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티는 얼굴에 있지 않다, 사람들이 당신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스무 살의 얼굴은 부모가 준 것이다.
서른다섯이 넘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자기가 고른 것들이 얼굴에 쌓이기 시작한다. 늦게까지 안 자고, 속으로 남을 원망하고, 급하게 굴고, 약속을 어기고, 싼 것만 찾아다닌 시간이 눈매와 입가에 조금씩 얹힌다.
반대쪽도 마찬가지다. 자기를 다스리고, 말을 지키고, 선을 알고, 책임을 지는 사람에게도 시간이 다른 모양을 만들어준다.
관상(觀相)에서 귀상(貴相)을 볼 때 흔히들 이목구비부터 뜯어본다. 그런데 귀상은 눈코입보다 먼저 나타나는 자리가 있다. 남들이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당신을 믿으려 하는가. 가까이 오려 하는가. 중요한 일을 맡기려 하는가.
이 세 가지가 이미 답을 절반쯤 말해준다.
순자는 이렇게 말했다.
相形不如相心,論心不如論德
생김새를 보는 것은 마음을 보는 것만 못하고, 마음을 논하는 것은 그 사람의 덕을 논하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관상을 부정한 말이 아니라, 관상이 끝내 무엇을 비추고 있는지를 짚은 말이다.
한 사람의 후반전에 귀기(貴氣)가 있느냐 없느냐를 볼 때,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부터 보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런 것들은 첫 만남을 열어주기는 한다. 다만 오래 붙어 있는 관계를 버텨내지는 못한다.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몇 가지 사소한 장면뿐이다. 저 사람 말이 남을 베는가. 하겠다고 한 일을 끝내 알려주는가. 이득이 생겼을 때 손이 먼저 나가는가. 곤란한 일이 터졌을 때 남을 앞으로 미는가.
옛 상서에 이런 말이 있다.
有心無相,相逐心生;有相無心,相隨心滅
마음은 있는데 상이 아직 안 갖춰졌다면 상이 마음을 따라 생겨나고, 상은 그럴듯한데 마음이 없다면 그 상은 마음을 따라 흩어진다는 뜻이다. 귀상은 태어날 때 다 정해져 얼굴에 박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 흔적은 어디에 남는가. 크게 다섯 자리다.
첫 번째 흔적은 말에 여지가 있는 것이다.
말에 여지가 있는 사람은 모든 대화를 승패로 끌고 가지 않는다.
병원에 가서 절차를 물을 때, 이런 사람은 진료 기록과 신분증과 검사지를 먼저 챙겨놓고 상황을 정리해서 말한다. 관리실에 누수를 알릴 때는 언제부터인지, 어디가 얼마나 상했는지, 누가 와서 봐야 하는지를 짚어서 전한다.
친척이 자기 아는 사람을 통해 뭔가 알아봐 줄 때는 재촉하지 않는다. 몰아붙이지 않는다. 상대의 호의를 자기 전용 통로로 여기지 않는다.
예기(禮記) 표기 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君子不失足於人,不失色於人,不失口於人
군자는 남 앞에서 처신을 잃지 않고, 낯빛을 잃지 않고, 말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상으로 옮기면 세 가지다. 함부로 얼굴을 바꾸지 않고, 함부로 약속하지 않고, 남의 곤란한 사정을 함부로 옮기지 않는다.
입에 여지를 남겨두면 관계에도 돌아올 길이 남는다. 말로 이겨놓고 사람을 잃는 계산은, 해보면 알겠지만 남는 장사가 아니다.
두 번째 흔적은 얼굴에 원망이 적은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얼굴은 이목구비가 아니다. 일이 터진 뒤에 그 사람이 주변에 풍기는 기색(氣色)이다.
집안 어른이 갑자기 입원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탓만 한다. 누가 미리 못 알아챘고, 누가 일을 이 모양으로 처리했고, 누구 때문에 일이 커졌다고. 도와주려던 사람도 그 소리를 오래 듣고 있으면 기운이 빠진다.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도 급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먼저 일을 쪼갠다. 누가 접수하고, 누가 검사에 따라 들어가고, 누가 집에 가서 서류를 챙기고, 누가 의사에게 다음 일정을 확인할지를 정한다.
감정이 사방으로 번지지 않으니 일이 앞으로 굴러간다.
사람이 복을 가장 크게 깎아먹는 자리는 고생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고생의 쓴맛을 주변 사람 전부에게 나눠 먹인다는 데 있다.
배우자가 그 사람 입 열기를 겁내고, 아이가 그 사람 퇴근을 겁내고, 친척이 부탁 받기를 겁내고, 친구가 하소연 듣기를 겁낸다. 원망이 쌓이면 사람들이 조용히 한 발씩 물러선다.
귀기를 기르는 첫 단추는 내 감정의 비용을 남에게 반복해서 청구하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흔적은 일에 마무리가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을 믿어도 되는지는 그가 말을 얼마나 근사하게 하느냐로 정해지지 않는다. 작은 일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맺을 줄 아느냐로 정해진다.
자료를 가져다주기로 했으면 시간과 장소와 내용을 분명히 말한다. 뭔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면, 알아본 뒤에 결과 한 줄이라도 돌려준다. 못 하게 됐으면 어디서 막혔는지, 다음에 어떻게 할 건지를 알려준다.
살면서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를 보면 상당수가 여기서 무너진다.
빌려간 물건을 안 돌려준다. 연락을 받고 답을 안 한다. 도와준다고 해놓고 소식이 없다. 일정이 바뀌었는데 미리 말하지 않는다.
한두 번은 다들 넘어가 준다. 횟수가 쌓이면 사람들은 속으로 그 사람의 순번을 다시 매긴다.
귀상은 착하다고 외쳐서 생기지 않는다. 작은 일 하나하나가 쌓여서 저 사람은 믿고 맡겨도 된다는 확인을 만들어낼 때 생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더 중요한 자리와 더 긴 신뢰가 붙는 것은 그다음 순서다.
네 번째 흔적은 이득 앞에서 분수를 아는 것이다.
사람 됨됨이가 가장 빨리 드러나는 자리가 밥자리에서 누가 기회를 소개해줄 때다.
어떤 사람은 자기 몫부터 묻는다. 소개해준 사람을 건너뛰고 더 윗선에 붙으려 한다. 한 번의 호의를 평생 쓸 수 있는 통로로 착각한다.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관계가 벌써 불편해진다.
일을 아는 사람은 순서가 다르다.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느 수준까지 책임지고 넘길 수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다. 소개해준 사람이 자기 체면을 어느 정도 걸었는지 헤아린다. 상대편이 무엇을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는지를 살핀다.
이렇게 하면 이득이 그 사람을 지나갈 때 소개한 쪽은 낯이 서고, 자원을 쥔 쪽은 안심하고, 본인도 길을 좁히지 않는다.
능력은 입장권이고 분수는 재입장권이다. 다음에도 당신을 부를지 말지는 능력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의 태도가 정한다.
다섯 번째 흔적은 곤란 앞에서 책임을 지려는 것이다.
집안일이 꼬였을 때, 함께 하던 일이 늦어졌을 때, 친척이 부탁한 건이 잘못됐을 때. 사람이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이다.
책임을 미루는 데 익숙한 사람은 입을 열자마자 원인을 찾는다. 누가 제대로 안 알려줬고, 누가 미리 말 안 했고, 처음에는 다들 좋다고 했었고. 압력은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일은 그대로다.
책임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처리할 몫부터 손에 쥔다. 사과할 일이면 사과하고, 메울 일이면 메우고, 시간을 들여야 할 일이면 시간을 낸다.
결과가 썩 좋지 않게 끝나도 주변 사람들은 안다. 저 사람은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을.
이 기색은 값이 나간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이 터져도 나 혼자 뒤집어쓰지는 않겠구나 하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기회가 그 사람 곁에 오래 머무는 이유도 여기 있다. 중요한 일일수록 통제를 잃는 것이 가장 무섭고, 책임지는 사람은 그 두려움을 줄여준다.
이 다섯을 놓고 보면 결국 같은 이야기다.
말에 여지가 있으면 원한이 덜 맺힌다. 낯빛에 원망이 적으면 식구가 덜 닳는다. 일에 마무리가 있으면 신뢰가 쌓인다. 이득 앞에서 분수를 지키면 다음 기회가 다시 온다. 곤란 앞에서 책임을 지면 사람들이 더 중요한 자리에 그를 놓는다.
다섯 가지 중에 타고나야만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전부 오늘 하는 말, 오늘 보내는 답장, 오늘 처리하는 일, 오늘 나누는 몫, 오늘 지는 책임 안에 들어 있다.
태청신감(太淸神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德在形先,形居德後
덕이 형상보다 앞에 있고 형상은 덕의 뒤에 온다는 뜻이다. 상법(相法)의 오래된 책이 스스로 이렇게 적어둔 것이다.
거울은 이목구비까지만 비춘다. 그 사람이 지난 십 년 동안 무엇을 갚지 않았는지는 안 비친다. 그건 주변 사람들 머릿속에 따로 적혀 있다.
그러니 내게 귀인의 명이 있느냐를 먼저 묻는 것은 순서가 조금 뒤바뀐 셈이다.
오늘 남을 베는 말 한마디를 줄일 수 있는가. 알려주지 않고 넘어간 약속 하나를 줄일 수 있는가. 이득 앞에서 손이 먼저 나가는 순간을 한 번 줄일 수 있는가. 곤란 앞에서 남을 앞세우는 일을 한 번 줄일 수 있는가.
귀상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사람들이 당신 쪽으로 다가오는지 물러서는지는, 당신이 아니라 그들이 정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