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sean··읽음 25
같은 시험을 준비하던 두 사람이 있다.
교재도 같이 골랐다.
모르는 문제도 서로 물었다.
시험 끝나고는 둘 다 망했다고 했다.
그런데 한 명만 붙었다.
단체방에 축하가 쏟아진다.
떨어진 친구도 축하한다고 한다.
빈말은 아니다.
같이 고생한 것을 아니까 잘돼서 기쁘다.
다만 오늘은 자기 점수를 몇 번 더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합격한 친구가 말한다.
“난 진짜 운이 좋았어. 공부도 별로 못 했는데.”
위로하려고 한 말일 수 있다.
설마 나를 긁으려고 한 이야기는 아닐꺼다. 나쁜 놈...
그래도
듣는 쪽은 조금 복잡해진다.
나는 공부를 많이 했는데,,, 내가 흘린 육수가 얼마인데
축하하러 들어왔다가 자기 머리를 의심하게 된다.
거기서 멈췄으면 괜찮았을 것이다.
“너도 다음에는 공부 방법을 좀 바꿔봐.”
이제 축하 행사는 끝났다.
떨어진 사람의 공부법 점검이 시작된다.
단체방에서.
다들 보고 있는 자리에서.
친구는 “맞아, 그래야지”라고 답한다.
그날 이후로 방에 말을 조금 덜 한다.
이런 일을 보면 쉽게 결론을 낸다.
"남 잘되니까 배 아픈가 보네.... "
당신은 어느새 복통이 자주 오는 존재가 되어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잘된 것이 싫었던 것인지, 잘된 사람이 갑자기 자신을 가르치는 자리에 앉은 것이 불편했던 것인지는 구분해야 한다.
성공한 사실보다, 성공한 뒤 달라진 말투가 관계를 더 빨리 바꿀 때가 있다.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의 사정을 꽤 자세히 안다.
어디서 막혔는지.
얼마나 준비했는지.
무엇을 기대했는지.
그래서 위로도 잘할 수 있다...
그래 "위로도"가 중요하다.
반대로 별생각 없이 한 말이 정확하게 아픈 곳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것만 넘으면 되는데.”
상대는 그 ‘그것’ 때문에 반년째 잠을 설쳤다.
본인에게는 지나온 구간이다.
상대에게는 아직 하루하루를 쓰고 있는 자리다.
지나왔다고 갑자기 쉬운 구간이 되는 것은 아닌데.
사람이 신기하다.
어려울 때는 이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지 길게 설명한다.
해결되고 나면 짧아진다.
“그냥 하면 돼.”
"운"이 좋았지 뭐
예전 메시지 찾아보면 그냥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새벽 두 시에 보낸 장문이 아직 남아 있다.
명리에서 비겁(比劫)은 일간과 같은 오행이다.
나와 비슷한 위치의 사람, 동료나 경쟁자와의 관계를 읽을 때 연결해본다.
같이 버티는 힘이 될 수도 있고, 같은 몫을 놓고 부딪히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비겁을 무조건 친구라고만 읽어도 부족하고, 무조건 내 것을 빼앗는 사람이라고 해도 부족하다.
함께할 때 무엇을 나누고, 무엇을 놓고 경쟁하는지를 봐야 한다.
스터디에서는 서로 문제를 알려준다.
그런데 최종 선발 인원은 정해져 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과, 내가 먼저 붙고 싶은 마음이 한 사람 안에 같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전부 위선이라고 하면 사람을 너무 간단하게 보는 것이다.
친구가 잘돼서 기쁘다.
나는 안 돼서 속상하다.
둘 다 사실일 수 있다.
축하한다고 말하면서 속으로 조금 쓰릴 수도 있다.
속이 쓰리다고 내가 나쁜 사람인것은 아니다. 그냥 위장이 안 좋은 사람일 뿐
그 감정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마음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잠깐 거리를 두고 자기 마음을 추스를 수도 있고.
상대가 잘된 이유를 깎아내리기 시작할 수도 있다.
“걔는 원래 집에서 도와주잖아.”
“운 좋게 걸린 거지.”
“오래 못 갈걸.”
"인생도 새옹지마라고, 이번에 잘 되었으니까"
"올라가면 내려가기도 하는 거지"
점점 말이 저주의 주문이 되간다. 속담도 반대로 활용한다.
여기까지 가면 자기 속상함을 처리하는 데 남의 평판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 행동까지 이해해줄 필요는 없다.
반대로 잘된 쪽에서도 살펴볼 것이 있다.
좋은 소식을 알리는 것과, 그 소식을 들은 사람에게 어떤 반응까지 요구하는 것은 다르다.
축하를 받았다.
그런데 반응이 생각보다 작다.
왜 이모티콘만 보내지?
전화는 안 하나?
다른 사람 일에는 길게 쓰더니.
좋은 일이 생겼는데 이제 축하의 성의까지 채점한다.
상대는 오늘 자기 일로 버거울 수도 있다.
내 기쁜 소식이 그 사람의 하루 전체를 차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쁨을 나눌 수는 있다. 같은 크기로 기뻐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특히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는 말 한마디가 다르게 들린다.
모임에서 누군가 농담한다.
“이제 둘이 급이 달라졌네.”
다들 웃는다.
웃지 않으면 분위기가 이상해지니까 비교당한 사람도 웃는다.
그런데 저 말에 굳이 동의할 필요는 없다.
“무슨 급이 달라져. 얘가 알려준 것으로 버틴 것도 많은데.”
실제로 도움받은 것이 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거창하게 겸손을 연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기 성과에 들어 있는 다른 사람의 몫을 지우지 말자는 것이다.
잘되고 나면 기억이 편집되는 경우가 있다. 어.. 많다.
소개해준 사람은 잠깐 연결만 해준 사람이 되고.
도와준 동료는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이고.
좋았던 시기는 남들도 똑같이 겪은 조건이 된다.
남는 것은 본인의 안목과 노력이다.
실패했을 때는 세상이 그렇게 복잡하더니, 성공하고 나니 혼자 다 했다.
이러면 주변이 불편해지는 데 꼭 질투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억력이 있으면 된다.
반대로 도움을 준 쪽도 조심해야 한다.
처음에 가르쳐줬다는 이유로 상대가 계속 자기 아래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걔 아무것도 모를 때 내가 다 알려줬어.”
그럴 수 있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하면, 도움받은 사람은 매번 처음 배우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은 그 분야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았을 수도 있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과 평생 후배 역할을 하는 것은 다르다.
처음 문을 열어줬다고, 이후에 지나가는 문마다 통행료를 받을 수는 없지 않나.
이런 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서로 완전히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이 고생했고.
실제로 도와줬고.
좋았던 시간도 있다.
그래서 조금 불편해도 말하기 어렵다.
한쪽은 예전처럼 편하게 농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쪽은 왜 아직도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지 생각한다.
둘 다 옛날 관계를 기억하고 있다.
다만 그 관계에서 그대로 남겨두고 싶은 부분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잘되는 이야기를 아예 하지 말아야 할까.
그럴 필요는 없다.
합격했으면 기뻐해도 된다.
계약했으면 알릴 수 있다.
오래 준비한 일이 잘됐으면 자랑도 좀 하고 싶지.
문제는 소식을 전한 뒤에 불필요한 비교를 붙이는 것이다.
“역시 사람은 과감해야 해.”
“난 안주하는 게 제일 싫더라.”
“다들 너무 겁을 먹어.”
자기 선택이 잘된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태도까지 평가한다.
그 자리에는 당장 움직일 형편이 안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가족을 돌보고 있을 수도 있고.
빚을 갚고 있을 수도 있고.
이미 한 번 실패해서 다시 준비하는 중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안주하는 겁쟁이가 된다.
성공담이 불편한 이유가 성공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특히 부탁하지 않은 조언은 조금 늦게 해도 된다.
안 하면 더 좋긴 하지만,
상대가 “어떻게 했어?”라고 물으면 , 분위기 봐서 이야기 하면 된다.
그거 진심으로 물어본건가?
아직 묻지도 않았는데 휴대폰을 꺼내서 자기 일정표부터 보여줄 필요는 없다.
오늘은 같이 밥 먹으러 온 것이다.
실패 원인을 들으러 온 자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상대의 불편함을 전부 책임질 수도 없다.
조심해서 말해도 깎아내리는 사람이 있다.
기쁜 일을 숨겨도 어디선가 듣고 화내는 사람이 있다.
자기가 도와줬다는 이유로 계속 간섭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이야기를 나누는 범위를 줄일 수 있다.
진행 중인 일을 자세히 알리지 않고.
돈과 계약에 관한 정보는 따로 관리하고.
함께 일한다면 맡은 일과 정산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유를 전부 질투라고 밝혀낼 필요도 없다.
말을 옮긴다.
약속을 방해한다.
함께 정한 내용을 자꾸 바꾼다.
확인되는 행동만으로도 거리를 조정할 이유는 충분하다.
다만 누군가 조용해졌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적으로 만들지는 말자.
답장이 늦다.
모임에 한 번 안 나왔다.
축하를 짧게 했다.
그것만으로 속마음을 알아냈다고 하기에는 정보가 적다.
상대도 자기 삶을 수습하느라 바쁠 수 있다.
내가 잘된 뒤에 벌어지는 모든 일이, 내가 잘됐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관계를 편하게 유지하려고 일부러 망한 척할 필요도 없다.
잘 벌면서 계속 죽겠다고 하고.
좋은 일이 있는데 아무것도 아닌 척하고.
다들 아는 사실을 혼자 감춘다.
그것도 듣는 사람은 피곤하다.
축하를 해야 하는지 위로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잘된 일은 잘됐다고 말하면 된다.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고 하고.
힘들었던 부분은 힘들었다고 하고.
이번에는 조건도 잘 맞았다고 할 수 있다.
자기를 낮출 필요 없이, 다른 사람을 낮추지만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의 합격한 친구에게도 그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다.
“고마워. 같이 공부해서 많이 도움 됐어.”
그리고 친구가 다음 시험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려도 된다.
합격 수기는 나중에 써도 된다.
공부법을 물으면 그때 알려줘도 된다.
떨어진 친구에게 오늘 필요한 것은 합격자의 분석이 아닐 수 있다.
함께 보던 교재를 아직 치우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한 사람에게는 이제 버려도 되는 책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내일부터 다시 펴야 하는 책이다.
그냥 그렇단 이야기다.
뭐 승진에 대입해봐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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