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이후, 행복의 첫 번째 조건
sean··읽음 24
마흔이 넘으면 슬슬 천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요즘 사람들은 관리도 잘하고, 그래서 마흔이 되도 스스로 중년이라고 생각 안할수도 있기는 하다.
그래도 대충 직장에서 마흔이면, 대략 아자씨, 아줌마 아니던가?
일에서는 올라갈 자리가 어디쯤인지 감이 오고, 돈은 버는 것보다 나가는 게 더 빨라지고, 아이는 말을 안 듣고, 몸은 예전 같지 않다. 이십 대에는 전부 가능해 보였고, 삼십 대에는 반쯤은 될 것 같았는데, 사십이 넘으니 남은 패가 대충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패가 보이기 시작하면 오히려 편해져야 정상인데, 대부분은 더 불안해진다. 아직 안 된 것, 놓친 것, 바꾸고 싶은 것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시간이 줄어드니까 조급해지고, 조급해지니까 이것저것 손대고, 손대는 것마다 안 되니까 밤에 잠이 안 온다.
이 병의 이름이 있다. 옛사람들은 이것을 망(妄)이라고 불렀다.
망이란, 없는 것을 있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될 수 없는 것을 되겠다고 매달리는 집착이다. 내 그릇이 국그릇인데 솥단지만큼 담으려는 힘이다.
중년 이후 불행의 대부분은 가진 게 적어서가 아니다. 바꾸려는 게 너무 많아서다.
사업이 대박 나야 하고, 퇴직하면 해외여행 다니면서 살고, 아이가 명문대에 가야 하고, 배우자가 내 맘에 들게 적응해야 하고, 몸이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네 가지 중 하나만 안 돼도 불행하다고 느끼는데, 넷 다 될 확률은 거의 없다. 아니 한두개라도 될 가능성도 적다. 그러니 늘 불행하다.
소동파라는 사람이 있었다.
중국 북송의 문장가이자 관료였다.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았고, 글 한 편 쓰면 나라 안에 퍼졌다. 지금으로 치면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그런데 1079년, 시를 썼다가 체포됐다. 오대시안(烏臺詩案)이라는 사건이다. 시에 담긴 풍자가 정적들의 빌미가 됐고, 옥에 갇혀 죽을 뻔했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관직을 빼앗기고 황주(黃州)라는 시골로 쫓겨났다.
봉급도 없고, 집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무너진다. 그리고 실제로 처음에는 무너졌다. 술을 마시고, 밤에 혼자 걸었고, 옛날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사람이 바뀌었다.
동쪽 언덕에 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동파거사(東坡居士)라 불렀다. 돼지고기가 싸니까 직접 요리법을 만들었다. 그게 지금까지 남은 동파육(東坡肉)이다. 대나무로 죽순 요리를 하고, 술을 빚고, 이웃 농부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어느 가을밤, 배를 타고 적벽 아래를 지나다가 이런 글을 남겼다.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의 밝은 달.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만나면 빛이 된다. 가져도 막을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조물주의 다함없는 창고다.
적벽부(赤壁賦)의 한 대목이다.
이 사람은 재상이 될 수도 있었다. 황제 옆에서 나라를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밭 갈고 돼지고기 삶으면서 조물주의 창고를 발견했다. 바람과 달은 공짜였다.
소동파가 특별히 낙천적이었던 게 아니다. 이 사람도 처음에는 원통해했고, 억울해했고, 복직 청탁 편지도 썼다. 달라진 건, 어느 시점에서 없앨 것을 없앴다는 거다.
재상 자리를 없앴다. 황제의 인정을 없앴다. 수도 개봉의 화려한 생활을 없앴다. 그랬더니 남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 달, 밭, 이웃, 돼지고기.
옛사람들은 이 과정을 철망(黜妄)이라고 했다.
철(黜)은 물리친다는 뜻이고, 망(妄)은 허황된 생각이다. 철망은 욕심을 줄이라는 뜻이 아니다. 진짜가 아닌 것을 알아보고 치워버리라는 뜻이다.
내가 현재 가진것, 내 현재 모습을 그냥 받아드리는 것
도덕경 46장에 이런 말이 있다.
화(禍)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큰 게 없고, 허물은 갖고 싶은 것이 끝없는 데서 생긴다. 그러므로 족함을 아는 족함이, 늘 넉넉하다.
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 常足矣.
여기서 핵심은 "족함을 아는 족함"이라는 이상한 표현이다.
만족하라는 게 아니다. 만족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 앎 자체로 이미 넉넉하다는 뜻이다. 가진 게 많아서 만족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가 내 것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편안하다는 이야기다.
중년 이후, 행복해지려면 뭔가를 더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돈을 더 벌어야, 직급이 올라야, 아이가 잘 돼야, 건강을 되찾아야.
그런데 실제로 행복한 중년은 대부분 반대 방향으로 갔다.
밥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안 만나도 되는 사람을 안 만났다. 비교할 필요 없는 것을 비교하지 않았다. 잠을 잘 잤다.
이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해보면 안다. 안 만나도 되는 사람을 구분하는 데만 십 년이 걸리고, 비교를 멈추는 데는 더 오래 걸린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의 숙제다.
철망은 포기가 아니다.
포기는 원하는 게 있는데 못 가지는 것이고, 철망은 원하는 게 진짜 내 것인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그리고 원하는 이유도 따져 보는 거다. 그게 불안에서 오는 것인지? 체면에서 오는 것인지? 남 눈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인지? 따져보면 대부분은 내 것이 아니다. 남이 가진 걸 보고 갖고 싶어진 것이거나, 예전의 내가 원했던 것이거나, 사회가 원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걸 치우면 놀랍도록 조용해진다.
소동파는 황주 이후에도 더 먼 곳으로 유배를 갔다. 광동, 해남도. 갈수록 멀어지고 갈수록 조건은 나빠졌다. 그런데 글은 갈수록 맑아졌고, 요리는 늘었고, 이웃은 많아졌다.
가진 것이 줄어드는데 사람은 넉넉해졌다.
이상한 산수다. 빼는데 늘어난다.
중년의 행복이 이 산수를 따르는 건지, 아니면 그냥 소동파가 특이한 사람이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지금 잠이 안 오는 밤에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들 중에서 진짜 내 것이 몇 개인지는 한번 세어볼 만하다.
♡ 좋아요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