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걸 망치는 가장 빠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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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그림을 좋아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매일 그린다. 밥 먹다가도 그리고, 자기 전에도 그린다. 색연필이 닳아서 손가락만큼 짧아져도 버리지 않는다.
부모 눈에 이게 보인다. 그래서 한다.
"그림 한 장 그리면 천 원 줄게."
아이의 눈이 반짝인다.
그날부터 그림이 한 장에 천 원짜리가 된다.
처음에는 그림이 늘어난다. 예상대로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천 원을 안 주는 날, 아이가 안 그린다.
"오늘은 돈 없어?"
돈이 붙기 전에는 아무것도 안 줘도 그렸던 아이가, 돈이 붙고 나서는 돈 없이는 안 그린다.
천 원이 그림을 사 간 게 아니다. 천 원이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을 사 간 거다.
1971년, 심리학자 에드워드 덕시(Edward Deci)가 이걸 실험으로 증명했다.
로체스터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소마(Soma)라는 입체 퍼즐을 풀게 했다. 소마 퍼즐은 꽤 재미있는 물건이다. 시키지 않아도 손이 가는 종류의 놀이다.
실험은 세 단계로 진행됐다.
첫 단계, 두 그룹 모두 그냥 풀었다. 아무 조건 없이.
둘째 단계, A그룹에만 조건을 걸었다. 퍼즐 하나 풀면 1달러. B그룹은 여전히 공짜.
셋째 단계가 진짜 실험이다.
덕시가 방을 나갔다. "데이터 정리하고 올게요." 방에는 퍼즐도 있고, 잡지도 있었다. 아무도 안 보는 자유 시간이다.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돈을 한 번도 받지 않았던 B그룹은 여전히 퍼즐을 만지고 있었다.
돈을 받았던 A그룹은 퍼즐을 내려놓고 잡지를 집었다.
1달러가 퍼즐의 재미를 사 갔다.
이걸 행동경제학에서는 덕시 효과(Deci Effect)라고 부른다. 밖에서 상을 붙이면, 안에서 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든다.
왜 그런가.
뇌는 효율적이다. 그리고 게으르다.
어떤 일을 순수하게 좋아서 할 때, 뇌 안에서 다루는 물질인 도파민(dopamine)은 과정 전체에 걸쳐 나온다. 퍼즐 조각을 이리저리 돌리는 동안, 맞을 것 같은 순간, 딱 맞는 순간, 그 전부가 보상이다.
그런데 여기에 돈이 붙으면 뇌가 계산을 바꾼다.
도파민이 나오는 지점이 '과정'에서 '결과'로 옮겨간다. 퍼즐을 푸는 재미가 아니라, 풀고 나서 받는 1달러가 목적이 된다.
원인과 결과가 뒤집힌다.
좋아서 했던 일이, 돈 받으려고 하는 일이 된다.
그리고 돈이 사라지면, 하는 이유도 사라진다.
이게 아이의 그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라면 좋겠다.
그런데 어른의 세계에서 이게 훨씬 크게 작동한다.
글 쓰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 있다. 밤에 혼자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간이 좋았다. 뒤엉킨 생각을 한 줄씩 풀어내는 과정이, 일종의 명상이었다.
그런데 구독자가 늘고, 조회수가 나오고, 광고 수익이 붙기 시작하면 변한다.
글을 올린 뒤 첫 한 시간 동안 조회수를 새로고침하게 된다. 어떤 제목이 클릭률이 높은지를 연구하게 된다. 공들여 쓴 글이 조회수가 안 나오면, 그 일주일이 허무해진다.
글이 아니라 숫자를 쓰고 있었던 거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성과표에 묶이는 순간, 도파민의 출처가 바뀐다. 과정에서 결과로. 그리고 결과가 안 나오면, 과정 자체가 고통이 된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시장을 읽는 재미로 시작한 사람이, 수익률에 묶이는 순간 판단이 흐려진다. 포지션을 잡는 이유가 분석에서 조급함으로 바뀌고, 조급함은 잦은 매매를 부르고, 잦은 매매는 수수료를 부른다. 시장에 가만히 앉아 있던 사람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고, 그래서 더 조급해진다.
나는 다행이도 꽤 어릴때 이걸 체험으로 깨달았다. 30여년전에 나는 게임을 미치게 좋아하는 인간이었고, 밤새워 게임하던 인간이었는데, 잡지사에 게임 공략글을 쓰는 알바를 2년 정도하니까 , 돈 벌기위해서 강제로 게임을 하다 보니 게임이 재미없어져서, 게임을 안하는 인간이 되었고, 그 결과 그 후의 인생에서 꽤나 시간을 절약할수 있었다.
2008년, 듀크대학교의 댄 애리얼리(Dan Ariely)와 동료 연구자들이 한 가지 실험을 더했다.
사람들에게 레고 바이오니클을 조립하게 했다. 하나 완성하면 3달러, 다음 것은 2.7달러, 그 다음은 2.4달러. 갈수록 돈이 줄어드는 구조다.
첫 번째 그룹은 완성한 레고를 책상 위에 쌓아 뒀다. 하나씩 늘어나는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그룹도 규칙은 같았다. 단 하나, 차이가 있었다. 두 번째 레고를 조립하기 시작하면, 실험자가 눈앞에서 방금 완성한 첫 번째 레고를 분해해 버렸다.
조립하고, 부서지고, 조립하고, 부서지고.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다. 꼭대기까지 바위를 밀어 올리면 다시 굴러떨어지고, 또 밀어 올리면 또 굴러떨어진다.
결과.
첫 번째 그룹은 평균 10.6개를 만들었다. 두 번째 그룹은 평균 7.2개.
받은 돈은 같다.
그런데 여기서 연구자들이 더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첫 번째 그룹에서는 평소 레고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이 만들었다. 당연하다. 좋아하니까 더 했다.
그런데 두 번째 그룹, 눈앞에서 레고가 부서지는 그룹에서는 레고를 좋아하는 사람과 안 좋아하는 사람의 차이가 사라졌다.
좋아함이 아무 힘을 못 쓴 거다.
뜻이 부서지는 걸 반복해서 보여 주면, 원래 좋아했던 사람도 안 좋아했던 사람과 같아진다.
이 두 실험을 합치면, 하나의 그림이 나온다.
밖에서 당근을 매달면, 안에서 타오르던 불이 꺼진다. 뜻을 부수면, 좋아함 자체가 무력해진다.
당근과 파괴. 방법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사람 안에 있던 동력이 사라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거래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에게 "백 점 맞으면 아이패드 사 줄게"라고 하면, 공부가 아이패드를 얻기 위한 노동이 된다. 시험이 끝나면 공부도 끝난다.
직원에게 모든 동기를 숫자로 환산하면, 숫자 밖에 있는 일은 아무도 안 한다. 매뉴얼에 없는 친절, 지표에 안 잡히는 배려, KPI 밖에 있는 창의. 이런 것들이 먼저 죽는다. 요즘 하이닉스나 삼성 노조들 머리 속에는 돈 밖에 없을것이고, 그것이 오히려 기업 경쟁력을 죽이게 될 위험이 커졌다.
연구에 따르면, 예상하지 못한 보상은 안에서 우러나오는 동력을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강화한다.
미리 약속하지 않는 거다. 대신 과정에 빠져 있는 사람이 좋은 결과를 냈을 때, 생각지 못한 것을 건네는 거다. 보상이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잘한 일에 대한 확인이 되게 하는 거다.
당근을 코앞에 매달면 당나귀가 되고, 걸어온 길 끝에서 만나면 선물이 된다.
둘째, 과정 자체에서 보상을 찾는 훈련이다.
운동이 괴로울 때 운동 끝나고 먹을 치킨을 생각하면, 뇌에서는 운동이 치킨의 대가가 된다. 치킨이 없으면 운동할 이유도 없어진다.
반대로, 지금 이 순간 근육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보상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는 치킨이 없어도 운동이 남는다.
결과를 칭찬하지 말고, 과정을 칭찬하는 거다.
아이에게 "백 점이네, 잘했다" 대신 "한 시간 내내 앉아서 풀었구나"라고 하면, 아이의 뇌에서 보상이 붙는 자리가 달라진다.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도파민을 묶어 두면, 밖에서 무엇을 빼앗겨도 안에서 타는 불은 꺼지지 않는다.
셋째, 선택권을 지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기본 욕구가 있다고 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 소속감, 그리고 스스로 결정하고 싶은 마음.
이 셋 중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고, 무너지면 가장 치명적인 게 세 번째다.
아무리 큰 조직 안에 있어도, 자기 방식대로 하나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버틴다. 자기 리듬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사람은 내일도 출근한다.
그런데 모든 순서가 정해져 있고, 모든 판단이 위에서 내려오고, 내가 하는 일에 내 이름이 하나도 안 남으면, 그 사람은 부품이다.
부품은 닳는다. 그리고 닳은 부품은 좋아함을 잊는다.
조직 안에서든 혼자서든, 아무리 작아도 자기가 결정하는 한 뼘의 땅이 있어야 한다. 그 한 뼘이 있으면 나머지를 견딜 수 있고, 그 한 뼘이 없으면 전부를 가져도 견딜 수 없다.
우리는 모든 것에 가격을 붙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시간도, 관계도, 재능도 숫자로 환산되고, 숫자가 안 나오면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사람을 진짜로 멀리까지 데려가는 힘은 숫자 밖에 있다.
궁금해서 밤을 새는 힘. 재미있어서 멈추지 못하는 힘. 아무도 안 봐도 하고 싶은 힘.
이런 것들은 가격표를 붙이는 순간 줄어들고, 뜻을 부수면 사라진다.
1달러가 퍼즐의 재미를 사 갔다면, 그 재미의 원래 가격은 얼마였을까.
아마 1달러보다는 비쌌을 거다.
참고로 재미는 "식신, 상관"이 준다.
식신생재
상관생재는 사실 재미를 잃는 행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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