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에 떨어진 기와 한 장
남조(南朝)의 제(齊)나라는 479년에 서서 502년에 문을 닫았다. 스물세 해짜리 왕조다.
그 짧은 나라에 장흔태(張欣泰)라는 관리가 있었다. 이 사람의 일생은 관상가의 말 두 마디와 기와 한 장으로 요약된다.
아버지 장흥세(張興世)는 송(宋)나라의 이름난 장수였다. 466년, 장강 위쪽으로 배를 몰고 올라가 반란군의 보급로를 끊어 싸움의 판을 뒤집은 사람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하나도 닮지 않았다.
열 살 남짓할 때 이부상서 저연(褚淵)이 그에게 물었다.
"장 도령은 활과 말을 얼마나 하는가?"
아이의 대답이 이랬다.
"성품이 겁이 많아 말이 무섭고, 활을 당길 힘도 없습니다."
장군 집안 아들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그는 예서(隸書) 쓰기를 좋아했고 제자백가와 역사책을 읽었다.
집안 내력 덕에 궁궐을 지키는 무관 자리를 받기는 했다. 그런데 근무를 서다 말고 소나무 아래에서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다. 이것이 제나라 무제(武帝)의 귀에 들어갔다.
무제는 크게 노해 그를 궁 밖으로 내쳤다. 며칠 뒤 화가 좀 풀리자 다시 불러 이렇게 말했다.
"무관 노릇이 싫다면, 맑은 자리를 주겠다."
황제가 손을 들었다. 장흔태는 문관이 되었다.
젊은 시절, 누군가 그의 상을 보고 말했다.
"삼공(三公)까지 오를 상이다. 다만 나이는 서른에서 그친다."
삼공은 신하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다. 그 위에는 황제밖에 없다.
서른이라는 숫자는 오늘의 감각으로 들으면 억울하다. 그러나 남북조의 난세에서 마흔을 넘기는 사람이 흔하지 않았다. 활도 못 당기는 장군 아들이 서른에 재상 반열에 오른다면, 그 시절 기준으로는 꽤 남는 장사였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관상가의 말이 두 갈래가 아니라 한 줄이라는 점이다.
높이 오른다. 그리고 일찍 끝난다.
귀(貴)와 수(壽)가 따로 노는 두 장부가 아니라, 한 장부 안에서 서로 당기고 있었다.
어느 날 지붕에서 기와가 떨어졌다. 하필 장흔태의 이마에 맞았다. 이마가 찢어졌고 흉이 남았다.
그는 다시 상을 보는 사람을 찾았다. 돌아온 말은 이랬다.
"이제 삼공의 상은 없다. 대신 수명이 늘었다. 방백(方伯) 정도는 된다."
방백은 한 지방을 통째로 맡는 큰 관리다. 오늘로 치면 도지사급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기와 한 장에 나라의 최고 자리에서 도지사로 내려앉았고, 그 값으로 수명을 더 받았다.
보험 약관으로 치면 해지 환급금이 후했다.
498년, 소보권(蕭寶卷)이 황제 자리에 올랐다. 훗날 동혼후(東昏侯)라는 이름으로 깎여 내려간 바로 그 사람이다.
밤새 놀고 낮에 자며, 측근인 여법진(茹法珍)과 매충아(梅蟲兒) 같은 이들에게 나라를 맡겼다. 원로대신들이 차례로 죽어 나갔다.
장흔태가 옹주자사(雍州刺史) 자리에 오른 것이 이 무렵이다. 옹주의 중심은 양양(襄陽)이다. 북위와 맞닿은 국경의 요충지이고, 한 지방의 군권과 행정을 쥐는 자리다.
관상가가 말한 방백, 바로 그 자리였다.
그리고 500년, 그는 몇몇 사람과 손을 잡고 거사를 일으켰다. 신정(新亭)에서 열린 자리에서 황제의 측근을 베었고, 한쪽에서는 건안왕 소보인(蕭寶寅)을 받들어 궁으로 들이려 했다.
일은 틀어졌다. 장흔태는 붙잡혀 목이 베였다.
그의 나이 마흔여섯이었다. 서른에서 끝난다던 사람이 열여섯 해를 더 살았다.
관상에서는 얼굴을 위아래 세 마디로 나눈다. 이마가 상정(上停), 눈썹에서 코끝까지가 중정(中停), 그 아래가 하정(下停)이다.
상정은 젊은 날의 운과 귀를 맡는다. 윗사람의 눈에 들고, 이름이 나고, 자리를 얻는 일이 모두 이마에서 읽힌다.
이마 한가운데를 위에서 아래로 훑으면 천중(天中), 천정(天庭), 사공(司空), 중정(中正), 인당(印堂)이 차례로 놓인다. 이 가운데 중정 언저리를 관록궁(官祿宮)이라 부른다. 벼슬과 녹의 자리다.
상법에서 흉터와 패임은 그것이 앉은 자리의 기운을 깎는다고 본다. 기와가 이마의 어느 지점을 찍었는지는 기록에 없다. 다만 이마라는 곳이 벼슬을 맡은 자리라는 것만으로도 관상가가 무엇을 읽었는지는 짐작이 간다.
그런데 관상가는 귀가 깎였다는 말에서 멈추지 않고, 수명이 늘었다고 덧붙였다.
이 대목이 이 이야기의 뼈다.
담을 수 있는 그릇보다 큰 귀가 들어오면, 그릇이 깨진다. 귀를 덜어내면 그릇이 버틴다.
명리로 옮기면 칠살(七殺)이 몸보다 무거운 사주와 닮았다. 살중신경(殺重身輕)이라 한다. 이런 판은 자리가 높이 올라가기는 하지만, 그 무게가 몸을 친다. 칠살을 조금 덜어주면 오르는 높이는 낮아지되 몸은 오래 간다.
기와 한 장이 한 일이 꼭 그 덜어내기였다.
장흔태의 일생을 다르게 읽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의 상에는 꼭대기에 닿는 순간 판을 뒤엎는 기운이 들어 있었다는 읽기다. 방백에 오르자 그는 칼을 뽑았다. 그렇다면 서른에 삼공에 올랐을 때 그 칼끝이 어디를 향했을지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기와는 그가 꼭대기에 닿는 시간을 늦췄고, 꼭대기의 높이를 한 칸 낮췄다. 칼은 결국 같은 곳에 떨어졌지만, 열여섯 해 뒤였다.
주역 건괘(乾卦)의 맨 윗줄에 이런 말이 있다.
亢龍有悔
너무 높이 올라간 용은 뉘우칠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장흔태는 끝내 그 꼭대기에 오르지 못했고, 한 칸 아래에서 같은 일을 겪었다.
그 기와를 떨어뜨린 것이 바람이었는지, 낡은 지붕이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