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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판을 내려다보는 눈, 그것이 상석에 앉는 속도를 정한다

sean··읽음 23
상석(높은 자리)에 앉지 못하면, 자기가 어떤 판에 끼어 있는지조차 모른다. 매일 바쁜 사람이 있다. 할 일을 처리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월세와 고지서와 실적과 또래의 속도를 쫓느라 숨 쉴 틈이 없다. 게으른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제자리다. 멈추지 않았는데 앞으로 나아간 것도 아니다. 반면, 똑같이 바쁜데 방향이 있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일에 시간을 걸 만한지, 어떤 일이 그냥 소모인지 안다. 언제 참아야 하고 언제 떠나야 하는지, 누구에게 배워야 하고 누구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는지를 안다. 삶에서 허우적거리는 것과 삶에서 선택하는 것. 이 차이를 부감력(俯瞰力)이라 부른다. 판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이다. 명리학(命理學)에서 사람의 팔자는 다섯 가지 힘으로 돌아간다. 비겁(比劫)은 나 자신, 내 몸, 내 체력이다. 식상(食傷)은 내가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재성(財星)은 내가 쥘 수 있는 자원이다. 관살(官殺)은 나를 누르는 압력, 규칙, 환경이다. 인성(印星)은 내가 받는 것, 배움, 경험, 깨달음이다. 이 다섯이 팔자 안에서 어떻게 배치되어 있느냐에 따라,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높이가 달라진다. 부감력이 없는 사람의 팔자를 들여다보면, 대부분 비겁(比劫)이 앞서고 식상(食傷)이 막혀 있다. 비겁이 강하면 몸이 먼저 움직인다. 생각하기 전에 뛴다. 남이 하면 나도 해야 하고, 남이 가지면 나도 가져야 한다. 에너지는 넘치는데 방향이 없다. 식상이 막히면 더 심각하다. 식상은 일간(日干)이 뱉어내는 기운, 그러니까 내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과 판단이다. 이것이 막히면 자기만의 눈이 없다. 남의 기준으로 바쁘고, 남의 속도에 쫓기고, 남의 판에서 뛰면서 자기 경기라고 착각한다. 바쁜데 앞으로 안 나가는 사람의 구조가 대체로 이렇다. 비겁은 넘치고, 식상은 죽어 있고, 재성(財星)은 멀리 있다. 부감력이 있는 사람은 다르다. 인성(印星)이 일간에 힘을 주고, 그 힘이 식상(食傷)으로 흘러나가는 구조다. 인성은 경험이다. 배움이다.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남는 것이다. 이것이 일간에 스며들면 일간이 단단해지고, 단단해진 일간에서 나오는 식상은 질이 다르다.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판단한다. 지금 눈앞에 놓인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한 발 물러서서, 이 일이 내 판에서 어디쯤에 놓이는지를 본다. 인성에서 일간으로, 일간에서 식상으로, 식상에서 재성으로. 이 유통(流通)이 살아 있는 사람은 같은 시간을 써도 쌓이는 것이 다르다. 그러면 상석(높은 자리)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오해한다. 돈을 많이 벌거나, 사장이 되거나, 큰 집에 살거나, 대단한 사람을 아는 것이 상석이라고. 그것은 결과일 수 있지만 본질은 아니다. 상석이란 선택권이 생기는 것이다. 명리학으로 말하면, 재관(財官)이 갖춰진 자리다. 재성(財星)은 내가 쓸 수 있는 자원이고, 관성(官星)은 내 이름이 붙는 자리, 내가 서 있는 위치다. 이 둘이 있으면 사람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무례한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다. 나를 갉아먹는 관계를 끊을 수 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쓸 수 있다. 상석 바깥에 있는 사람은 늘 선택을 당한다. 선택권이 없다는 이야기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진다. 임원이라도 선택권, 결정권이 없다면 상석이라고 할 수 없다. 회사가 기회를 줄지 말지 결정하고, 고객이 살지 말지 결정하고, 환경이 숨을 쉴 수 있을지 없을지 결정한다. 열심히 하지만 결국 남의 결정을 기다린다. 이것이 관살(官殺)에 눌린 구조다. 관살은 나를 제어하는 힘인데, 이것을 다스릴 식상(食傷)도 없고, 버틸 인성(印星)도 약하면, 사람은 환경이 시키는 대로 끌려다닌다. 상석에 앉은 사람은 다르다. 가격을 말할 수 있고, 함께할 사람을 고를 수 있고, 시간을 어디에 쓸지를 자기가 정한다.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여유가 반드시 통장 잔고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남이 대체할 수 없는 능력일 수도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 몇일 수도 있고, 꾸준히 가치를 만들어내는 방식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상석은 돈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돈의 가장 기본적인 쓸모는 과시도 비교도 아니다. 생존을 위해 자존심과 기개를 너무 많이 팔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것이다. 참기 싫을 때 참지 않을 수 있는 여지. 그것이 상석에 앉는다는 말이다. 부감력이 상석에 앉는 속도를 정하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엉뚱한 곳에서 너무 오래 머문다. 성장 가능성이 없는 일자리에서 오 년을 버틴다. 오래 버티면 알아줄 거라고 믿으면서.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관계에서 몇 년을 쏟는다. 정성을 들이면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믿으면서. 모든 에너지를 사람들 비위 맞추는 데 쓴다. 그러다 보면 정작 중요한 사람과 기회는 하나도 안 남는다. 그들이 게으른 것이 아니다. 버티는 것만이 옳다고 믿고, 떠나는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고, 참는 것을 성숙이라고 착각할 뿐이다. 명리학에서 이런 구조를 보면 비겁(比劫)이 재성(財星)을 직접 움켜쥐는 모습이 많다. 비겁취재(比劫取財)다. 내 몸으로 직접 붙잡으려 하니 힘만 들고 잘 안 잡힌다. 겁재견재필탈(劫財見財必奪)이라는 말이 있는데, 억지로 쥐면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식상(食傷)이 살아 있으면 다르다. 식상은 재성으로 가는 다리다. 내 생각, 내 기술, 내 판단으로 자원을 끌어오는 흐름이다. 이 다리가 놓이면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된다. 부감력이란 결국 이 다리를 일찍 놓는 눈이다. 어디에 오래 투자할 만한지, 어디가 그냥 소모인지를 남들보다 일찍 분별한다. 이것을 일찍 알수록 삶에서 낭비가 줄어든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인지(認知)의 차이라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지를 선택으로 바꾸는 속도의 차이다. 능력이 학력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리고 선택이 능력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좀 더 적은 사람이 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스물다섯에 이미 남이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을 쌓기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마흔이 되어서도 자격증 한 장이 운명을 바꿔줄 거라고 믿는다. 수입이 하나면 위험하다는 것도 누구나 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 전문성으로 두 번째 수입을 만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불안하다고만 할 뿐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도 누구나 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가치가 있을 때 신뢰를 쌓아놓고, 어떤 사람은 도움이 필요할 때에야 비로소 연락처를 뒤진다. 이치는 다 알고 있다. 진짜 드문 것은 남들보다 일찍 보고, 일찍 시작하는 것이다. 업종마다 기회에는 주기가 있고, 사람의 체력에는 정점이 있고, 관계에는 회복하기 가장 좋은 때가 있고, 능력에도 쌓기 가장 좋은 시기가 있다. 대운(大運)이 바뀌고 세운(歲運)이 돌아올 때, 준비된 사람에게는 문이 열리고 준비 안 된 사람에게는 바람만 지나간다. 같은 운이 와도 받을 그릇이 다르다. 가장 위험한 것은 상석에 못 앉은 것이 아니다. 구경을 하면서 자기가 참여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나는 많이 알고 있으니까 강해지고 있는 거야." 이것은 착각일 수 있다. 사업 분석 글을 많이 읽었다. 돈 버는 방법을 잔뜩 저장해 놓았다. 성공한 인터뷰를 많이 들었다. 좋은 문장을 많이 공유했다. 좋은 글을 많이 스크랩 보관했다. 예전보다 아는 것이 늘었다. 그런데 고객이 한 명 더 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하나 더 생긴 것도 아니고, 수입이 한 줄 더 늘어난 것도 아니다. 아는 것은 쉽다.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 남이 돈 버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내가 돈 버는 것은 아니다. 남의 성공을 연구하는 것이 내가 성공할 조건을 갖추는 것은 아니다. 남의 인생에 감동받는 것이 내 삶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명리학으로 보면 이것이 인성(印星)만 쌓이고 식상(食傷)으로 안 나가는 구조다. 인성은 받는 것이다. 읽고, 듣고, 배우고, 흡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식상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그러니까 내 생각과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머릿속에만 가득 차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도식(倒食)이라는 개념이 있다. 편인(偏印)이 식신(食神)을 극하는 것인데, 배운 것이 오히려 행동을 막는 구조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 못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이것저것 따지느라 시작을 못 한다. 완벽한 조건이 갖춰지면 하겠다고 한다. 그 조건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진짜 상석에 앉으려면 서툴러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시작해야 하고, 처음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내 능력을 진짜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거절당하고, 까이고, 비교당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나는 할 수 있을 거야"에서 "남이 내 값어치에 돈을 낸다"로 건너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멋지지 않다. 그렇지만 진짜 성장은 언제나 "나는 누가 되고 싶다"에서 "나는 오늘 무엇을 하겠다"로 내려앉을 때 시작된다. 사람은 진짜 교환 속에서만 진짜 값어치가 자란다. 늦었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많은 깨달음은 손해를 보고, 아프고, 길을 걸은 다음에야 천천히 자라나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조건 안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이다. 느려도 된다. 다만 같은 자리를 계속 돌면 안 된다. 아직 답이 없어도 된다. 다만 남의 답을 내 인생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아직 상석에 못 앉았어도 된다. 다만 자기 의자를 하나씩 만들어가야 한다. 그 의자는 팔 수 있는 전문 능력일 수도 있고, 마음 놓이는 저축일 수도 있고, 진짜 나를 믿어주는 사람 몇일 수도 있고, 포기하지 않고 만들고 연결하고 표현한 끝에 조금씩 쌓인 영향력일 수도 있다. 작아 보이지만, 어느 날 그것이 선택의 여지가 된다. 모든 상석이 앉을 만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수입으로 성공을 재고, 누군가는 결혼으로 완성을 재고, 누군가는 직함으로 가치를 재고, 누군가는 박수소리로 사랑받는지를 잰다. 부감력이 없으면 남이 차려놓은 기준 위에서 계속 뛰게 된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경기장에서 기진맥진한다. 한 번쯤 멈추고 물어볼 만하다. 이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인가. 어떤 상석에 앉을 것인지, 누구와 함께 앉을 것인지, 어떤 자세로 앉을 것인지. 그것을 고를 수 있는 힘을 만드는 것이, 부감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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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1
  • 키네시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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