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젠장, 그때 그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sean··읽음 24
싸울 때는 말이 안 나왔는데, 씻다가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아.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럼 본인은 왜 그렇게 하셨어요?”
이 한마디면 됐는데.
왜 그 자리에서는 웃고 있었을까.
샤워하면서는 말이 잘 나온다.
논리도 정확하고.
상대가 뭐라고 할지도 다 예상된다.
욕실에만 들어가면 토론 실력이 좋아진다.
문제는 상대가 없다는 것이다.
상대는 이미 저녁 먹고 편하게 쉬고 있을 수도 있다.
이쪽은 샴푸 거품을 머리에 얹고 재대결 중이다.
그 자리에서는 별일 없었던 것처럼 넘겼다.
분위기 이상해질까 봐.
괜히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다들 있는데 얼굴 붉히기 싫어서.
그런데 집에 와서는 별일이 아니지 않다.
상대가 한 말보다 자기 반응이 더 마음에 안 든다.
왜 웃었지?
왜 괜찮다고 했지?
왜 거기서 한마디를 못 했지?
처음에는 그 사람이 미웠는데, 나중에는 자기가 답답해진다.
심지어 스스로를 저주한다.
남이 한 번 기분 나쁘게 했는데, 그다음부터는 본인이 이어서 하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그냥 잊어.”
“네가 이해해.”
“좋게 생각해.”
좋게 생각이 됐으면 지금 이러고 있겠나.
그것도 위로라고 하냐? 그러면서 분노를 잠깐 전이할 수 있다.
잊는 방법을 물었는데 잊으라는 답을 받았다.
배가 고프다고 했더니 배부르면 된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우리는 감정도 결심하면 바로 정리되는 줄 알 때가 있다...
남의 감정은 특히
화내지 않기로 했으니까 안 나야 하고.
넘어가기로 했으니까 생각나면 안 되고.
어른이니까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
그런데 입으로 괜찮다고 말한 것과, 실제로 괜찮아진 것은 다르다.
입이 너무 빨리 합의했을 수도 있다.
마음은 회의 참석도 못 했는데.
당장 잘 받아치지 못했다고, 그 일을 앞으로도 계속 받아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뒤끝있다고 또 욕먹을수도 있기는 하지만,
이것부터 알아두면 조금 달라진다.
그때는 당황했다.
무슨 뜻인지 늦게 알아들었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불편했다.
그럴 수 있다.
“아까는 그냥 넘겼는데, 그 말은 불편했습니다.”
나중에 말할 수도 있다.
꼭 현장에서 멋진 한마디로 모두를 조용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에서는 가능하다.
작가가 며칠 동안 생각해서 써준 대사니까...
게다가 작가들은 상관 쓰는 분이 많다. 공격력이 얼마나 강한데,
그걸 못했다고 자책하나?
현실에서는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면 일단 웃음부터 나오는 사람도 있다.
그 웃음이 동의는 아니다.
그 순간을 어떻게 지나갈지 몰랐던 것일 수 있다.
그러니 늦게 알아차린 마음까지 무효로 만들 필요는 없다.
다만 기분이 상했다고 곧바로 모든 생각을 전송할 필요도 없다.
밤 열두 시에 메시지를 쓴다.
처음에는 오늘 있었던 일만 쓰려고 했다.
쓰다 보니 지난달 일도 생각난다.
그전 모임도 생각난다.
평소에 마음에 안 들던 말투까지 들어간다.
어느새 상대는 오늘 말실수를 한 사람이 아니라, 원래 문제가 많은 인간이 되어 있다.
문장이 길어질수록 보내고 싶어진다.
이 정도로 정리했으면 상대도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작성한 것은 요구 사항인지, 인물 평전인지 한번 봐야 한다.
“여럿 있는 자리에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말을 하려던 것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은 “당신은 늘 그런 식으로 살아왔잖아요”가 되어 있다.
혹은 절교 선언으로 변해있다.
앞의 말에는 바꿀 행동이 있다.
뒤의 말에는 싸울 거리가 많다.
억울한 마음을 인정하는 것과, 그 마음이 시키는 일을 전부 하는 것은 다르다.
울고 싶으면 울 수도 있다.
잠깐 자리를 피할 수도 있다.
종이에 하고 싶은 말을 다 써볼 수도 있다.
꼭 점잖고 예쁜 방식으로만 자기 기분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혼자 쓴 글에까지 인격자가 등장할 필요는 없지 않나.
다만 그 종이를 상대에게 보내는 것은 다른 결정이다.
쓴다고 다 발송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체국도 그 정도로 적극적이지는 않다.
명리에서 상관(傷官)이 정관을 극한다는 관계를 이야기한다.
생활의 모습으로 풀어보면, 정해진 방식에 질문하고 불편한 것을 말로 드러내는 장면과 연결해볼 수 있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그 말을 듣고도 묻는다.
왜 원래 그래야 하는데?
누구에게 편한 방식인데?
계속 내가 참아야 유지되는 관계인가?
이런 질문이 필요한 때도 있다.
그렇다고 상관이 있으면 화를 내야 한다거나, 규칙에 반대하면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판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봐야 한다.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입을 다무는 것이 언제나 성숙한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이 언제나 용기인 것도 아니다.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에 따라 표현도 달라져야 한다.
상대가 다음부터 그 행동을 안 했으면 하는가.
아니면 지금 나만큼 기분이 나빴으면 하는가.
둘 다 들 수 있는 마음이다.
다만 두 번째 마음으로만 말을 고르면, 원래 해결하려던 일은 뒤로 밀리기 쉽다.
이제는 상대도 자기가 상처받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 문제는 작은데 사건 관계자가 늘어난다.
옛날 일까지 증인으로 출석한다.
그래서 화가 났을 때는 자신에게 조금 구체적으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말이 불편했는가.
무엇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가.
내가 할 수 있는 조정은 무엇인가.
상대가 무례하다는 결론만 가지고 있으면 할 일이 별로 없다.
계속 무례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반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여러 사람 앞에서 꺼낸 것이 문제라면, 앞으로 그 사람에게 어디까지 말할지 정할 수 있다.
약속 시간을 반복해서 바꾸는 것이 문제라면, 다음에는 그 사람 일정에 맞춰 하루를 비워두지 않을 수 있다.
사과를 받아야만 모든 조정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상대가 끝까지 자기 잘못을 모르더라도, 내 쪽에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있다.
물론 마음은 그렇게 빨리 따라오지 않을 수 있다.
할 말도 했다.
거리를 두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뒤 또 생각난다.
그러면 또 자신을 혼낸다.
나는 왜 이렇게 뒤끝이 길지?
아직도 이걸 생각하네.
그럴 필요는 없다.
**생각이 다시 난 것과, 그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은 다르다.**
떠오를 수 있다.
여전히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그렇다고 매번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복기할 필요는 없다.
이미 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기억하면 된다.
다음에는 그 부탁을 받지 않기로 했다.
그 사람에게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필요한 말은 이미 전했다.
새로 알아낸 것도 없는데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심문하고 있지는 않은가.
상대의 숨은 의도를 완벽하게 밝혀내야만 끝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러 그랬나.
질투했나.
나를 만만하게 보나.
알면 시원할 것 같다.
그런데 확인할 수 없는 의도를 계속 추적하다 보면, 그 사람을 안 만나는 날에도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
정작 본인은 연락도 안 했는데.
머릿속에서는 아주 자주 출석한다.
또 하나는 구분해야 한다.
참아서 병이 난다.
성격을 바꿔야 몸도 낫는다.
이런 말로 모든 몸의 문제를 설명할 수는 없다.
아픈 사람에게 마음을 잘못 써서 그렇다고 하면, 아픈 것에 잘못까지 하나 더 얹는다.
몸이 불편하면 몸의 원인을 살펴야 한다.
관계에서 반복되는 부담은 그것대로 다뤄야 한다.
마음 편하게 먹으라는 말 한마디로 둘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평생 아무 일에도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까지는 아닐 것이다.
싫었던 일을 싫었다고 인정하고.
필요한 말은 조금 늦더라도 하고.
같은 일을 반복해서 받아들이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
그 정도부터 해볼 수 있다.
오늘 누군가에게 기분이 상했다면, 바로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이해가 안 되면 아직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용서도 안 했는데 주변에서 먼저 용서한 사람으로 만들어놓을 필요는 없다.
“네가 마음이 넓잖아.”
넓다고 아무나 들어와서 신발 신고 돌아다녀도 되는 것은 아닌데.
처음의 그 사람은 샤워를 마치고 메시지를 다시 본다.
상대 인생 전체를 평가한 부분은 지웠다.
몇 년 전 일도 뺐다.
남은 말은 짧다.
“다음 모임에서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는 꺼내지 말아주세요. 오늘은 불편했습니다.”
당장 속이 후련하지는 않다.
상대가 뭐라고 답할지도 조금 신경 쓰인다.
그래도 이번에는 자기가 괜찮지 않았다는 사실을 없던 일로 만들지는 않았다.
머리를 말리다가 또 기막힌 한마디가 생각난다.
아, 이것도 쓸걸.
잠깐 고민하다가 휴대폰은 그대로 둔다.
아니 둬야 한다.
또 이야기하면 싸우잔 이야기다. 상대방에게 배설의 기회를 주지 마라.
휴대폰 끄고 자라
그럼, 이번에는 상대방이 잠 못 자고, 생각할 기회를 줄 수 있다.
♡ 좋아요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