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거나 부자일수록 현학을 찾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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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크게 하는 사람치고 풍수(風水)를 안 보는 사람이 드물다.
손목에 염주를 감고, 사무실에 풍수 장치를 놓고, 큰 결정 앞에서 점을 치고, 새해 첫날 묘(廟)에 가서 향을 올린다. 수백, 수천억 심지어 조단위로 움직이는 사람이 돌아서서 역술인 앞에 앉는다.
이상한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전혀 이상하지 않다.
돈이 많아질수록 현학(玄學)을 찾는 것은 그 사람이 어리석어져서가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 사람이 누구보다 또렷하게 알기 때문이다.
흔히 '미신'과 '무식'을 한 묶음으로 엮는다. 그게 일반 사람들 혹은 무지한 사람들의 인식이다. 그런데 미신에 가까운 행동은 '무지'보다 '통제감 보상'에 가깝다는 것이 심리학의 설명이다. 어떤 영역에서 통제력을 잃었을 때, 뇌가 스스로 규칙과 의례를 만들어서 "아직 내 손 안에 있다"는 감각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자가 현학을 찾는 것과, 수험생이 시험 전날 미역국을 피하는 것은 뿌리가 같다. 다만 무대가 다르고, 판돈이 다를 뿐이다.
명리(命理)에서 재성(財星)은 일간(日干)이 극하는 오행이다. 내가 누르고 쓰는 것, 그것이 재물이다.
그런데 재성은 혼자 커지지 않는다.
재생관(財生官). 재성이 커지면 관살(官殺)도 커진다. 관살은 나를 누르고 제약하는 힘이다. 세금, 규제, 소송, 경쟁자, 정치적 변수. 재산이 백 원일 때 관살도 백 원짜리 크기지만, 재산이 백억이 되면 관살도 백억짜리로 자란다.
보통 사람의 변수는 이번 달 월세다. 큰 부자의 변수는 환율, 정책, 지정학, 상속 분쟁,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곳에서 날아오는 것이다.
변수가 복잡해질수록, 사람 손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이 넓어진다. 그 바깥을 견디지 못할 때, 사람은 무언가를 잡는다.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에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은 같은 만 원이라도, 잃을 때의 고통이 얻을 때의 기쁨보다 훨씬 크다는 이론이다.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가 1979년에 발표했다.
없는 사람이 한 판 걸어서 지면, 원래 없던 것이다. 있는 사람이 한 번 잘못 밟으면, 반평생이 날아간다.
재물이 커질수록 '지키는 일'이 '버는 일'보다 무거워진다. 변호사와 회계사에게 한 겹 보험을 들고, 풍수사와 역술인에게 또 한 겹 보험을 든다. 그 두 번째 보험이 바보짓처럼 보이는 건, 첫 번째 보험만으로 충분한 사람의 시선이다. 심지어는 그런 보험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이는게 정상이다.
명리로 옮기면 이렇다.
재성(財星)이 커지면 인성(印星)이 깎인다. 재극인(財剋印). 인성은 보호이고, 기댈 곳이고, 마음의 안정이다.
돈이 늘어나는데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 사람이 많다. 재극인의 구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재물이 인성을 깎으면, 잔고는 늘어나는데 불안은 줄지 않는다. 오히려 커진다.
이때 사람이 찾는 것이 현학이다.
풍수를 보고, 점을 치고, 부적을 쓰고, 의식을 행하는 것. 이 모든 행위는 명리의 눈으로 보면 인성(印星)을 빌리는 행위다. 재성이 깎아낸 인성의 빈자리를, 다른 경로로 채우려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는 감각을 만드는 것이다.
어리석음이 아니라 균형을 찾으려는 몸부림이고, 또 실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돈으로 맘의 평화를 살 수 있다? 왜 그것을 안하겠나? 마음의 평화보다 돈이 중요한 사람 눈에나 미친짓인거지.
가장 흥미로운 역설이 하나 있다.
어떤 영역에서 크게 이룬 사람일수록,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안다.
돈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고, 자원을 동원할 수 있고, 대부분의 문제를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생사(生死)는 못 산다. 시장의 방향은 못 산다. 좋은 운(運)은 못 산다.
돈이 많을수록 "돈이 닿지 않는 천장"이 또렷해진다. 그 천장 앞에서, 사람은 다른 길을 찾는다. 점을 치고, 풍수를 고치고, 기도를 하는 것은 — 운(運)까지도 통제 안에 넣어보려는 시도다.
한무제(漢武帝)를 보면 된다.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기록이 남아 있다. 한나라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황제. 흉노를 몰아내고, 영토를 넓히고, 중앙집권을 완성했다. 천하를 손에 쥔 사람이다.
그런데 만년에 무고의 옥(巫蠱之禍)이 터졌다. 징화(征和) 2년, 기원전 91년의 일이다. 누군가 저주 인형을 묻어 황제를 저주했다는 사건이다. 한무제는 강충(江充)을 시켜 궁 안팎을 뒤지게 했고, 무당을 불러 수색하게 했다. 태자 유거(劉據)까지 연루되어 반란을 일으켰고, 수만 명이 죽었다.
천하를 가진 사람이, 무당의 말 한마디에 제 아들까지 잃었다.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천하를 가져봤기 때문에, 천하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뼈에 사무치게 알았기 때문이다. 늙어가는 몸,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 아무리 위병(衛兵)을 세워도 막을 수 없는 것들.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것을 찾는게 인간인 것.
재극인(財剋印)의 극단이다. 천하라는 재성(財星)이 너무 커서, 인성(印星) — 안정, 신뢰, 마음의 평온 — 이 남아나질 않은 것이다.
현대도 다르지 않다.
홍콩 HSBC 본사 빌딩. 세계적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하고 1985년에 완공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건물이었다. 그런데 설계 과정에서 풍수사의 자문을 받았다. 에스컬레이터 각도를 바꿔서 기(氣)가 곧장 빠져나가지 않게 했고, 건물 정면에 청동 사자상 두 개를 놓았고, 건물이 바다를 향해 열리도록 배치를 조정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금융 기관이, 수천억을 들여 건물을 지으면서, 풍수사의 말을 들었다. 노먼 포스터 본인이 인터뷰에서 이 사실을 확인했다.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하나라도 줄이고 싶었던 것이다. 풍수라는 이름의 인성(印星)을 빌딩에 심은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 전염이다.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같은 풍수사, 같은 역술인, 같은 명리 선생을 공유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층에서는 누구에게 자문을 받느냐가 일종의 입장권이다. 상대도, 파트너도, 이웃도 같은 선생에게 다닌다. 혼자 안 믿는다는 것은 '규칙을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다.
명리로 보면 비겁(比劫)의 작용이다. 같은 층위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행동을 끌어당긴다. 내가 안 믿어도, 옆 사람이 믿으면 나도 한 번쯤 가보게 된다. 믿음이 아니라 관계의 압력이다.
누구에게 들은것인데, 재벌 누구가 수정(크리스탈)을 사모았다는데, 이유가 더 큰 서양 재벌들이 수정들을 보유하고 있어서라고 한다.
2008년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연구가 있다. 휫슨(Whitson)과 갈린스키(Galinsky)가 실험을 했는데, 사람이 '통제력을 잃었다'고 느끼는 순간, 존재하지 않는 규칙과 징후와 패턴을 더 많이 보기 시작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통제력 상실이 미신의 가장 좋은 토양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큰 부자는, 가장 통제할 수 없는 층에 살고 있다.
큰 부자 중에 "창업 전에 점을 쳤는데 그때부터 잘 됐다", "사무실 방향을 바꿨더니 매출이 올랐다", "이름을 고쳤더니 운이 트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잘 된 건지, 잘 되고 나서 그 기억에 의미를 붙인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그 사람 옆에서 "그거 관계없습니다"라고 장담할 수 있겠나?
보통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서 비웃거나 반박한다. 큰 부자가 같은 이야기를 하면,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비서는 풍수사 연락처를 챙기고, 아무도 미신쟁이라고 욕하지 않는다.
도덕경(道德經) 9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금은보화로 집 안을 가득 채워도 그것을 지켜낼 수 없고, 부귀하면서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긴다.
노자(老子)가 2500년 전에 한 말이다. 채우는 것 자체에 지킬 수 없음이 이미 들어 있다는 것이다.
부자가 현학을 찾는 이유는, 이 한 줄에 다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가득 찬 사람이기 때문에,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다. 그 감각 앞에서, 돈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잡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돈 많은 사람이 풍수를 보고 점을 친다고 웃을 일이 아니다.
그 사람도 우리와 같다. 잡을 수 있는 것으로, 잡을 수 없는 것에 맞서고 있을 뿐이다.
다만 한 가지 갈림길은 있다.
현학을 마음의 지팡이로 삼느냐, 방향타로 삼느냐.
지팡이는 걷다가 흔들릴 때 짚는 것이다. 방향타는 갈 곳을 통째로 맡기는 것이다. 사실 큰 성공을 한 사람 중, 현학을 완전한 방향타로 삼는 사람은 없다. 그들에게 현학은 마음의 지팡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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