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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존재?

sean··읽음 26
쓰레드를 열었는데, 누가 사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후에 꿰 맞춘것이라고 글을 올렸더라, 뭐 댓글을 달게 해서, 계정 키울려는 속셈인것 같던데, 거기에도 누가 또 사주를 2026년인데, 아직도 사주를 믿으면 아이큐가 낮은 거란 이야기를 했더라, 주기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가끔 사회에서도 극단적 거부감을 가진 분들을 본다. 운명이 있냐? 논의는 계속 있어왔다 기원전 5세기, 묵자(墨子)는 운명이라는 개념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비명(非命) 삼편을 써서, 운명을 믿으면 사람이 게을러진다고 했다. 나라가 망하는 건 하늘 탓이 아니라 정치를 못해서고, 가난한 건 팔자가 아니라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했다. 사실 이것은 너무 나간 이야긴데, 실제로 망국의 근본적 원인을 보면 천재지변으로 망한 나라도 많고 (실제로 정치는 잘하고 명군있어도), 현대 연구 결과 노력는 반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건 나중에 따로 글을 .. 같은 시대, 순자(荀子)도 비슷한 말을 했다. 하늘은 일정한 법칙대로 움직일 뿐, 사람 사정에 관심이 없다. 요임금이 다스린다고 해가 더 밝아지지 않고, 걸왕이 폭정을 해도 해가 어두워지지 않는다. 수백 년 뒤 왕충(王充)은 더 나갔다. 점치는 사람 수백 명의 예측을 실제로 대조해봤다. 맞는 것도 있고 틀리는 것도 있는데, 사람들은 맞은 것만 기억한다. 확증 편향이라는 말이 생기기 2천 년 전에, 그는 이미 그 구조를 짚어냈다. 그런데 같은 시대, 반대쪽에 서 있던 사람들도 만만치 않았다. 공자(孔子)는 주역(周易)을 하도 읽어서 책을 엮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 위편삼절(韋編三絕). 그리고 쉰 살이 되어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했다. 흥미로운 건, 공자가 남긴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역을 잘 아는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善易者不占)." 점이 쓸모없어서가 아니다. 역의 이치를 깊이 이해하면, 굳이 점을 치지 않아도 흐름이 읽힌다는 뜻이다. 비판이 아니라 오히려 역의 깊이를 인정한 말이다. 맹자(孟子)는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사람이 구하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과,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 전자는 내 안에 있고, 후자는 밖에 있다. 밖에 있는 것을 붙잡으려고 안에 있는 것을 버리면, 둘 다 잃는다. 운명을 인정한 게 아니라, 사람 힘이 미치는 영역과 미치지 못하는 영역의 경계를 말한 것이다. 중국만 그런 게 아니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키케로(Cicero)는 점술에 관하여(De Divinatione)라는 책을 썼다. 새의 비행 방향으로 국가 대사를 결정하는 게 말이 되느냐. 꿈에서 본 것이 미래를 알려준다면, 왜 매번 다른 꿈을 꾸느냐.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반박했다. 그리스의 회의론자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는 열 가지가 넘는 논증을 동원해서 점술의 근거를 해체했다. 같은 시각에 태어난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 같은 전쟁터에서 수천 명이 동시에 죽는데, 그들의 별이 전부 같았겠느냐. 그런데 그 반대편에도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스토아 철학자 크리시포스(Chrysippus)는 우주 전체가 하나의 연결된 체계라고 봤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의 사슬로 이어져 있고, 그 사슬을 읽어내는 것이 점술이다. 달이 바다의 밀물과 썰물을 만들듯, 하늘의 운행이 사람의 일에 영향을 준다. 이건 맹신이 아니라 자연철학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Ptolemy)는 천문학의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서양 점성술의 기초를 세운 사람이다. 그의 테트라비블로스(Tetrabiblos)는 점성술 교과서인데, 거기서 세 가지를 분명히 했다. 첫째, 경험적 관찰의 축적이다. 수천 년간 쌓인 관측 데이터는 무시할 수 없다. 둘째, 술사가 틀린 것이지 체계가 틀린 게 아니다. 의사가 오진한다고 의학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셋째, 운명은 확정이 아니라 경향이다. 바뀔 수 있다. 다만 그 경향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다. 2천 년 전 사람의 말이라고 하기엔, 꽤 정교하다. 게다가 현재도 똑같은 논리로 반복해서 반박하고 있다. 이슬람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아부 마샤르(Abu Ma'shar)는 9세기 바그다드의 대학자였다. 점성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열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서, 하나하나 반박했다. "종교에 어긋난다"는 비판에는 자연법칙과 신의 뜻이 충돌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비판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과론을 끌어왔다. 반면 이븐 시나(Ibn Sina)는 점성술의 물리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고, 이븐 알하이삼(Ibn al-Haytham)은 실험으로 검증할 수 없으면 과학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인도에서도 차르바카(Charvaka) 학파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겠다며 점술을 부정했지만, 바라하미히라(Varahamihira)는 조티시(Jyotish, 인도 점성술)를 베다의 눈이라 불렀다. 사물의 때를 아는 학문이라고 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2천 년 넘게 이 논쟁은 계속되어 왔다. 한쪽은 미신이라 했고, 다른 한쪽은 자연의 이치라 했다. 한쪽은 검증이 안 된다고 했고, 다른 한쪽은 술사의 능력 문제이지 체계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띄는 게 있다. 비판하는 쪽도, 옹호하는 쪽도, 대부분 그 시대 최고 수준의 지식인이었다는 것이다. 바보들의 논쟁이 아니었다. 이것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였다. 2020년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 강의자 중 한 명인 복단대학 왕덕펑(王德峰)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마흔이 넘어서도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아직 충분히 살아보지 않은 것이다." 왕덕펑은 중국 정통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아무 근거 없이 한 말이 아니다. 그는 맹자의 그 구절을 끌어왔다. 구할 수 있는 것과 구해도 안 되는 것. 노력의 영역과 노력 밖의 영역. 그리고 자기 경험을 덧붙였다. 1977년, 중국에서 대학 입시가 부활했다. 왕덕펑은 그 첫 시험을 쳤다. 같은 해에 시험을 친 동기가 있었다. 능력도 비슷하고, 노력도 비슷했다. 그런데 한 사람은 교수가 됐고, 다른 한 사람은 평범한 삶을 살았다. 능력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 사이에 시대가 있었고, 배치가 있었고, 어쩔 수 없는 흐름이 있었다. 그는 이것을 "명(命)"이라고 불렀다. 왕양명(王陽明)도 비슷한 지점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용장(龍場)에서의 오도(悟道). 귀양 가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관 옆에서 잠을 자다가 깨달은 것. 이치는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마음 안에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작동하는 판 자체는, 내가 고른 게 아니다. 재미있는 건 현대다. 사주나 운명을 믿는다고 하면, 요즘은 바보 취급을 당하기 쉽다. 비이성적이고, 교육 수준이 낮고, 과학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시선. 그런데 실제 세계의 의사결정자들은 좀 다르다. JP 모건은 월가의 황제라 불린 사람이다. 그가 점성술사 이밴절린 애덤스(Evangeline Adams)에게 자문을 받은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직전에 애덤스는 모건에게 유럽 시장의 위험을 경고했고, 모건은 그에 따라 포지션을 정리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영부인 낸시 레이건은 점성술사 조안 퀴글리(Joan Quigley)에게 대통령의 일정을 자문받았다. 이건 소문이 아니라,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 도널드 리건이 회고록에서 직접 밝힌 사실이다. 대통령의 외교 일정, 기자회견 시간, 심지어 에어포스원의 이착륙 시간까지 점성술사와 상의했다.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도 점성술사 엘리자베트 테시에(Elisabeth Teissier)와 정기적으로 만났다. 아시아로 오면 더 노골적이다. 홍콩의 이가성(李嘉誠). 아시아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이었던 그는 풍수 대가 채백려(蔡伯勵)와 수십 년간 함께했다. 채백려는 이가성의 사무실 배치, 건물 방향, 심지어 묘지 위치까지 자문했다. 채백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가성은 직접 조문을 갔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관상(觀相), 풍수(風水), 사주(四柱)를 두루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원 면접에 관상가를 배석시켰다는 이야기는 한국 재계에서 유명하다. CJ그룹은 기문둔갑(奇門遁甲)을 경영 의사결정에 참고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돌았다. 인도의 인디라 간디 총리는 중요한 국가 결정을 앞두고 점성술사의 조언을 구했고, 엘리자베스 1세는 존 디(John Dee)를 궁정 자문관으로 두었다. 존 디는 당대 유럽 최고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는데, 동시에 점성술과 연금술의 대가이기도 했다. 이 사람들이 바보였을까.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자기 돈과 권력과 생명이 걸린 판단을 할 때, 굳이 비이성적인 것에 의존했을까. 아마 이들은 한 가지를 경험으로 알았을 것이다. 노력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같은 능력, 같은 노력, 같은 전략. 그런데 결과가 다르다. 왜 그런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것을 운(運)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명(命)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때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은 하늘의 뜻이라 부른다. 부르는 이름은 다 다르다. 그러나 그것이 있다는 느낌은, 놀라울 정도로 같다. 묵자는 그것을 부정했고, 공자는 쉰 살에 인정했다. 키케로는 논리로 해체했고, 프톨레마이오스는 경험으로 재조립했다. 왕충은 통계로 깨뜨리려 했고, 동중서는 하늘과 사람을 하나로 연결했다. 2천 년이 넘도록, 이 논의는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오래 살아본 사람만이 자기 답을 가질 수 있다. 남의 답은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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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4
  • 블루베리파이·

    감사합니다

  • 남희아·

    명리학을 알고 나서 저만 특혜?받는 거 같아서 좋아요 ㅎ 주변 사람들 봐줘도 안믿는 사람은 안믿더라고요 특히 안좋다하면 더 안믿고 ㅎㅎ ;;

    • sean·

      안 믿는 사람도 많고, 질색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보통은 40-50대 정도 되면 슬슬 믿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혹은 교회나 절을 가기도 하지만

  • 익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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