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를 끊고 사람을 줄이면, 어른이 되가는 것
sean··읽음 24
술자리를 먼저 사양하고, 만남을 줄이고, 명절 인사도 꼭 필요한 데만 가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외로운 게 아니다. 눈이 떠진 것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술자리는, 끝나고 나면 남는 게 셋이다. 빈 지갑, 지친 몸,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찾아오는 후회. 그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 중에 한 달 뒤에도 기억나는 말이 있었는지 한번 떠올려 보기 바란다.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누가 얼마짜리를 시켰는지, 누가 먼저 나갔는지, 그리고 내가 왜 끝까지 앉아 있었는지 정도다.
로빈 던바(Robin Dunbar)라는 영국 옥스퍼드의 인류학자가 있다. 이 사람이 영장류의 뇌 크기와 사회적 관계를 연구해서 하나의 수를 내놓았다.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고 부르는데, 사람이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계가 대략 150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150명 안에서도 층이 있다. 정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5명 안팎이다. 위기에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은 15명쯤 된다. 나머지는 이름과 얼굴이 겨우 일치하는 수준이다.
150명이 한계인데, 술자리에서 새로 만난 사람을 그 안에 집어넣으려면 누군가를 밀어내야 한다. 밀려나는 쪽은 대체로 진짜 가까운 사람이다. 시간과 에너지가 정해져 있으니까.
사람을 줄이는 것은 냉정한 게 아니라, 산수가 되는 것이다.
"인맥이 넓다"는 말을 자랑처럼 하는 사람이 있다. 명함이 서랍 하나를 채우고, 전화번호부가 스크롤을 해도 끝이 안 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입원하면 병문안 오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워런 버핏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이 정말 부자인지 알고 싶으면, 전 재산을 잃었다고 상상해 보라. 그래도 곁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부자다."
전 재산을 잃었을 때 곁에 남는 사람은, 대체로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다.
재주를 부려서 사람을 끌어모으는 것보다, 실력을 키워서 사람이 찾아오게 하는 것이 순서다.
백 명에게 밥을 사는 것보다 혼자 앉아서 한 가지를 제대로 익히는 편이 낫다. 밥을 산 백 명은 다음에 더 비싼 밥을 사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쪽으로 간다. 그러나 실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알아서 온다. 이쪽은 밥을 안 사도 온다.
진짜 인맥은 내가 아는 사람의 수가 아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수다.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수는, 내가 술자리에 몇 번 갔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바깥에서 아무리 형님 아우님 하며 어깨를 두드려도, 내가 아플 때 옆에서 죽을 끓여주는 사람은 집에 있다.
술자리에서 "내가 형 아니면 누가 형을 도와" 하던 사람은, 정작 형이 돈이 필요할 때 전화를 안 받는다. 받더라도 "요즘 나도 어려워서"가 먼저 나온다. 이건 그 사람이 나쁜 게 아니다. 원래 그런 것이다. 술자리의 약속은 술이 깨면 같이 깬다.
가족이 제대로면, 아내는 남편이 망해도 같이 굶고, 부모는 자식이 잘못해도 등을 돌리지 않는다. 물론 가족 관계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남보다 못한 가족도 많다. 그러나 가능성의 순서를 따지면, 바깥의 백 명보다 안의 한 명이 먼저다.
증광현문(增廣賢文)에 이런 말이 있다.
貧居鬧市無人問 富在深山有遠親
가난하면 번화한 거리에 살아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부자면 깊은 산속에 살아도 먼 친척이 찾아온다. 수백 년 전에 쓰인 말인데, 지금 읽어도 고칠 데가 한 글자도 없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1938년부터 시작해서 80년 넘게 이어진 연구가 있다. 하버드 성인발달연구(Harvard Study of Adult Development)라고 부르는데, 724명의 삶을 청년기부터 노년까지 추적한 것이다.
이 연구의 결론은 단순하다. 행복과 건강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가까운 관계의 질"이다. 관계가 많은 것이 아니라 관계가 깊은 것이 중요하다.
4대 연구 책임자인 로버트 월딩어(Robert Waldinger)는 이렇게 정리했다. "좋은 관계가 우리를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게 만든다. 그게 전부다."
관계가 넓은 사람이 아니라 관계가 깊은 사람이 오래 산다. 넓이가 아니라 깊이다.
술자리를 끊는 것은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만남을 줄이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다.
명절 인사를 정리하는 것은 예의가 없어서가 아니다.
자기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줄 안다. 전화번호부가 두꺼울수록 든든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모임이란 모임은 다 나가고, 불러주면 어디든 가고, 2차 3차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 한번 크게 넘어져 본다. 사업이 기울거나, 건강이 무너지거나, 가정에 금이 간다.
그때 전화번호부를 열어 본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 내려간다.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없다. 연락이 되는 사람도 "힘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끊는다. 혹은 돈 빌려달라고 해봐라, 읽씹이면 양반이고, 블랙 리스트에도 들어간다.
그리고 그나마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가족이거나 친구 1명? 그것도 없을수 있다. 그때서야 알게 된다. 그렇게 중요해 보이던 인간관계 소용없구나.
그날부터 술자리가 사라진다. 모임이 줄어든다. 대신 집에서 밥을 먹는 날이 늘어난다. 홀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그것을 바깥에서는 "저 사람 요즘 왜 안 나와?" 하고 묻는다.
답은 간단하다. 나올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스물네 시간이다.
그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가 그 사람의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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