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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을 때는 돈이 대신 거절해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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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사려다 카페를 차릴 뻔했다 | 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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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좀 생긴 사람이 주말에 별장을 보러 간다.

전부터 갖고 싶었다.
마당에 나무도 심고.
가끔 고기도 굽고.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중개인이 말한다.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시죠.”

맞다.
예전에는 가격을 듣고 돌아왔을 것이다.

이번에는 살 수 있다.

그래서 집 안을 더 자세히 본다.
창밖도 보고.
주차할 자리도 보고.
손님이 오면 어느 방을 쓰게 할지도 생각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배우자가 묻는다.

“우리 여기 일 년에 몇 번이나 올까?”

갑자기 계산이 달라진다.

여기까지 운전해서 두 시간 반이다.
금요일 저녁이면 더 걸릴 것이다.
마당은 누가 관리하지?
겨울에 오래 비워놔도 괜찮나?

아무 생각 없이 쉬려고 왔는데, 아직 사지도 않은 집에 관한 생각이 계속 생긴다.

그러다 본인도 이상해진다.

갖고 싶었던 것이 별장이었나.
아니면 별장 하나쯤 살 수 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나.

둘이 같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돈이 생기면 살 수 있는 것이 늘어난다. 그런데 사고 싶은 이유까지 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돈이 대신 결정해줬다.

비싸다.
못 산다.
끝.

아쉬워도 선택은 간단했다.

이제는 살 수 있다.

그런데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좋아 보여도 관리하고 싶지는 않을 수 있다.
한 번 경험하고 싶은 것이지, 계속 소유하고 싶은 것은 아닐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돈이 없을 때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돈이 대신 해줬던 것이다.

거절도 해주고.
충동도 막아주고.
계획도 줄여주고.

물론 그때가 좋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돈 없어서 포기한 일을 돈 있는 사람이 추억처럼 이야기하면 좀 많이 짜증 난다. 그 사람은 추억인데, 당신은 자랑으로 듣는다.

다만 형편이 나아졌을 때 새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뜻이다.

못 해서 안 하던 일 가운데, 할 수 있어도 안 할 일을 골라야 한다.

이것이 의외로 어렵다.

친한 친구가 같이 뭘 해보자고 한다.

예전에는 쉽게 말했다.

“나 돈 없어.”

친구도 더 말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 대답을 쓸 수가 없다.
얼마 전에 잘됐다는 이야기를 본인이 신나게 했다.

그래서 돌려 말한다.

요즘 바빠서.
조금 더 알아봐야 해서.
가족과 상의해봐야 해서.

친구는 하나씩 해결해준다.

“네가 직접 할 일은 별로 없어.”
“자료는 내가 다 줄게.”
“형수님한테 내가 설명드릴까?”

참 적극적이다.

필요했던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었는데...
거절할 구멍을 하나씩 메워준다.
그래서 이유를 가지고 거절 하면 안된다고 하는거네를 돈이 생겨서야 알게 된다.

결국 해야 할 말이 남는다.

“나는 이번에는 안 할게.”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은 상대도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돈이 있는데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떤 사람은 자기와의 관계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너 이제 좀 괜찮아졌다고 그러는 거야?”

그 말을 듣기 싫어서 마음에 없는 약속을 하기도 한다.

돈이 생긴 뒤에 처음 쓰는 큰돈이, 갖고 싶던 물건값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한 비용이 되는 것이다.

명리에서 재성(財星)을 일간이 극하는 오행이라고 한다.

내가 다루고 운용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뜻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재를 감당한다는 말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뜻으로만 이해하면 범위가 너무 좁다.

돈이 들어왔을 때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에는 쓰지 않을 것인지.
어디까지 내가 결정하고, 어디부터 남의 요구에 끌려가는지.

이런 모습도 함께 살펴야 한다.

재를 다룬다는 것은 계속 움직인다는 뜻만이 아니다. 필요할 때 그대로 둘 수 있는 것도 다루는 능력이다.

돈이 들어오면 가만히 두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뭘 해야 할 것 같다.
누군가는 이 돈으로 벌써 더 벌고 있을 것 같다.
좋은 기회를 그냥 보내면 손해인 것 같다.

아직 잃은 것은 없다.

그런데 마음속에서는 벌써 남보다 늦었다.

이 상태에서는 제안을 검토하기 전에 자신을 재촉한다.

돈이 없을 때는 돈을 벌려고 바빴다.
돈이 생기니 그 돈을 쉬게 두지 않으려고 바쁘다.

통장 잔액은 늘었는데 본인은 여전히 쫓기는 것이다.

그래서 왕쇠를 볼 때도 단순히 강하니 큰돈을 가져도 되고, 약하니 가지면 안 된다고 나누지 않는다. 왜냐면 강하면 도대체 얼마나 어디까지 강해야 하는데? 도대체 약하면 얼마나 약해야 감당을 못하는 건데? 그것 생각해봤나?

펀역이 아홉 단계로 세밀하게 보는 것은 어느 정도의 힘이며 무엇이 받쳐주고, 어떤 조건에서 부담이 달라지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다.

재의 크기만 볼 것이 아니라 재와 연결된 작용을 함께 보아야 한다.

비겁이 받쳐주는가.
인성이 필요한 기반을 유지해주는가.
재가 관살로 이어지며 책임을 얼마나 키우는가.

그리고 여기서 감당하는 힘을 인격의 등급으로 바꾸면 안 된다.

돈 때문에 흔들렸다고 복이 없는 인간이라고 하면 설명이 편해진다.

그런데 무엇이 흔들렸는지는 하나도 알 수 없다.

관계에서 거절을 못 했는가.
일시적으로 들어온 돈을 계속 들어올 돈처럼 생각했는가.
익숙하지 않은 일을 너무 크게 시작했는가.

이렇게 내려와야 조정할 자리도 보인다.

‘큰돈을 담을 그릇이 안 된다’는 말은 크고 그럴듯하다.

그릇 어디가 새는지까지 봐줘야 쓸모가 있지 않나.

그냥 작은 그릇이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평생 종지로 살아야 하나 싶어진다.

돈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도 조금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전에는 충동이 생겨도 실행할 돈이 없었다.
전에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도 한 번에 크게 보여줄 방법이 없었다.
전에는 화가 나도 당장 회사를 그만두지는 못했다.

돈이 생기면 생각과 행동 사이에 있던 장애물이 줄어든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전에도 있던 마음이 더 크게 실행되는 것일 수 있다.

기분이 상하면 물건을 하나 사던 사람이 있다.
이제는 차를 바꾼다.

누가 자기를 무시한 것 같으면 한동안 씩씩거리던 사람이 있다.
이제는 그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새 일을 크게 벌인다.

사업을 하려는 것인지.
지난번 모임의 기분을 정산하려는 것인지.

본인도 처음에는 구분이 잘 안 된다.

문제는 감정은 며칠 뒤 달라질 수 있는데, 계약은 그 감정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다는 것이다.

그때는 꼭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은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매달 돈은 나간다.

비겁과 재의 관계를 생활에 연결할 때도 이런 비교의 작용을 살펴볼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서 힘을 얻기도 한다.
같은 사람이 가진 것을 보면서 내 자원의 용도가 바뀌기도 한다.

원래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했다.

그런데 같이 시작한 사람이 좋은 집으로 옮겼다.
나도 갈 수는 있다.

여기서부터 집의 불편한 점이 갑자기 잘 보인다.

어제까지 괜찮았던 부엌이 오늘은 좁다.
엘리베이터도 낡았다.
동네 분위기도 조금 아쉽다.

집은 하룻밤 사이에 변하지 않았다.

비교 대상이 바뀌었다.

돈이 적을 때는 남의 집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이제는 남의 집을 보고 내 집을 바꾸려고 한다.

돈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비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비교를 실제 소비로 옮길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비겁을 무조건 도와주는 사람이나 빼앗는 사람으로만 읽으면 부족하다.

실제로 누가 돈을 가져가지 않았어도, 그 사람을 의식하느라 내가 쓰는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명리의 관계를 본다는 것은 이런 움직임까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돈이 많아지면 가족도 같은 돈을 서로 다른 것으로 보기 시작한다.

한 사람에게는 다시 잃지 않아야 할 돈이다.
한 사람에게는 이제 좀 써도 되는 돈이다.
아이에게는 처음부터 집에 있었던 돈이다.

돈을 모은 사람은 한 번의 지출을 보며 그 돈을 벌던 시간을 떠올린다.

그런데 자녀는 그 과정을 모른다.

아이에게 늘 들려준 말은 “걱정하지 마”였다.
필요한 것은 준비해줬다.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시절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그렇게 키워놓고 어느 날 묻는다.

“넌 돈 귀한 줄을 왜 모르냐?”

부모 입장에서는 답답하다.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는 처음 듣는 과목의 시험을 갑자기 치는 기분일 수도 있다.

고생을 물려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결과만 넘겨주는 것과, 선택의 과정을 알려주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왜 이것은 사고 저것은 미루는지.
남들이 한다고 전부 따라갈 필요는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가족에게 가능한 소비라고 해서 누구나 당연히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이런 것은 잔고와 함께 자동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인성(印星)을 나를 받쳐주는 지식과 보호, 익혀온 판단의 기반으로 읽어보면 이 차이를 생각할 수 있다.

돈은 한 번에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돈을 다루며 판단해온 과정까지 같은 날 전달받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부자가 3대 쯔음 되면, 돈은 원래 있는 것이 된다.
국가도 부유해지면, 몇년도 이후 출생자들은 선진국 출생자가 되기에 마인드가 바뀐다.

반대로 이미 자기 기반이 있는 사람도 당장의 이익 때문에 그것을 밀어낼 수 있다.

오랫동안 해온 일이 있다.
그 일에서는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안다.
모르는 것은 물어볼 사람도 있다.

그런데 돈이 생긴 뒤 전혀 다른 분야로 크게 들어간다.

“이 정도 규모면 전문가 쓰면 되지.”

전문가를 쓸 수는 있다.

그 전문가가 무엇을 잘하는지.
내게 설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지.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 동의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까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늘 옳은 답을 주는 것은 아니고
최종 의사결정과 책임은 여전히 내 몫이다.

필요한 인성을 재가 손상하는 경우를 볼 때도 단순히 돈 때문에 공부를 안 한다는 정도로만 읽을 필요는 없다.

이익을 얻으려는 속도가, 자신을 지탱하던 확인과 학습의 과정을 밀어내는 모습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재극인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배우기만 하고 움직이지 못하던 사람에게 현실의 요구가 필요할 수도 있다.

다만 지금 필요한 것이 현실로 나아가는 자극인지, 이미 너무 빨라진 선택을 검토할 기반인지는 구분해야 한다.

돈이 많아졌다고 익숙하지 않은 일까지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은 부자는 검소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간다.

꼭 그렇지는 않다.

좋은 것을 누리려고 돈을 벌기도 한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편하게 이동하고.
시간을 살 수도 있다.

누리는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할 이유는 없다.
돈 벌어서 돈을 써야 ,,, 유통도 되고, 다른 사람도 돈 벌고,
그렇기에 누린다. 쓴다. 그것은 나쁜게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데도 돈을 쓸 때마다 죄책감이 들고,,괴롭다면 그것도 편한 삶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가격보다 내가 선택하고 있는가다.

좋아서 사는가.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사는가.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사는가.
이미 그 정도 쓰는 사람으로 알려져서 계속 쓰는가.

네 가지가 겉에서는 똑같은 결제로 보인다.

그런데 지출 뒤에 남는 기분은 다를 수 있다.

마음에 들어서 산 것은 쓰면서 즐겁다.
자기 위치를 증명하려고 산 것은 누가 알아봐줘야 일이 끝난다.

못 알아봐주면 슬쩍 보여주던것을 더 대놓고 보여줘야 한다.

이게 구하기 어려운 거라고.
요즘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아는 사람은 바로 안다고.

물건을 산 뒤 홍보 업무까지 생겼다.

돈을 편하게 누린다는 것은 언제나 비싼 선택을 하는 상태가 아닐 것이다.

좋은 것을 골라도 되고.
익숙한 것을 그대로 써도 되고.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가까울 수 있다.

생활이 괜찮다면 괜찮은 채로 둘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진짜 부자는 반바지에 슬리퍼를 입고 회의할 자격을 얻는다고 이야기를 한다. 물론 정치가를 상대로 그러면 안된다.

수입이 늘었다고 반드시 집의 평수도 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나는 사람의 직함이 높아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달력에 새 일정이 더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돈이 만들어준 여유를 꼭 다음 일로 바꿔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돈이 생기면 삶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그 업그레이드라는게, 도대체 나를 위한 건지? 타인을 위한건지 모르기 쉽다.

모르고 바꾼다.

더 큰 집.
더 많은 물건.
더 넓은 관계.
더 중요한 자리.

어느 순간 보니 유지해야 하는 것이 많아졌다.

전에는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가진 것을 관리하느라 시간이 없다.

이것을 전부 재복이 커졌다고만 부를 수 있을까.

명리에서 재를 본다면 들어오는 규모와 함께 그 재가 사람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는지도 보아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늘었는가.
아니면 해야 하는 일이 늘었는가.

둘은 비슷해 보여도 하루를 아주 다르게 만든다.

처음의 별장을 보러 간 사람이 며칠 뒤 연락을 받는다.

“어떻게 생각해보셨어요?”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
돈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지 않기로 한다.

“지금은 주말까지 관리할 것을 늘리고 싶지는 않네요.”

상대가 다른 장점을 설명한다.
가격도 조금 조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결정은 같다.

집이 나쁜 것도 아니다.
살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 자기 생활에는 없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냥 차라리 주말에 펜션을 빌린다.
혹은 방금 본 집 비슷한게 에어비엔비로 나오면, 통째로 빌린다.

고기 마당에서 구워먹고 싶으면, 구워 먹고
불판은 누군가 씻는다.

돌아오는 길에 배우자가 묻는다.

“별장 안 산 것 아쉽지 않아?”

조금 아쉽다.

그런데 다음 주말에 또 가야 할 똑같은 집이 없다는 것은 마음에 든다. 다른 나라 가도 되고, 더 이뻐 보이는 집 가도 되고, 무엇보다도 내가 관리 안해도 되니, 짐이 줄었다.

이번에는 돈이 모자라서 포기한 것이 아니다.

돈이 있어도 자기 주말까지 같이 내놓지는 않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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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2
  • 익명.·

    감사합니다.

  • 사랑뽀·

    그러고보면 부자들은 경제적 자기 주관이 확고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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