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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 일이 꼭 잘된 일이 되어야 하나

sean··읽음 24

해외 근무를 준비하던 사람이 있다.

가족과도 이야기했다.
어느 동네에서 살지 찾아봤다.
아이 학교도 몇 군데 알아봤다.

외국어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그 나라에서 살 집은 아직 없는데, 주말에 갈 식당은 이미 여러 곳 저장했다.

그러다 회사 사정이 바뀌었다.

파견이 취소됐다.

주변에서 위로한다.

“오히려 잘된 거야.”
“외국 나가면 고생이지.”
“다 이유가 있겠지. 하늘이 도운 걸 수도 있어.”

듣고 있으면 조금 편해진다.

그래.
안 간 것이 나을 수도 있지.

그런데 몇 달 뒤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갔다.

잘 지내는 것 같다.

주말에는 가족과 근처 도시를 여행하고.
회사에서도 좋은 경험을 쌓고 있다고 한다.

사진이 이뻐도 너무 예쁘다.
게다가 애들이 외국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조금 곤란해진다.

하늘이 나를 보호한 것이라면, 저 사람은 보호 대상이 아닌가??

그렇다고 저 사람이 고생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아니다.
사진을 넘기다가 잠깐은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게 인간 아닌가?

인터넷에는 좋은 것만 올리는 거잖아.
저기도 분명 힘든 일이 있겠지.
있을꺼야

이제 자기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남의 생활에 숨은 불행을 찾고 있다.

원래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우리는 일이 안 됐을 때 그 일을 견딜 수 있는 설명을 찾는다.
인간의 뇌란 그렇게 설계되어 있으니까

인연이 아니었다.
때가 아니었다.
더 좋은 것이 오려고 그러는 것이다.

이런 말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특히 현재의 감정을 달랠때 도움이 된다.

당장 이유를 다 알아내지 못해도, 오늘 하루를 넘기게 해준다.

문제는 그 말을 나중에 반드시 증명해야 하는 약속으로 만들어버릴 때다.

놓친 일이 꼭 나쁜 일이 되어야만, 내가 괜찮아질 수 있는가.

안 간 회사가 망해야 한다.
내가 못 산 것은 불량률이 폭발해야 한다.
헤어진 사람이 불행해야 한다.
헤어진 후, 그 사람 잡은 다음 사람은 나보다 못나야 한다.
내가 줄서서 먹으려다가 포기한 맛집은 담날 식중독 사고 났다고 신문기사 나와야 한다.

그래야 “거봐, 잘된 일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은 내 위로에 맞춰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 회사가 더 잘될 수도 있다. 내가 이직후 , 내 이직 사유였던 연봉이 급상승해서 이직후 현재 나보다 훨씬 높아졌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 잘 살 수도 있다. 아니 왜 나랑은 싸우면서, 그 사람하고는 알콩달콩하지, 그것도 5년째? 내 인성 문제였던거야?
그 맛집은 별문제 없이 여전 계속 줄서도 먹기 힘든 집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남아 있는 내 삶까지 잘못된 것이 되지는 않는다.

좋은 기회를 놓쳤을 수 있다.

아쉽다.
생각하면 아직 속상하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는 것과, 앞으로도 계속 불행해야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생각을 줄이란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나 그게 안되는것 알면서, 귀찮아서 그렇게 이야기한거다.

우리는 가끔 자기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사실까지 바꾸려고 한다.

“별로 가고 싶지도 않았어.”
"별로 사랑하지도 않았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검색 기록을 보면 상당히 가고 싶었던 것 같다.

이사할 집의 채광까지 보고 있었다.
별로 관심 없는 사람치고는 현지 마트 할인일까지 알고 있다.

그냥 가고 싶었다고 해도 된다.

기대했고.
준비했고.
안 돼서 서운하다.

그 마음을 인정한다고 운에 진 것도 아니고, 인생을 잘못 산 것도 아니다.

명리학에서도 좋은 운이면 원하는 일이 전부 이루어지고, 나쁜 운이면 원하는 일이 전부 막힌다고 보지 않는다.
그럴리가 없잖아. 명리학은 세상과 동떨어진 세계를 논하는 학문일리가 없잖아?

내가 원하는 결과와 명식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는 조건은 구분해야 한다.

재가 들어왔다.

돈 될 일도 생겼다.
규모도 커질 수 있다.

그런데 그 재가 관살을 더 생해서, 감당할 책임과 압박까지 키울 수 있다.

기회는 얻었다.
일도 커졌다.
그러나 생활은 더 버거워질 수 있다.

반대로 어떤 결합이 풀리면서 처음에는 손실처럼 느껴져도, 그 결합 때문에 묶여 있던 작용이 살아나는 경우를 검토할 수 있다.

합이 풀렸으니 무조건 좋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을 붙잡고 있었는가.
무엇이 풀렸는가.
그다음 다른 글자들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 관계를 봐야 한다.

사건의 이름과 그 사건이 판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같지 않다.

합격.
계약.
승진.
결혼.

이름은 좋다.

그런데 이름만 보고 길하다고 끝내면, 그 뒤에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가 빠진다.

합격해서 들어간 회사에서 인생 최대 소인배를 만났다.
계약을 했는데, 위약금을 물어줘야 할 사건이 터졌다.
임원 승진을 했더니, 회사가 짐싸서 나가란다.
결혼후 인생이 불행해졌다.

사건 자체로 길흉은 판정이 안된다!
특히 사건으름으로 말이지

탈락.
취소.
이별.
이동.

듣기는 싫다. 엄청 흉한 운 같지 않냐?

그렇다고 그 이름만으로 이후의 모든 작용이 불리하다고 정할 수도 없다.

중소기업 탈락하고 삼성전자 취업했다.
계약 취소 되고, 더 큰 계약 땋다
이별 했더니, 진짜 똥차가고 벤츠가 왔다.
이동했더니, 인생의 천국이다.

자 이제 흉해보였던 단어가 어떻게 보이나?

명리는 여기서 더 살펴볼 질문을 주는 것이지, 안 된 일마다 “사실은 하늘이 도운 것”이라는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 아니다.

왜 유리한가.
어떤 부담이 줄었는가.
무엇을 잃었고, 대신 어떤 선택이 남았는가.

설명이 있어야 한다.

아무 설명 없이 “다 잘된 일입니다”라고 하면 듣기는 좋다.

그런데 이것은 사주를 보기 전에도 할 수 있는 말이다.

명식을 열어놓고 할 일이 조금 더 있어야 하지 않나.

물론 살다 보면 시간이 지난 뒤 다른 면이 보이는 일은 있다.

그때는 못 들어간 자리가 너무 아쉬웠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곳의 생활을 자기가 오래 버티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당시에는 헤어진 것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관계를 유지하느라 포기하던 것들도 보인다.

이런 깨달음은 실제로 도움이 된다.

다만 결과를 알고 난 뒤 붙이는 설명과, 당시 판단할 수 있었던 내용을 섞지는 말아야 한다.

나중에 잘 풀렸다고 그때의 선택이 전부 정확했던 것은 아니다.

대충 결정했는데 운 좋게 넘어갔을 수도 있다.

반대로 나중에 어려워졌다고 당시의 판단이 전부 어리석었던 것도 아니다.

그때 확인할 수 있는 것을 확인했고, 감당할 조건도 따졌는데 예상 밖의 변화가 생겼을 수 있다.

이 구분이 없으면 결과가 좋을 때는 자기 안목을 과신하고, 나쁠 때는 과거의 자신을 끝없이 혼내게 된다.

과거의 자신에게는 지금 아는 정보가 없었다.

과거의 나를 불러다가 따져봤자 억울할 것이다.

“그걸 알았으면 내가 그랬겠냐?”

할 말이 있다.

그래서 지나간 일을 돌아볼 때도 두 가지를 나누어 보는 편이 좋다.

내가 확인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었나.
확인해도 알기 어려웠던 것은 무엇이었나.

앞의 것은 다음에 바꿀 수 있다.
뒤의 것은 계속 자기를 벌준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다 이유가 있겠지”라는 말을 쓸 자리도 있다.

오늘 밤에는 이유를 몰라도 되겠다.
지금은 잠깐 쉬고 내일 생각하겠다.
이 일 하나로 내 인생 전체를 결론내리지는 않겠다.

이 정도의 뜻으로 쓸 수 있다.

그런데 돌려받아야 할 돈이 있고.
확인해야 할 내용이 있고.
다음 선택을 위해 정리할 것이 있는데.

“인연이 아니었나 봐요.”

그러면서 손을 놓으면 곤란하다.
그것은 내려놓은게 아니다.

마음을 달래는 일과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는 것은 같이 갈 수 있다.

인연은 끝났어도 돌려받을 것은 남아 있을 수 있다.

우주가 정산까지 해주지는 않는다.

순리대로 산다는 말도 비슷하다.

되는 대로 두는 것과, 바뀐 조건에 맞춰 움직이는 것은 다르다.

해외 파견이 취소됐다면 당장 바꿀 수 없는 결정일 수 있다.

그렇다고 준비했던 시간이 전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부한 언어는 남는다.
가족이 어떤 생활을 원하는지 나눈 이야기도 남는다.
지금 직장에서 무엇이 아쉬웠는지도 조금 더 분명해졌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러니 실패도 다 자산입니다”라고 바로 결산할 필요는 없다.

아직 아쉽다고 하는 사람 앞에서 교훈부터 뽑아내면, 그 사람은 속상해할 시간까지 빼앗긴다.

준비한 시간 중에는 실제로 아까운 것도 있을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비용도 있을 것이다.

그것까지 전부 좋은 경험이라고 포장할 필요는 없다.

남은 것을 써볼 수 있다는 것과, 잃은 것이 없다는 것은 다르다.

명리에서 운을 보는 것도 지나간 손실을 예쁘게 설명하는 데만 쓰면 아깝다. 물론 그렇게 써서 맘이 편하다면, 그걸로도 돈 쓴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충분히 최대한 이용한다면,

현재 어떤 조건이 남았는가.
다음 운에서는 무엇이 달라지는가.
지금 밀어야 할 부분과 줄여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여기로 넘어가야 한다.

원국과 운의 작용이 달라졌는데 예전에 원했던 결과만 계속 붙잡고 있으면, 지금 쓸 수 있는 것을 놓칠 수 있다.

그때 좋았던 길이 지금도 같은 조건으로 열려 있는지부터 봐야 한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본인만 몇 년 전 신청서를 들고 서 있을 수 있다.

누가 그 길로 가라고 시킨 것도 아니다.

자기가 너무 오래 기다렸다는 이유로, 이제는 그 길밖에 못 가겠는 것이다.

기다린 시간이 선택의 이유를 대신하기 시작한 셈이다.

처음의 그 사람은 휴대폰에 저장해둔 해외 식당 목록을 본다.

당장 갈 일은 없다.

그렇다고 화가 나서 전부 지우지는 않는다.
그 나라가 잘못한 것도 아니니까.

언젠가 여행으로 갈 수도 있다.
안 갈 수도 있다.

다만 이제 매일 다른 사람이 올린 현지 사진을 찾아보지는 않는다.

그 사람이 잘 지낸다고 내 취소가 더 큰 실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조금씩 든다.

하늘이 나를 보호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 일이 정말 더 좋은 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 할 일을 정하는 데 그 답까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저장 목록에 있던 식당 하나를 다시 본다.

맛있어 보인다.
여전히 가보고 싶다.

“내 돈 내고 가야 하나?”

좀 아깝다.
회사 돈으로 갈 수 있었는데.

그 정도 아쉬움은 남겨둬도 된다.

물론 회식이나 고객 접대 장소로 정해도 된다.

그리고, 기회는 단 한번이 아닐수도 있다.

미련이 남는게 정상이지만,

모든 미련을 깨끗하게 지워야만, 다음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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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7
  • 라비상트·

    작은 일에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 애쓰는데도 당장 눈 앞에 벌어진 일에 뛸 듯이 기쁘거나 인생 망한듯이 슬퍼지는 마음을 다스리기가 참 어려워요. 지나고보니 100% 완벽하게 좋은 것도 100% 완벽하게 나쁜 것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상을 앞에 두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를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지금의 제게 필요한 이야기였어요.

    • sean·

      그런게 원래 인간이죠. 다 그렇게 사는데, 알면서 조금씩 개선을 할 수 있다는 거죠

  • 제비·

    <현재 어떤 조건이 남았는가. 다음 운에서는 무엇이 달라지는가. 지금 밀어야 할 부분과 줄여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여기로 넘어갈 수 있는 명리공부를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익명.·

    담담하게 넘기기가 어려울 때 이유라도 찾아 넘어가나봅니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고 단면만으로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 없는 것을 알지만은.

  • 블루베리파이·

    감사합니다!!

  • 사랑뽀·

    당연히 할거라 생각했는데 못하게 되어 속상했었던 일들이 떠오르네요ㅜ특히 올해 그런게 많았어요.. 기대를 너무 많이했어서 더 속상한 것도 있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밀린 것 같은 느낌에 속상하기도 했고요 애초 계획과 달라져버려서 당황스럽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인생은 정말 뜻대로 되지않는다는걸 느꼈다는ㅜㅜ 앞으로는 미리 준비를 더 많이 하고 대비해야겠다는 가르침도 얻었고, 모든일에는 변수가 있을수 있다는걸 염두해둬야겠더라구요..ㅠ

    • sean·

      또, 그래야 배우니까..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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