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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전후

sean··읽음 22
퇴근하고 주차까지 했는데, 차에서 안 내리는 사람이 있다. 시동도 껐다. 누구와 통화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앉아 있다. 집에서는 연락이 온다. “어디야?” “다 왔어.” 거짓말은 아니다. 십 분 전에도 다 와 있었다. 올라가기 싫다기보다, 지금은 아무것도 시작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문을 열고. 가방을 챙기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누가 말을 걸면 대답하고. 별것 아닌 일들인데, 오늘은 그것도 일처럼 느껴진다. 지하 주차장에 그런 용도가 있는 줄은 몰랐다. 차만 세워놓는 곳이 아니라, 사람도 잠깐 멈춰 있는 곳이었다. 이런 사람에게 물어보면, 뭘 해야 하는지는 잘 안다. 운동해야 한다. 일찍 자야 한다. 휴대폰을 덜 봐야 한다. 앞으로를 위해 공부도 해야 한다. 설명도 잘한다. 수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꾸준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하고. 자기가 왜 이렇게 지쳤는지까지 분석한다. 그리고 오늘도 늦게 잔다. 몰라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과, 지금 그것을 할 여력이 있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자꾸 방법을 알려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봐.” “운동하면 오히려 덜 피곤해.” “계획을 세워야지.” 본인도 이미 들어본 이야기다. 저장해둔 영상도 겁나 많다. 관련 책도 샀다. 그 책이 지금 침대 옆에 있다. 컵 받침으로 쓰고 있다. 읽다가 잠든 것은 아니다. 읽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잔다. 실제론 유투브를 본다. 책은 안심시키는 작용으로 이미 역할은 다했다. 책갈피가 몇 주째 같은 자리에 있다. 그것도 남 보여줄려고 끼워 둔거고, 가끔씩 뒤로 옮겨준다. 책갈피 입장에서는 장기 근속 중이다. 이렇게 되면 피곤한 것에 문제가 하나 더 붙는다. 자기가 한심해진다... 특히 시간이 나고, 돌아 보면 말이지. 알면서도 안 하는 사람. 계획만 세우는 사람. 의지가 없는 사람. 그래서 바뻐야 한다. 게임을 하든 유투브를 보던, 넷플릭스를 봐야 한다. 안 그러면, 낮에는 일하느라 지쳤는데, 밤에는 그 지친 자신을 혼내느라 또 시간을 쓴다. 그런데 하루를 자세히 들어보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출근했다. 급한 일을 처리했다. 갑자기 바뀐 요청에도 맞췄다. 다른 사람의 실수도 수습했다. 퇴근하면서 필요한 물건도 샀다. 꽤 많은 일을 했다. 다만 자기가 계획했던 공부를 못 했다. 그래서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한 날이 된다. 아침부터 움직인 사람은 누구였나. 출석 인정이 안 되는 모양이다. 우리는 끝낸 일에는 금방 익숙해진다. 그건 원래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반면 못 한 일은 오래 남는다. 운동 못 했다. 책 못 읽었다. 준비하려던 것도 못 했다. 그렇게 보면 성실하게 보낸 하루도 부족한 하루가 된다. 특히 더 잘 살고 싶은 사람일수록 자기한테 박하다. 쉬고 있으면 불안하다. 남들은 이 시간에도 뭔가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쉬면서도 자기계발 영상을 본다. 그럼 그 순간 죄책감은 덜해진다. 그러나 몇일뒤 행동을 안했다. 누가 뼈때리는 글을 쓰고, 그것읽고 채찍질 당할 항목이 조용히 늘어난다. 몸은 누워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지시가 내려온다. 이것도 해야 한다. 저것도 바꿔야 한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 누워서 할 일을 여섯 개 더 만들었다. 이걸 휴식이라고 해야 하나. 누워서 참석한 업무 회의에 가까운데. 명리에서도 재성이나 관성이 들어온다고 무조건 돈과 자리만 보는 것은 아니다. 재성은 내가 다루어야 할 자원과 일의 쪽으로, 관성은 책임과 요구의 쪽으로도 읽는다. 맡을 일이 생겼다. 책임도 커졌다. 주변에서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겉에서는 잘 풀린다고 한다. 그런데 당사자는 점점 말이 없어진다. 기회가 늘어난 만큼 감당해야 할 것도 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간이 어느 정도를 감당하는지, 무엇이 받쳐주고 무엇이 부담을 더하는지를 함께 보는 것이다. 왕쇠를 단순히 강하다, 약하다로만 나누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차에서 십 분 앉아 있었다고 어느 단계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사주 보기 전에 요즘 몇 시에 퇴근하는지부터 물어봐야 할 수도 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세 사람 몫을 하고 있는데, 성격이 문제라거나 의지가 약하다고 하면 설명이 이상해진다. 할 줄 아는 일이 많다고, 그 일을 전부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는 이 구분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를 맡겼더니 잘한다. 그래서 하나 더 준다. 그것도 어떻게든 끝낸다. 그러면 더 맡겨도 되는 사람으로 등록된다. 일단 등록되면, 남들 못하거나, 하기 싫은 일은 다 당신에게 몰린다. 나중에는 일이 늦어지면 묻는다. “예전에는 잘했잖아. 요즘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 있긴 하다. 일이 너무 많이 있다. 그런데 정작 본인도 설명을 못 한다. 각각 보면 못 할 일은 아니니까. 이것은 삼십 분이면 되고. 저것은 자기가 하면 빠르고. 그 일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게 편하다. 그렇게 하루가 채워진다. 하나하나는 작은 부탁인데, 다 모아놓으면 퇴근을 못 한다. 문제는 이런 사람이 집에 와서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다룬다는 것이다. 영어 삼십 분쯤은 할 수 있잖아. 운동 한 시간쯤은 내야지. 책 열 쪽 읽는 게 뭐가 어렵다고. 각각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걸 할 사람은 한 명이다. 계획표에는 피곤한 날이 없다. 계획을 세울 때의 자신은 늘 멀쩡하니까. 일요일 오후에 커피 마시면서, 화요일 밤 열한 시의 자신에게 일을 준다. 화요일의 나는 좀 억울할 것이다. 그때 직접 와서 해보든가. 그러니 계속 실행이 안 된다면 계획의 내용뿐 아니라, 그 계획을 실행해야 하는 시간의 상태도 봐야 한다. 아침의 의욕으로 밤의 체력을 계산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미 하루를 다 쓴 사람에게, 또 하루를 시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피곤하다는 말로 모든 일을 미룰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가능성 때문에 모든 피로를 핑계로 취급할 필요도 없다. 구분해봐야 한다. 쉬고 나면 하고 싶은 마음이 돌아오는가. 일이 줄어들면 움직일 여지가 생기는가. 특정한 일만 피하는가, 좋아하던 것까지 전부 귀찮아졌는가. “게을러서 그래.” 이 한마디는 편하다. 세상을 그렇게 편안하게 구분하고 살면,,, 행복할 수 도 있다. 말한 사람은 더 알아볼 필요가 없어지니까. 듣는 사람의 생활은 그대로다. 지친 사람에게 필요한 변화는 의외로 소박할 수 있다. 새로운 습관을 다섯 개 만드는 것보다, 매일 끼어드는 일 하나를 줄이는 것. 밤마다 확인하던 업무 연락의 범위를 정하는 것. 안 가도 되는 모임에 빠지는 것. 오늘 끝내지 않아도 되는 일을 내일로 넘기는 것.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내가 미리 댓글 달릴것 말해준 거다. 공부 한 시간을 추가하는 계획은 혼자 세울 수 있다. 기존 일을 하나 빼려면 누군가에게 말해야 한다. “이번에는 어렵습니다.” “이것까지 하려면 다른 일의 일정이 바뀝니다.” 상대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100000%다. 그래서 생활을 바꾸는 대신 자꾸 마음가짐만 바꾸려고 한다. 더 긍정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더 강한 정신력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신력" "오기" 이런 단어를 만나면 약해진다. 한국인들은 "졌잘싸"를 바란다. 그래서 야근한다. 실적이 안나와도 시간은 투입했습니다. 새벽 세시까지 상사랑 술도 마신다. 실적이 안나와도 충성을 합니다. 일은 그대로 두고, 그 일을 받는 사람만 계속 개조하는 것이다. 사람이 좀 튼튼해질 수도 있겠지. 그런데 언제까지 튼튼해져야 하나. 그리고 어렵게 여유가 생겼을 때도 바로 채우지 않는 편이 좋다. 일이 일찍 끝났다. 오랜만에 저녁 시간이 남았다. 그러면 이상하게 뭔가 해야 할 것 같다. 밀린 공부를 하고. 정리도 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다시 세운다. 휴식 시간이 생겼는데, 본인이 제일 먼저 그 시간을 없앤다. 빈 시간이 아까운 것이다. 그렇게 아껴서 누구에게 주려고 하는지 한번 볼 일이다. 물론 책팔이들은 시간 관리법, 시간만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배분되는 유일한 자원이라고, 당신의 상처난 궁둥이를 또 때린다. 그러나, 시간,,, 본인이 좀 써도 되지 않나. 아무 성과 없이 밥을 먹고. 급한 용건 없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졸리면 조금 일찍 자는 데. 쉬었다고 다음 날 반드시 생산성이 올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제 쉬었는데 왜 오늘도 피곤하지?” 하루 쉬고 그동안의 피로가 전부 없어지기를 기대한다. 쌓을 때는 몇 달씩 쌓아놓고, 정산은 하루 안에 해달라는 것이다. 몸도 사정이 있을 것 같다. 계속 지쳐서 일상이 버겁다면 생활 조건을 살피고, 필요하면 도움도 받아야 한다. 그 상태를 전부 성격이나 의지의 문제로 떠안을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미 아는 방법을 쓸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먼저 필요하다. 그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좋은 조언도 할 일만 늘린다. 차에서 한참 앉아 있던 사람이 올라온다. 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을 벗는다. 평소보다 말이 적다. 그 모습을 보고 바로 묻기 쉽다. “왜 이렇게 늦게 올라왔어?” “주차장에서 뭐 했어?” 별일은 없었을 것이다. 누구를 만난 것도 아니고. 중요한 연락을 한 것도 아니고. 오늘 하루 종일 누군가에게 대답하고, 무언가를 처리하던 사람이 잠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사람에게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설명할 일을 하나 더 주지 않아도 된다. “밥 있어.” 오늘은 그 말이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적어도 신발은 벗은 다음에 해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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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4
  • 익명.·

    감사합니다

  • iceblue·

    한때 머릿속 바쁘고 혼자 있어야 숨쉬는거 같았고.. 쉬면 죄책감.. 근데 또 결과는 없고 ㅋ 비겁다에 편인강하고 무식상 ..못해라는 말을 저는 못하는거죠…; 얼마전 진짜 방전.. 스트레스와 피로로 외국인데 .. 여기선 병원도 쉽게 못가는데 길에서 갑자기 쓰러지는거 아냐!?나이가 있는지라 그런가??피로와 스트레스따위에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더군요 쉽게 죽진 않겠지만..ㅋ 사실그냥 가면 좋겠다 할때가 충동적으로 있어서 ㅠㅠ 그냥 쉴때 몇 번 낮잠도 자고 늦잠도 자고 일어났다 또자고 했더니 살거같아요 당시엔 몸은 쉬는데 맘은 매우 불편;; 지금은 연애하고 싶단 뻘 생각도 드는거보니 역시 사람은 쉬어야…ㅋㅋㅋㅋㅋ 원랜 작년까지만해도 수면제가 있어야 했는데…ㅋㅋ 여기선 그래도 비난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신기합니다 요즘은 잠을 잘자요 좋은징조겠죠?ㅋ

    • sean·

      잠 잘자는게 최고입니다.

  • midori☘️·

    우와 몇년전까지의 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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