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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의견?

sean··읽음 19
이직을 고민한다고 했다. 친구는 연봉을 물었다. 부모님은 회사가 오래 다닐만 한 곳인지 물었다. 동료는 직함이 올라가는지 물었다. 다들 중요한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야근을 줄이고 싶어서 옮기려던 것이었다. 세 사람과 이야기하고 나니, 더 오래 일하더라도 연봉과 직함이 높은 회사를 찾고 있다. 상담은 충분히 받았다. 처음 질문이 사라졌다. 내가 옮기려던 이유가 갑자기 기억이 안난다. 우리는 중요한 일을 앞두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다. 혼자 놓친 것이 있을까 봐. 괜히 잘못 결정할까 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그런데 많이 물어봤다고 판단이 꼭 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명리학에서 자주 보이는 현상이 출산 택일을 했다. 역술인 마다 준 날짜가 다르다. 그래서 들고 사주 카페에 올린다. 어떤게 더 나아요? 확실한 답은 안나오고, 오히려 또 다른 추천만 받아 든다. 그리고 게시판에서 싸우는 사람들도 생긴다. 오히려 머리가 아프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하면 선택지가 정리된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하면, 필요 없던 조건이 다섯 개 더 생긴다. 연봉도 올라야 한다. 직함도 좋아야 한다. 회사는 안정적이어야 한다. 집에서도 가까워야 한다. 그런 회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 회사도 나한테 원하는 게 좀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조언하는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점이다. 돈 때문에 고생한 사람은 연봉을 본다. 회사에서 갑자기 잘린 사람은 안정성을 본다. 체면이 중요한 사람은 직함을 본다. 그 사람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자기가 겪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만 그 경험이 지금 내 결정의 기준과 같으냐는 별개의 문제다. 친구는 연봉이 조금이라도 깎이면 손해라고 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퇴근하면 아이가 자고 있고, 나는 딸 바보다. 딸이 나 보면 운다. 난 딸 자는 모습만 봤다. 주말에도 회사 단톡방이 폭발하고, 상사는 수시로 전화한다. 월급이 들어와도 쓸 시간이 없어서, 부자가 될 것 같지만, 보약에 영양제에 ,, 60대가 된 것 처럼 ,, 그걸로 버틴다. 여기서 돈만 비교하면 내가 바꾸려던 것은 계산에서 빠진다. 남의 의견을 듣다가, 남의 우선순위로 내 인생을 결정할 수 있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조용히 일어난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다. 내가 물어봤다. 상대는 자기 생각을 말해줬다. 그런데 이상하게 대화가 끝나면 내가 원했던 것이 좀 초라해 보인다.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의욕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작게 시작하겠다는 계획이 배짱 없는 선택처럼 느껴진다. 지금 하는 일을 깊게 파고 싶었는데, 새로운 것을 안 하면 뒤처지는 것 같다. 그래서 또 계획을 고친다. 내가 결정한 것 같지만, 방금 만난 사람의 말투가 꽤 많이 들어가 있다. 물론 나는 인식 못하고 있기 쉽다. 상대방은 설득 안했는데, 내가 나를 설득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기회가 생긴다는 말도 맞다. 그런데 사람을 만날 때마다 방향까지 바꾸면, 이동은 많이 했는데 도착한 곳은 없을 수 있다. 오늘 만난 사람은 해외가 답이라고 한다. 내일 만난 사람은 나가서 살면, 고생이고, 돈만 있으면, 한국이 젤 좋다고 한다. 주말에 만난 사람은 직장은 어디나 다 똑같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뭐 만들고, 그걸 강의로 만들어서 강의팔이 하는 친구 놈이 왜 회사 다니냐? 이 시대에, 얼마나 쉽게 돈 벌 수 있는데 창업하라고 한다. 월요일에는 다시 출근한다. 주말 동안 이민 갔다가 창업했다가 다시 원래 회사로 돌아왔다. 몸은 집에 있었는데 , 영혼은 세계 일주 해서 좀 피곤하다. 그러니 누구의 말을 듣느냐만큼, 무엇을 물을지도 중요하다. “나 이직할까?” 이렇게 물으면 상대는 자기 인생관을 꺼내기 쉽다. 대신 질문을 좁혀볼 수 있다. “그 회사는 퇴근 후 연락이 많은 편이야?” “실제로 맡는 업무가 공고와 비슷해?” “팀장이 바뀌면 근무 방식도 많이 달라져?” 이런 질문에는 확인할 내용이 있다.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통째로 묻는 대신, 내가 모르는 부분을 확인하는 것이다.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에게는 그 회사의 실제 모습을 물을 수 있다.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업무를 물을 수 있다. 가족과는 달라질 생활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한 사람에게 전부 물을 필요는 없다. 세금에 밝은 친구가 내가 어디서 행복할지까지 아는 것은 아니니까. 명리에서 비겁(比劫)은 나와 같은 오행이다. 동료, 경쟁자, 비슷한 위치의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읽을 때 쓰는 글자다. 같이 있으면 힘이 되기도 한다. 서로 비교하면서 기준이 바뀌기도 한다. 어떤 모임에서는 자기 일을 오래 이어가는 사람이 인정받는다. 어떤 모임에서는 얼마나 크게 벌렸는지가 중요하다. 또 어떤 모임에서는 바쁘다고 말해야 잘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요즘 좀 여유 있어.그래서 행복해" 난 진짜 행복하다고 했는데, 이 말을 했는데 분위기가 잠깐 조용해진다. 일이 끊겼나? 회사에서 밀려났나? 도와줘야 하나? 그냥 일정이 잘 정리된 것인데, 괜히 해명한다. “아니, 일이 없는 건 아니고.” 쉬는 시간까지 실적을 증명해야 한다. 비겁이 있다는 이유로 이런 일이 생긴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무엇을 높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나도 모르게 힘을 쓰는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어떤 자리에서는 말을 줄일 필요가 있다. 내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생각을 꺼냈는데, 대화가 자꾸 다른 사람과의 비교로 흐른다. “누구는 벌써 그 정도는 했던데.” “그 나이에 아직 그걸 고민해?” “그렇게 해서 언제 자리 잡겠냐.” 이런 말을 듣고 나면 문제를 더 잘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빨리 아무 결정이나 해야 할 것 같아진다. 서두르게 되었다고 방향이 생긴 것은 아니다. 질문을 했는데 조급함만 얻어왔다면, 그 주제는 그 사람과 덜 이야기해도 된다. 그 사람 자체를 내 인생에서 지울 필요까지는 없다. 같이 밥 먹고. 옛날 이야기하고. 서로 웃을 수도 있다. 다만 내 진로를 맡길 자리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오지라퍼들은 특히 내 인생 30년 계획을 다 짜주고, 심지어는 길도 깔아준다. 우리는 관계를 너무 한꺼번에 처리하려고 한다. 좋은 친구면 모든 조언도 좋아야 하고. 부모님을 존중하면 진로 의견도 따라야 하고. 성공한 사람이면 다른 분야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도 다른 분야에서는 경험이 적을 수 있다. 사업을 잘하는 사람이 자녀 교육에는 서툴 수 있고. 돈을 잘 버는 사람이 휴식과 관계에서는 계속 같은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 배울 부분을 배우면 된다. 게다가 다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마다 해결할 과제는 다르다. 타인의 삶을 연구할수록, 내 과제는 잊고 남의 과제를 들고 오기 쉽다.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묶음으로 들여올 필요는 없다. 조언을 받았다고 따라야 할 빚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시간 내서 이야기해준 것은 고맙다. 그런데 결정은 다르게 할 수 있다. “말해준 부분은 확인해봤어. 나는 이번에는 이쪽으로 하려고.” 이렇게 말하면 된다. 상대가 조금 서운해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서운함을 피하려고 몇 년을 내 선택이 아닌 곳에서 살 수는 없지 않나. 상담 한 시간 받았는데 상환 기간이 너무 길다. 물론 내가 원하는 답만 골라 듣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그럴거면 물어보지도 말아라. 아니면, 난 이게 듣고 싶어. 출력해서, 상대방 줘라. 그래서 내가 듣고 싶은 답이란? 기준이 필요하다. 그 말이 내 기분에 맞는가보다, 내가 정한 목적에 관련이 있는가. 확인 가능한 내용인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비용이나 조건을 알려주는가. 듣기 싫어도 중요한 정보라면 확인해야 한다. 반대로 아주 그럴듯해도 지금 결정과 관계가 없다면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누군가는 더 큰 성공을 권할 것이다. 누군가는 더 안전한 길을 권할 것이다. 둘 다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바꾸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내가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바꾸려는 것이 단순히 지쳐서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어긋나는 건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치면 다 때려쳐 ,그런것이 인간이기도 하니까 이직을 생각했다면, 다른 사람을 만나기 전에 이유를 몇 줄 적어보자. 왜 떠나고 싶은가. 무엇은 유지하고 싶은가.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 다녀와서 다시 읽어보면 된다. 새로운 사실 때문에 생각이 바뀌었는지. 그 사람 앞에서 작아 보이기 싫어서 기준을 바꿨는지. 둘은 꽤 다르다. 처음에는 저녁을 가족과 먹고 싶어서 이직을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나니, 더 늦게 퇴근하는 대신 명함에 한 줄을 더 넣을 수 있는 자리가 좋아 보인다. (뭐 우린 아반테 사러 갔다가 제네시스 사가지고 나오는 인간들 아니냐?) 그 선택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직함을 보여줄 때 잠깐 뿌듯할 나와, 매일 밤늦게 집에 들어올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잊지 말자. 조언해준 사람들은 저녁 먹고 퇴근할때 당신은 직함이 달라진 명함을 들고 있는데, 딸 못 본지 몇 일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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