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르는 사람이 더 자신 있을까
sean··읽음 19
살다 보면 한 번쯤 만난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도 자기가 다 아는 표정을 짓는 사람.
목소리는 크고, 어조는 단정적이고, 말은 길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말한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려 하면 요약할 게 없다. 정보가 아니라 자신감만 들어 있었던 거다.
반대쪽에는 조용한 사람이 있다. 아는 게 많은데 말이 적다. 물어보면 "글쎄, 그건 좀 더 봐야 해"라고 한다.
이 차이는 성격 차이가 아니다.
뇌 안에 있는 자 하나의 차이다.
그 자의 이름이 메타인지(metacognition)다.
메타인지는 '생각에 대한 생각'이다.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를 재는 능력이다.
이게 작동하는 사람은 자기 앎의 가장자리가 보인다. 그래서 넘어가면 안 되는 선이 어디인지를 안다. 말을 아끼는 게 아니라, 선 밖의 말이 위험하다는 걸 아는 거다.
이게 작동하지 않는 사람은 가장자리 자체가 안 보인다. 세 페이지를 읽었는데 책 한 권을 읽은 것 같고, 유튜브 열 분짜리를 봤는데 그 분야를 꿰뚫은 것 같다.
모르는 게 안 보이니까, 아는 게 전부인 줄 안다.
이런 사람들 쓰레드 사주 봐주는 사람들에게 엄청 많이 보인다.
자주 이야기하지만,
1999년 코넬대학교에서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가 실험 하나를 했다.
사람들에게 논리 추론, 문법, 유머 감각 테스트를 시키고, 시험을 마친 뒤 자기 점수를 예측하게 했다.
결과는 선명했다. 실력이 바닥권인 사람일수록 자기 점수를 높게 불렀고, 실력이 윗권인 사람일수록 자기 점수를 낮게 잡았다.
이걸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건 이유다. 못하는 사람이 뻔뻔해서가 아니다. 못하는 사람은 뭘 틀렸는지를 볼 능력 자체가 없었던 거다. 자기 답안지를 채점하는 빨간 펜이 없는 셈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더 흥미로운 게 나온다.
2002년 예일대학교의 리오넬 로젠블릿과 프랭크 카일이 실험을 설계했다.
사람들에게 물었다. "지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십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안다"고 답했다. 매일 쓰니까.
연구자들이 종이와 펜을 건넸다. "그럼 지퍼 안쪽의 물리적 구조를 그리고, 어떤 원리로 이빨이 맞물려서 닫히는지 써 주십시오."
펜을 든 사람들의 얼굴이 멈췄다. 선 하나 긋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걸 설명 깊이의 착각(Illusion of Explanatory Depth)이라고 한다.
매일 접하는 것을 우리는 '이해한다'고 착각한다. 사실은 '익숙한' 것뿐인데, 뇌가 익숙함과 이해를 같은 서랍에 넣어 버린다.
뉴스를 매일 보면 국제 정세를 안다고 느끼고, 주식 앱을 매일 열면 시장을 읽는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래서 왜 그런 건데?"라고 한 꺼풀만 벗기면 말이 멈추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익숙함은 이해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림자를 붙잡고 원본이라고 우기는 게 이 착각의 정체다.
이 착각이 돈이 걸린 자리에서 작동하면 대가는 숫자로 돌아온다.
UC 버클리의 브래드 바버와 테런스 오딘이 미국의 한 대형 증권사에서 수만 개의 개인 투자자 계좌 데이터를 분석한 적이 있다. 2000년에 발표된 이 연구의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매매는 당신의 재산에 해롭다(Trading Is Hazardous to Your Wealth)."
결과는 이랬다. 가장 자주 사고팔고, 가장 바쁘게 포지션을 바꾼 투자자들이 가장 낮은 수익을 올렸다.
이 사람들은 시장을 읽는다고 믿었다. 매수 타이밍, 매도 타이밍, 종목 선정까지 자기가 통제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실제로는 잦은 매매에서 발생하는 수수료와 세금이 수익을 갉아먹었고, 시장에 가만히 앉아 있던 사람보다도 못한 성적표를 받았다.
자신감이 넘치는 손은 멈추지 않고, 멈추지 않는 손은 수수료를 내고, 수수료를 낸 사람은 시장의 유동성 제공자가 된다.
시장은 자신감에 값을 매기지 않는다. 시장은 실제로 맞힌 사람에게만 돈을 준다.
그러면 이 함정에서 어떻게 나오나.
첫째, 자기 생각을 자기 손으로 뒤집어 보는 습관이다.
칼 포퍼(Karl Popper)의 반증주의(Falsificationism)라는 게 있다. 과학이 과학인 이유는 늘 맞아서가 아니라, 틀릴 수 있는 길을 열어 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과학이라고 소리치면서, 사실 미신적이다. 과학도 무조건 진리라고 믿으면 미신인 것이고, 현재 증명 안된것은 무조건 없다고 믿어도 미신인것이다.
보통 사람은 보통은 과학의 반대로 움직인다. 자기가 좋아하는 주식이 있으면 좋은 뉴스만 찾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단점만 골라 본다. 이걸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하는 것은 다 들어 봤을 것이다. 자기 믿음을 떠받치는 증거만 모으는 뇌의 습성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뉴스나 유튜브 알고리즘을 생각해보면, 본인이 얼마나 좁아질지 생각해봐야 한다.
반대로, 자기 생각이 틀렸다면 세상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먼저 그려 보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증거를 찾으러 간다.
자기를 한 번 뒤집을 때마다, 메타인지의 자가 한 눈금씩 정밀해진다.
둘째, 자기 판의 가장자리를 그려 두는 것이다.
워런 버핏이 능력권(Circle of Competence)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사람들은 이 말에서 '능력'에 눈이 간다. 능력을 키워서 원을 크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버핏이 강조한 건 '원'이 아니라 '가장자리'다. 원이 얼마나 큰지는 중요하지 않고, 선이 어디인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선 안에서는 자신 있게 치면 된다. 선 밖에서는 아무리 좋아 보여도 안 치는 거다.
어떤 돈은 내가 벌 수 없는 돈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 어떤 분야는 내가 판단할 수 없는 분야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
그게 자존심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진짜 바보짓은 자기가 모르는 판에 올라가서 아는 척을 하는 거다.
가장자리를 그려 두면 세상에 있는 구덩이 열 개 중 아홉 개는 알아서 피해진다.
셋째, 자기한테 좋은 말만 해 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발 나오는 것이다. 공감해주고, 니가 옳다고 해주는 사람들은 아주 위험하다.
애덤 그랜트(Adam Grant)가 도전 네트워크(Challenge Network)라는 개념을 썼다.
대부분의 사람 주변에는 지지 네트워크(Support Network)가 있다. 뭘 해도 응원하고, 뭘 올려도 좋아요를 누른다.
그 안에 오래 있으면 반향실(Echo Chamber)이 된다. 내가 하는 말이 벽에 부딪혀 돌아오는데, 그게 남의 동의인 줄 안다.
도전 네트워크는 반대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때로는 가치관까지 다르지만, 깊이 생각하는 힘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내 쪽으로 불러 들이는 거다.
그들의 반론을 듣고, 내 확신에 구멍이 뚫리는 경험을 허락하는 거다.
좋은 말은 기분을 올려 주지만 방향을 고쳐 주지는 않는다. 방향을 고쳐 주는 건 불편한 말이다.
이게 인성이 강한 사람들의 문제가 여기에 있긴 하다. 관살이 주는 피드백을 자기가 듣기 좋은 형태로 골라서 듣는다. 특히 편인이 그런 문제가 있다.
장자 추수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가을비에 물이 불어난 황하의 신 하백이 강물이 불어난 것을 보고 천하에 아름다운 것이 모두 자기에게 모였다고 기뻐했다.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이르렀는데, 바다를 보는 순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백이 고개를 돌려 바다의 신 북해약에게 말했다.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위태로웠을 것입니다. 큰 웃음거리가 될 뻔했습니다."
北海若曰 井蛙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북해약이 대답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하백의 실수는 물이 적어서가 아니었다. 바다를 본 적이 없어서였다. 본 적이 없으니, 자기 강이 전부인 줄 알았다.
가을비에 잠깐 불어난 물을 자기 실력으로 착각하는 것. 이게 메타인지가 없는 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버트런드 러셀이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세상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바보와 광신자는 늘 자기 확신에 차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의심으로 가득하다는 데 있다."
진짜 자신감은 "나는 다 안다"에서 나오지 않는다.
"모르는 게 있다, 그런데 찾아갈 수 있다, 그리고 틀리면 바꿀 수 있다." 이 문장이 입에서 나올 때 비로소 자신감의 뿌리가 땅에 닿는다.
자기가 모른다는 걸 인정하면 자존심에 흠집이 난다. 지금까지 확신했던 것들이 흔들리면 불안하다. 그래서 대부분은 인정하지 않는 쪽을 고른다. 그쪽이 편하니까.
그런데 편한 자리에서 자라는 건 자신감이 아니라 착각이다.
하백은 바다를 보고 나서야 자기 강의 크기를 알았다. 그 전까지 하백은 행복했다. 자기가 가장 크다고 믿었으니까.
그 행복의 이름이 뭔지는 각자 붙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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