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은 움직여서 만드는 거다, 누워서 오는 게 아니다
sean··읽음 29
누군가 물었다. 요즘 뭘 해도 안 풀린다, 운이 잠긴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되냐고.
두 달 동안 뭘 했느냐고 되물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누웠다고 했다.
답은 간단하다. 이번 주말에 밖에 나가라. 어디든 좋다.
반신반의했던 그 사람이 며칠 뒤 연락을 해왔다. 무작정 바다에 갔는데 모래밭에 앉아 있다가 면접 전화를 받았고, 다음 주에 출근한다고.
이건 기적이 아니다. 역경(易經)에서 가장 오래된 원리 하나가 작동한 것뿐이다.
사람이 움직이면 기(氣)가 움직인다. 기가 움직이면 운이 돈다.
움직이지 않으면 기는 막힌다.
역경 첫 괘 건괘(乾卦)의 대상전에 이런 말이 있다.
天行健 君子以自強不息
하늘의 움직임은 쉬지 않으니, 사람도 스스로 쉬지 말아야 한다.
하늘이 쉬지 않는다는 건, 해와 달이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봄 다음에 여름이 오고,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오고, 쉬는 날이 없다. 멈추면 계절이 아니라 정지(停止)다. 정지한 자연은 죽은 자연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릇은 가만히 놓아두면 먼지가 쌓이고, 녹이 슬고, 아무도 쓰지 않는다. 사람은 그릇이 아니다. 살아 있는 존재는 움직여야 기혈이 돌고, 눈앞의 풍경이 바뀌고, 풍경이 바뀌어야 생각이 바뀐다.
그래서 흔히 은퇴하면, 갑자기 늙는다고 하지 않나?
집에만 있으면 폐인되는것 비슷하다.
운이 나빠지는 첫 번째 징조는 큰 사고가 아니다.
움직이지 않게 되는 거다.
퇴근하면 소파에 녹아들고, 주말이면 이불 속에 파묻히고, 출퇴근 길은 눈 감고도 걸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진다.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그건 안정이 아니라 정체(停滯)다.
기가 막히면 생각이 좁아진다. 생각이 좁아지면 사소한 일에 화가 나고, 거울 속 자기 얼굴도 마음에 안 든다. 안 풀리는 게 아니라, 풀릴 수 있는 통로를 전부 닫아 놓은 거다.
소동파가 그 증거다.
1079년, 오대시안(烏臺詩案). 시 몇 편이 빌미가 돼서 옥에 갇혔다.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황주(黃州)로 쫓겨났다. 벼슬은 껍데기뿐이고, 녹봉은 바닥이고, 인생이 통째로 무너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을 원망했을 거다.
소동파는 밖으로 나갔다.
적벽 아래로 배를 띄웠고, 사호(沙湖)까지 걸어가서 밭을 구경했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같이 간 사람들은 머리를 싸매고 뛰었는데, 소동파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짚신을 신은 채 빗속을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한 수 적었다.
竹杖芒鞋輕勝馬 誰怕 一蓑煙雨任平生
대나무 지팡이에 짚신이 말보다 가볍다. 뭐가 무섭겠는가. 도롱이 하나 걸치고 비바람 속을 가는 게 내 인생이다.
그 뒤로 더 먼 곳으로 쫓겨났다. 혜주(惠州), 담주(儋州). 갈수록 벽지였다. 그런데 그는 갈 때마다 걸었다. 걸으면서 여지(荔枝)를 먹었고, 학당을 열었고, 사람들과 어울렸다.
운이 그를 좋게 대해 준 적이 없다. 그런데 그는 자기 자신을 운으로 만들어 버렸다.
역사에서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온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방 안에서 생각만 해서 답을 찾은 사람은 없다는 거다. 전부 밖에 나가서, 한 걸음씩, 길을 걸어서 넓힌 사람들이다.
나가는 게 가장 싸게 운을 바꾸는 방법이다.
나간다는 게 여행을 뜻하는 건 아니다. 나가라고 하면, 뭐 무슨 대단한 여행 계획을 만들어서, 안 가본 나라 가보고 그래야 하는 줄 아는데,
이른 아침에 재래시장에 가 보라. 찜통 뚜껑이 열리면서 하얀 김이 올라오는 풍경, 아저씨가 두부를 써는 소리, 할머니가 파를 다발로 묶는 손놀림. 혹은 대형 마트를 가도 된다. 근처에 뭐가 있던지 간에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현장에 가는 것, 혹은 힘든 사람들이 쿠팡에서 뭐 상하차든 노동한다고 하지 않나? 그런게 다 운을 바꾸는 행위에 속한다. 왜냐면 거기서 보이는 그 에너지들 그게 전부 살아 있는 기(氣)다.
오후에 공원에 앉아 보라. 할아버지들이 장기를 두고, 아이들이 비둘기를 쫓고, 햇빛이 잔디 위를 한 뼘씩 옮겨 간다. 물론 그렇다는 거지, 진짜 할아버지가 없을수도 있고, 아이들은 학원가서 안 보일수도 있긴 하다. 그러나 밖에 나와서 공원 벤치에 앉아 있으면 머릿속에서 꽁꽁 얼어 있던 것들이 슬슬 녹는다.
아니면 한 번도 안 타 본 버스를 타라. 목적지 없이, 종점까지. 창밖으로 한 번도 안 본 동네가 지나가고, 처음 보는 간판이 눈에 들어오고, 낯선 냄새가 코를 스친다.
돈이 드는 게 아니다. 장(場)이 바뀌는 거다.
장이 바뀌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달라진다. 귀에 들리는 것이 달라진다. 머릿속에서 도는 생각이 달라진다.
풀리지 않던 것들은 대부분 집 안에서 풀리지 않는다.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툭 풀린다. 왜 풀리는지는 설명이 안 된다. 그냥, 기가 돌기 시작하면 막혀 있던 것들이 함께 돌기 시작하는 거다.
마음이 한번 풀리면 표정이 바뀐다. 표정이 바뀌면 사람이 다가온다. 사람이 다가오면 기회가 보인다. 운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꺼져 있던 수신기가 다시 켜지는 거다.
중의학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久臥傷氣
오래 누우면 기가 상한다.
피곤해서 눕는 건데, 누울수록 더 피곤해지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거다. 주말 내내 누워 있었는데 월요일이 더 힘든 거. 그게 바로 기가 상한 상태다. 몸이 쉬는 게 아니라 기가 정체된 거다.
몸을 움직이면 기혈이 저절로 순환한다. 많은 피로는 실은 피로가 아니라 답답함이 몸에 쌓인 거다. 걸으면 빠진다.
역경 육십사괘(六十四卦) 중에 여섯 효가 전부 좋은 괘는 딱 하나, 겸괘(謙卦)다.
그런데 육십사괘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는 한 글자로 줄여진다.
변(變).
변하려면 먼저 움직여야 한다.
가만히 누워서 변하는 건 없다. 세포가 늙어가는 것 말고는.
운은 기다려서 오는 게 아니다. 한 걸음씩 걸어서 만드는 거다.
이번 주말, 핸드폰 내려놓고 밖에 나가 보라. 동네 공원이어도 충분하다.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기가 한 번 바뀐다.
바뀐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나가 본 사람만 안다.
♡ 좋아요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