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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사람의 세 가지 치명상

sean··읽음 24
살다 보면 다정한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따뜻하고, 잘 들어주고, 거절을 못 하고, 주변 사람 일에 자기 일처럼 마음을 쓴다. 그런 사람 옆에 있으면 편하다. 안전하다. 내 편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정한 사람을 찾는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다정한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자기가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남의 다정함은 나에게 이롭다. 그 사람이 거절을 못 하니까 내가 편하고, 그 사람이 감정을 먼저 써주니까 내가 덜 써도 되고, 그 사람이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니까 나는 가만있어도 관계가 굴러간다. 그런데 내가 다정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남을 위해 감정을 쓰고, 거절 못 하고, 관계를 붙들고, 사람 일에 일일이 마음을 담다 보면 — 돌아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항상 많다. 다정함은 남에게 쓸 때는 좋은데, 내가 지고 다닐 때는 무겁다. 사회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사람이라면, 남자든 여자든, 어느 시점에서 반드시 한번은 정(情)이라는 관문을 넘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정함에는 세 가지 치명상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돈이 새고, 주도권을 잃고, 몸이 먼저 닳는다. 다정하면 돈이 샌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람을 위해 쓰는 돈이다. 친구 만나면 밥을 사고, 연인이 생기면 선물을 하고, 경조사에 빠지지 않으려 하고, 은혜를 입었다 싶으면 갚으려 한다. 다정한 사람은 여기서 선을 잘 못 긋는다. 가게, 기업, 온갖 마케팅이 가장 좋아하는 고객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기념일마다 뭔가 사야 하고, 감정이 붙으면 값을 따지지 않는다. 정(情)이라는 글자가 붙는 순간 가격은 사라진다. 초코파이, 바카스 광고를 생각해봐라. 혹은 리센느의 리마인들이 피자 품절 시키고, 나랑드 사이다도 매출 올려주고 그런데 이건 표면적인 이야기다. 좀 더 들여다보면, 사람은 본질적으로 자원의 덩어리다. 시간, 체력, 돈, 신용, 감정, 집중력 — 이것들이 한데 모여서 한 사람을 이룬다. 이 자원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다정하다는 것은, 마음을 주는 대상이 많다는 뜻이다. 대상이 많으면 얽힌 것도 많고, 반응해야 할 일도 많다. 반응할 때마다 내 자원이 조금씩 빠져나간다. 시간도 나가고, 에너지도 나가고, 돈도 나간다. 속으면 빠지고, 주면 빠지고, 신경 쓰다가 빠지고, 어쩌다 엮이면 또 빠진다. 사회 전체의 자원은 일정 시기에 고정되어 있다. 한쪽에서 나가면 다른 쪽으로 간다. 다정한 사람은 자원이 나가는 쪽에 서 있기 쉽다. 구멍이 하나면 막으면 된다. 다정한 사람은 구멍이 여러 개다. 다 막지 못한다. 그래서 샌다. 꼭 새는게 나쁜것은 아닌데, 나간 만큼 돌아오면 상관없다. 문제는 내보내는 것만 많고, 돌아오는게 적다? 그게 꼭 물품이나 돈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사실 행복감, 기분 좋음 이런 형태로 돌아오는 것 나쁘지 않다. 돈 주고 행복을 살 수 있다면, 단지 그게 진짜 행복인지? 단순한 도파민 분비인지... 다정하면 주도권을 잃는다. 주도권이라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주도권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이끌고, 조직의 책임자가 방향을 잡고,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것. 이것이 바깥으로 향한 주도권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주도권이다. 내 삶의 방향을 내가 정하고, 내 시간을 내가 쓰고, 내 기준을 내가 세우는 것. 이것이 안으로 향한 주도권이다. 과하게 다정하면 이 두 가지 주도권이 모두 흔들린다. 부모가 자식에게 지나치게 다정하면 어떻게 되는가. 뭐든 들어주고, 뭐든 맞춰주고, 거절하지 않는다. 그러면 부모의 자리가 넘어간다. 아이가 관계를 주도하고, 부모는 끌려다닌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정한 리더는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사람과 좋은 리더는 다르다. 정이 많으면 선을 긋기 어렵고, 선이 흐려지면 사람들이 타고 올라온다. 아래가 위를 업신여기면, 권한은 아직 내 손에 있어도 실질적인 힘은 이미 빠져나간 상태다. 부하들에게 잘해주지 말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긴 하다. 부하랑 친해지면 일 시키기 어려워 진다. 더 나쁜 경우도 있다. 다정한 사람은 감정으로 묶이기 쉽고, 감정으로 묶인 사람은 이용하기 쉽다. 다정함을 읽어낸 사람이 그것을 도구로 쓰면, 그때부터 다정한 사람은 판 위의 말이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다정한 사람은 경계를 잘 못 세운다. 남의 부탁에 쉽게 흔들리고, 감정에 끌려 결정을 바꾸고, 싫은데 싫다고 못 한다. 내 삶인데 내가 운전하지 못하는 상태. 이것이 다정함이 가져오는 두 번째 대가다. 다정하면 몸이 먼저 닳는다. 옛사람들이 '정이 깊으면 오래 살지 못한다'고 했다. 情深不壽. 과장이 아니다. 한쪽은 좀 극단적인 이야기다. 정을 목숨보다 앞에 놓는 사람은 충동적인 선택을 하기 쉽다. 감정에 휩쓸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이기도 한다. 다른 한쪽은 느리지만 더 확실하다. 다정한 사람은 남의 감정을 잘 느낀다. 상대가 아프면 같이 아프고, 상대가 걱정되면 같이 걱정한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사연에도 마음이 쉽게 움직인다. 뉴스를 보면서 울고, 지나가는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신경 쓴다. 자기 감정만 감당해도 벅찬데, 남의 감정까지 얹어 놓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감정에는 값이 있다. 공짜가 아니다. 걱정할 때마다 에너지가 나가고, 공감할 때마다 기력이 깎인다. 오래 잠을 설치면 몸이 망가지는 것처럼, 오래 감정을 쓰면 마음이 먼저 닳고 몸이 따라간다. 다정한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심력(心力 마음의 힘)을 더 많이 쓴다. 심력도 자원이다. 무한하지 않다. 소진되면 회복이 안 된다. 기름이 다 타면 등잔이 꺼지는 것과 같다. 사람의 주의력(attention)은 생명 그 자체다. 주의력을 어디에 쏟느냐가 곧 생명을 어디에 쓰느냐다. 다정한 사람은 주의력의 방향이 늘 바깥을 향해 있다. 남에게 쓰는 만큼 내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돈이 새는 것은 자원이 밖으로 흘러나가는 이야기다. 주도권을 잃는 것은 내 자리가 무너지는 이야기다. 몸이 닳는 것은 생명 자체가 깎이는 이야기다. 층은 다르지만 뿌리는 같다. 정(情)에 경계가 없고, 정에 가려냄이 없고, 정에 자기 보호가 없으면 —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진행된다. 그래서 다정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좋다. 그 사람의 다정함이 나를 이롭게 하니까. 그런데 나 자신이 다정해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정해지는 법을 배워야 할 때도 있다. 도덕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아서, 만물을 볏짚 인형처럼 대한다. 무정함 위에 법칙이 있고, 법칙 위에 길이 있다. 이 한 줄은, 읽힌다면 읽히는 것이고, 아직 안 읽히면 안 읽히는 대로 놔두면 된다. 다정해도 좋고 무정해도 좋다. 다만 한 가지는 알아둘 일이 있다. 사람의 자원은 정해져 있고, 정도 자원이다. 쓸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을 아무 데나 뿌리면, 정작 써야 할 곳에서 바닥이 난다. 정을 둘 곳에 두고, 마음과 자원은 그럴 만한 사람에게 남겨 두는 것. 정이 있되 넘치지 않고, 정을 아끼되 정에 갇히지 않는 것. 어디까지가 내 몫이고 어디서부터가 남의 몫인지, 그 선 하나를 어디에 그을 것인지 — 그것은 각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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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3
  • 염화소녀_(구)남궁현자·

    그래서 만인의 다정함보다는 츤데레다 즇더라는😂

  • 潤潤 (윤윤)·

    정이 있되 넘치지 않고, 정을 아끼되 정에 갇히지 않는 것. 이게 참 어렵지요. 감사합니다.

  • 익명.·

    아내입장에서는 만인에게 다정한거 미칠 일입니다. 저한테도 다정하지만 항상 외로운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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