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보냈지, 심사를 부탁한 것은 아니다
친구가 단체방에 사진을 올렸다.
주말에 직접 만든 컵이라고 한다.
도자기 수업에 몇 번 나가더니 하나를 완성한 것이다.
조금 비뚤다.
손잡이도 큼직하다.
친구는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내일부터 회사에서 이걸로 커피 마시려고.”
누군가 묻는다.
“수강료 얼마야?”
금액을 듣더니 말한다.
“그 돈이면 좋은 컵 몇 개 사겠다.”
틀린 계산은 아니다.
그런데 친구는 컵을 싸게 조달하려고 주말마다 흙을 만진 것이 아니었다.
이어서 다른 사람이 말한다.
“손잡이가 너무 큰데? 비율이 좀 안 맞아.”
친구가 답한다.
“처음이라 그렇지 뭐. ㅎㅎ”
처음 올릴 때는 자기 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은 왜 잘 못 만들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가끔 누군가의 기쁨을 받자마자 검토할 물건으로 바꿔놓는다.
가격은 적절한가.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더 나은 선택은 없었는가.
아는 것이 있으면 말하고 싶어진다.
물론 자기 기준으로 말한다.
그런데 상대가 물은 것은 없었다.
사진 한 장 보냈을 뿐이다.
명리에서 상관(傷官)을 볼 때 기존 방식의 허점을 발견하고, 다른 의견을 표현하는 힘으로 읽을 수 있다.
남들이 그냥 넘긴 차이를 알아본다.
완성도를 높일 곳도 보인다.
일에서는 쓸모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발견한 것을 전부 말해야만 그 능력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제품을 출시하기 전 검토하는 자리라면 손잡이의 불편함을 이야기해야 할 수 있다.
취미로 처음 만든 컵을 보여주는 자리라면, 그 사람이 무엇을 기뻐하는지부터 볼 수도 있다.
같은 관찰도 쓰이는 자리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상관이 있다는 이유로 독설을 잘한다고 끝내거나, 솔직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하면 자기 표현을 조정할 여지가 사라진다.
그것 명리학을 지 변호에 쓰는 거다.
누군가는 상관이 있어서, 말 조심을 하고,
누군가는 내가 상관이 있어서 독설을 해 ,,, 그런다.
말할 줄 아는 것과 지금 그 말을 할 필요가 있는지는 따로 볼 일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잘했다고 칭찬하라는 뜻은 아니다.
마음에도 없는 감탄을 길게 하면 본인도 피곤하다.
“직접 만든 거야?”
“색은 네가 고른 거야?”
이 정도로 이야기를 이어갈 수도 있다.
상대가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완성도에 관한 평가가 아니라, 만드는 동안 있었던 일일 수 있으니까.
흙이 자꾸 주저앉았다.
손잡이가 떨어져서 다시 붙였다.
굽고 나니 색이 생각과 달라졌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비뚤어진 부분이 조금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친구가 조언을 부탁할 수도 있다.
실제 위험이 보이면 먼저 알려줘야 할 때도 있다.
"돈을 받지 않았다면, 조언하지 말라" 이런 말이 있다.
그게 뭔 소리 인가 싶지만, 그만큼 조언은 함부로 하는게 아니란 이야기다. 진심으로 조언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이런 경험 많을거다. 힘들게 조언했더니, 전혀 안들어. 오히려 니가 뭘 알아서 조언을? 이런 느낌을 준다. 말한 입장에서는 그럴꺼면 왜 물어본건데? 이게 되는 거지. 사실 내가 사람들 공짜로 사주 봐주는 것 꺼리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듣지도 않을거면서 왜 물어봐?
핵심은 입금 여부보다 상대가 지금 무엇을 나누려는 자리인가다.
반대로 상담료를 받았다면 듣기 좋은 말만 해줄 수도 없다.
사주를 보러 온 사람이 중요한 선택을 물었다.
그 선택에서 부담이 될 조건이 보인다.
그러면 근거와 함께 설명해야 한다.
돈을 받았으니 마음에 드는 결론을 내주라는 뜻은 아니니까.
함께 기뻐할 자리와 판단을 맡긴 자리는 다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순서가 바뀌기도 한다.
친구가 자랑할 때는 날카롭게 심사한다.
정작 어려운 문제를 물으면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한다.
자기가 쉽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에서만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좋은 소식을 덜 전한다.
비판이 무서워서만은 아니다.
기쁜 일을 설명하러 왔다가 자기 선택을 방어하는 것이 귀찮아진다.
그러다 어느 날 말한다.
“왜 그런 일 있었는데 나한테는 이야기 안 했어?”
지난번 컵이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보면 알 수도 있다.
다음 날 친구가 회사 책상 사진을 올린다.
그 컵에 커피가 담겨 있다.
모니터 옆에 놓으니 제법 잘 어울린다.
여전히 조금 비뚤다.
이번에는 누군가 이렇게 답한다.
“회사 가서 저거 쓸 생각에 좀 신났겠네.”
친구가 바로 답한다.
“응. 오늘은 커피도 집에서 안 마시고 왔어.”
그 사람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제 나온다.
컵의 비율은 그대로다.
그런데 대화는 조금 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