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커뮤니티

나(인간) 사용 설명서

sean··읽음 33
사람에게는 사용설명서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 부딪혀 가면서 배운다. 문제는 부딪히는 횟수가 아니라, 부딪힌 뒤에 무엇을 알게 되었느냐다. 인성이 있는 사람은 이게 잘 된다. 그러나 인성이 과하면, 부딪히는 횟수가 준다. 그래서 가볍게 정리를 해보자면, 보통 인간은 이렇다. 사용 설명서란 이름은 그래서 붙인 것 첫째.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얼마나 강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답은 강해지는 게 아니다. 분리하는 것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그 사람의 일이다. 그 사람의 경험, 그 사람의 사고방식, 그 사람의 기분이 만들어낸 것이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이냐만 내 일이다. 남의 생각을 고치려 드는 것은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이다. 끼어들면 진다. 쓸 필요 없는 에너지가 줄줄 빠진다. 다만 이것은 입으로 "신경 안 써"라고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밑바닥에 뭔가가 있어야 한다. 한 분야에서 오래 쌓아 온 것이 있거나, 실제로 결과를 만들어 본 적이 있거나, 남들이 대신 겪어줄 수 없는 것을 겪었거나. 그런 것이 쌓이면 남의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고, 남의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안이 통일되면 밖에서 답을 구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해보라고 권한다. 깨지든 뭐든 ,, 그런데 그게 도박하란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둘째. 학교에서 공부 잘하던 사람이 졸업 후에 공부를 그만두는 이유. 학교가 가르치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명확한 과제를 실행하는 힘이다. 시험 범위가 정해져 있고, 정답이 있고, 기한이 있고, 성적이 나온다. 이것은 실행력이다. 실행력은 좋은 것이지만, 실행력만으로는 사회에서 오래 못 간다. 사회에 나오면 아무도 범위를 정해주지 않는다. 오늘 뭘 배울지, 시간을 어디에 쓸지, 어느 방향으로 걸어갈지를 전부 자기가 정해야 한다. 이것은 실행력이 아니라 판단력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우등생이 꼭 사회에서 우등생이란 보장은 없는 것이다. 성실하다. 실행력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해서, 판단력이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내가 한 행동에 반응(피드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시험을 보면 점수가 나온다. 빠르고 분명하다. 사회에서는 삼 년을 투자해도 아무 반응이 없을 수 있다. 반응이 빠르고 뚜렷할수록 사람은 쉽게 매달린다. 반응이 느리고 모호할수록 사람은 쉽게 놓는다. 물론 KPI도 있고, 보고서 제대로 못 만들면, 상사가 깨지만, 그게 내 실력과 관계가 있냐? 그게 아닌데, 성적에 매몰된 사람은 그것만 신경 쓴다. 졸업 후에 공부를 그만둔 게 아니다. 점수판이 사라진 것이다. 점수판 없이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고, 그 점수판이 진정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는 사람은 더욱더 적다. 그냥 KPI가 주어지면 맹목적으로 완성하려는 사람이 많지. 셋째. 찰리 멍거(Charlie Munger)라는 사람이 있었다. 워런 버핏의 파트너로 아흔아홉까지 살면서 투자를 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한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나도 당신도. 진짜 현명한 사람은 남의 이기심을 미리 읽고, 적절한 이해관계와 구조를 설계해서 협력을 끌어낸다. 바보는 모든 사람이 선의로 움직일 거라고 기대한다. 멍거는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남의 이기심을 미리 예상하지 못해서 피해를 당한 적이 없다. 그래서 자기연민에 빠진 적도 없고, 놀란 적도 없고, 도덕적으로 분개한 적도 없다. "이 사람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이 문장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비가 오는데 비를 원망하는 것과 같다. 비는 내리는 거다. 사람은 이기적인 거다. 자연법칙을 원망하면 자기만 무너진다. 애덤 스미스가 이백오십 년 전에 이미 말했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마음 덕분이다. 고객이 돈을 내는 것은 사장을 도와주려는 게 아니다. 자기가 필요한 것을 사는 거다. 직원이 출근하는 것은 사장의 꿈에 동참하려는 게 아니다. 월급이 나오니까 오는 거다. 이것을 냉소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을 인정하고 나면 오히려 편해진다. 사람을 바꾸려는 쓸데없는 노력을 그만두고, 구조를 바꾸는 데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성인 군자일 것을 기대하지 말란 이야기다. 남의 본성을 따르고, 자기 본성을 다스린다. 순서가 이것이다. 넷째. 모든 사교에는 목적이 세 개뿐이다. 정보를 주고받거나, 이익을 주고받거나, 끌리거나. 이 셋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만남은, 해 보면 안다, 끝나고 나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시간만 빠졌다. 사교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목적 없는 사교가 비효율적이라는 뜻이다. 좋은 만남에는 반드시 어떤 에너지가 흐른다. 정보든, 기회든, 호감이든.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 만남은 양쪽 다 시간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매달 한두 번 만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셋 중 하나에 해당하는 관계는 계속 만나게 되고, 해당하지 않는 관계는 슬그머니 끊긴다. 의식하든 안 하든 이미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그것을 빨리 캐치하면 낭비가 적다. 다섯째. 칭찬은 빨리 꺼내고, 충고는 비싸게 받는다. 누군가를 칭찬하고 싶으면 바로 입을 연다. 머뭇거리면 타이밍이 지나간다. 칭찬은 늦으면 효과가 반으로 줄고, 안 하면 영(零)이다. 반대로, 누군가를 지적하고 싶으면 입을 다문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사람에게 충고하지 않는다. 이것은 냉정한 게 아니라 현실적인 거다. 돈을 내지 않은 조언은 듣는 사람이 가볍게 취급한다. 공짜로 들은 말은 공짜만큼의 무게밖에 없다. 말한 사람만 에너지를 쓰고, 들은 사람은 흘린다. 그렇기에 충고를 할려면 돈을 받고 하란 이야기가 존재하는 거다. 진실을 이야기할려면, 돈을 많이 받으란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요청하지 않은 충고는 높은 확률로 관계를 망가뜨린다. 충고를 한 쪽은 도와줬다고 생각하고, 받은 쪽은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같은 사건인데 해석이 정반대다. 여섯째. 사람 사이의 진짜를 보려면 겉을 걷어내야 한다. 진짜 무시는 비웃음이 아니다. 아예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비웃으려면 적어도 쳐다봐야 한다. 진짜로 가치 없다고 생각하면 돌아보지도 않는다. 진짜 질투는 상대가 망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잘되는 건 허락하되, 자기를 넘어서는 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원래의 순서가 바뀌는 순간, 그때까지의 온기가 적의로 바뀐다. 진짜 존중은 말이 얼마나 공손한지가 아니다. 상대방의 거절을 받아들이는지, 상대방의 시간을 함부로 쓰지 않는지,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지를 본다. 입은 공손한데 시간은 함부로 쓰고 거절은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존중이 아니라 능숙한 위선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누군가가 가장 통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가장 약한 사람이 아니다. 막 벗어나려는 사람이다. 오래 순종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아니오"라고 말하면, 통제하던 쪽에서 가장 격렬하게 반응한다. 잃는 것이 한 번의 협조가 아니라 그동안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나라는 나라에 유리한 방향으로 당신을 이끈다. 물론 말은 당신을 위해서라고 이야기한다. 국가 정책도 국가에 유리하게 제정되지만 늘 국민의 이익이라고 이야기한다. 회사는 회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일하지만, 직원과 고객을 내건다. 가정은 가정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타인이 이득되게 움직이지 않더냐? 당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당신을 이끄는 사람은 누구인가. 없다. 그건 자기 일이다. 부모조차도 본인의 체면 등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학교는 높은 점수를 요구하고, 직장은 헌신을 요구하고, 부모는 순종을 요구하고, 사회는 성공을 요구한다. 하나하나 따져 보면 다 그럴듯하다. 그들은 진짜로 당신을 생각했을까? 입으론 다 너를 위해서라고 이야기 하지만 말이지. 문제는 그 요구들을 전부 받아들이면서 정작 한 번도 자기에게 묻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뭔가. 이 질문을 서른까지 안 해본 사람이 많다. 마흔까지 안 해본 사람도 있다. 쉰이 되어서야 비로소 멈춰 서서 돌아보면, 남들이 시킨 일은 전부 했는데 자기 인생은 한 발짝도 안 움직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혹은 쉰이 넘어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사람도 많다. 대부분은 은퇴하고 생각한다. 그때서야 시간이 생기니까... 왜 사는 게 피곤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매일 아침 남이 준 과제를 풀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가 준 과제, 회사가 준 과제, 집이 준 과제, 사회가 준 과제. 자기가 자기에게 낸 과제는 한 번도 풀어본 적이 없다. 도덕경(道德經) 스물다섯째 장에 이런 말이 있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따른다. 끝에 가서 따르는 것은 자연(自然)이다. 스스로 그러한 것. 남이 시킨 것이 아니라 제 안에서 나온 것. 남의 이기심을 원망하는 대신 구조를 짜고, 남의 시선을 고치는 대신 자기 안을 채우고, 남이 준 과제를 풀다가 멈추고 자기에게 묻는다. 사람이라는 동물의 작동 원리를 알면, 서운할 일이 줄어든다.
♡ 좋아요 13
댓글 쓰기 · 寫

로그인후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

댓글 · 答13
  • 익명.·

    감사합니다.

    ♡ 1
  • 제비·

    주옥같은 글입니다. 오늘 하루 종일 이 글만 반복해서 읽고 마음속에 새기고 싶습니다.

    ♡ 1
    • sean·

      ㅎㅎㅎ 다들 아는 이야기 아닌가요?

    • 제비·

      제 안에서 댕~~하고 울림이 일어나는건 요즘이지요. 더군다나 저는 반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 울림이 저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너무 기대됩니다. 😁

  • 潤潤 (윤윤)·

    이런 글을 공짜로 읽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전전생에 언젠가 한번 제자의 연이 있었나보다 라고 감사히 생각합니다.

    ♡ 1
  • 블루베리파이·

    감사합니다

  • 염화소녀_(구)남궁현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찾아야 하는데...

    • sean·

      바쁘면 찾기 어렵죠 ㅋㅋㅋ

    • 염화소녀_(구)남궁현자·

      유식님은 언제 이렇게 글을 다 쓰세요... 저는 블로그 글 하나 쓰는데도 일주일에 하나 쓸까 말까인데...

    • sean·

      미리 시간 날 때 많이 써놓습니다. 하나씩 올리는 거지. 비축...

      ♡ 1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

  • midori☘️·

    오 감사합니당!

  • 은율·

    감사합니다 🙏

이어 읽기 · 續 자유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