 쪽이든 본인은 틀리지 않는다.
친구만 편하게 기뻐할 수 없다.
여기서 정인의 이해는 다른 역할을 한다.
“그동안 준비하더니 잘됐네.”
상대가 보낸 시간을 기억한다.
힘들 때도 사정을 듣고 쉽게 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해가 한쪽으로만 흐르면 만남이 달라진다.
한 사람은 늘 털어놓고, 다른 사람은 늘 받아준다.
오늘은 내 이야기를 하려고 만났는데.
상대의 세 번째 하소연을 듣고 있다.
식사는 끝났고 상담만 연장됐다.
식신의 여유는 그 자리를 편하게 만든다.
“일단 밥 먹자. 좋은 일인데 맛있는 것 먹어야지.”
함께 즐기는 시간이 있다.
매번 교훈이나 평가를 얻어갈 필요가 없다.
다만 불편한 이야기를 전부 피하면, 반복되는 무례도 웃음으로 덮는다.
“걔 원래 말이 좀 그렇잖아.”
그 말 덕분에 한 사람은 계속 편하다.
다른 사람만 계속 삼킨다.
정재는 관계에서도 주고받는 수고를 본다.
약속은 늘 누가 잡는지.
밥값은 누가 내는지.
부탁할 때만 연락이 오는지.
실제로 한쪽만 쓰고 있는 관계를 알아보는 데 필요하다.
반대로 작은 호의까지 매번 맞춰 받으려 하면 친구를 만나고도 미정산 금액이 남는다.
편재는 사람을 연결하고 기회를 나눈다.
“그 일 하면 아는 사람 소개해줄까?”
친구의 일을 자기 인맥과 이어준다.
그런데 사람보다 쓸모를 먼저 보기 시작하면, 소식에 따라 온도가 바뀐다.
직함이 생겼을 때는 자주 전화한다.
그만뒀다고 하니 바빠졌다.
관심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다만 나한테 있었는지는 다시 볼 일이다.
정관은 관계의 약속을 지킨다.
들은 비밀을 옮기지 않는다.
친하다고 시간을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기준을 모두에게 적용하면 친구들까지 생활 검사를 받는다.
만날 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듣는다.
칠살은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앞에 선다.
“누가 그랬어? 내가 같이 가줄게.”
위기에는 든든하다.
그러나 평소에도 자기 방식대로 해결하려 들면 도움을 받는 사람이 선택권을 잃는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
친구를 도운 것인지 부하를 둔 것인지 헷갈린다.
가까이할 사람을 고를 때는 장점이 있느냐뿐 아니라, 그 장점 때문에 내가 무엇을 계속 감수하는지도 봐야 한다.
한 번 하소연했다고 피할 사람은 아니다.
친구가 잘돼서 잠깐 부러웠다고 나쁜 사람도 아니다.
다만 내 이야기는 늘 끊기고.
좋은 소식은 늘 깎이고.
거절하면 늘 관계를 의심받는다면.
그 반복을 정이라는 말로만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다음 모임에서도 친구가 묻는다.
“요즘 왜 이렇게 네 이야기를 안 해?”
할 이야기가 없어진 것은 아닐 수 있다.
이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줄어든 것이다.
친구의 침묵을 성격이 변한 탓으로 돌리기 전에, 지난번에 그 사람이 들려준 기쁨을 내가 어떻게 받았는지부터 떠올려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