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는 컸는데 턱이 없었다
1980년대 이야기다. 성이 용씨인 군관이 있었다.
얼굴이 한눈에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코가 대단히 컸다. 그런데 인중(人中)이 짧고 턱이 짧은 데다 뒤로 물러나 있었다.
관상(觀相)에서 코는 얼굴 한가운데 앉아 자기 자신을 대표하는 자리다. 코가 크고 살이 붙어 있으면 자아가 뚜렷하고, 일을 밀고 나가는 힘이 있다. 남이 시켜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판을 짜는 쪽이다.
물론 코가 큰 사람은 대개 자부심도 같이 크다. 이게 밖으로 새면 거만이 되고, 안으로 잠기면 자기 채찍이 된다.
용씨는 안으로 잠기는 쪽이었다. 자부심은 있는데 그걸 남에게 휘두르지 않았다. 밖으로는 겸손했고 안으로는 자기를 몰아붙였다. 맡은 일은 지독하게 붙들었고 책임을 회피하는 법이 없었다. 상급자들이 그를 아꼈고, 외국 군대와 교류하는 자리에까지 내보냈다.
여기까지 보면 코 하나로 사람 팔자 다 푼 것 같지만, 얼굴은 그렇게 만만하게 굴지 않는다.
어느 상사(相師)가 그의 얼굴을 보고 마흔여덟에 별을 단다고 했다.
왜 하필 마흔여덟인가. 관상에는 나이마다 얼굴의 어느 자리를 지나가는지 표시해 둔 유년운기(流年運氣) 부위도라는 것이 있다. 이마가 초년, 눈과 코 언저리가 중년, 인중 아래가 말년이다.
코가 담당하는 구간이 대략 마흔하나에서 쉰까지인데, 그중 코끝인 준두(準頭)가 마흔여덟이다. 콧방울인 난대정위(蘭臺廷尉)가 마흔아홉과 쉰으로 이어진다.
코가 큰 사람에게 마흔여덟은 자기 인생의 가장 좋은 자리를 밟고 지나가는 해다. 그러니 그 예측은 무리한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용씨는 마흔여섯에 스스로 군복을 벗었다.
전역을 신청하고 학교로 가서 교편을 잡았다. 코운의 정점을 두 해 앞두고 판을 접은 것이다.
다 차려진 밥상을 두고 왜 일어섰는가.
여기서부터가 인중과 턱의 몫이다.
인중은 코와 윗입술 사이의 고랑이다. 유년으로는 쉰한 살 자리이고, 관상에서는 사람이 얼마나 길게 참고 버티는지를 보는 곳이다. 인중이 길고 또렷하면 멀리 보고 오래 견딘다. 짧으면 눈앞의 이익 쪽으로 시선이 자꾸 내려앉는다.
인중이 짧은 사람의 특징은 능력 부족이 아니라 인내 부족이다. 지금 손에 잡히는 것을 놓치는 걸 못 견딘다. 삼 년 뒤에 두 배로 돌아올 자리보다, 오늘 확실한 한 조각을 택한다.
턱은 지각(地閣)이라 부른다. 얼굴의 맨 아랫자리이고, 말년의 터전이자 아랫사람을 거느리는 자리이며, 무엇보다 일을 끝까지 밀고 가는 뒷심을 본다.
턱이 짧고 뒤로 물러난 사람은 시작은 좋은데 마무리가 흐려진다. 어려운 대목이 나오면 슬쩍 발을 뺄 궁리부터 한다. 용두사미라는 말이 얼굴에 그대로 붙어 있는 셈이다.
코는 사장이고 턱은 총무다. 사장 혼자 잘난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다들 짐작하실 것이다.
얼굴을 위아래 세 칸으로 나눠 보는 삼정(三停)으로 정리하면 더 분명해진다.
용씨는 중정이 대단히 강했다. 코가 크고 야무지니 마흔 줄에 힘이 몰린다. 반면 하정, 곧 인중과 입과 턱이 함께 얇았다. 중년의 힘을 받아 말년까지 실어 나를 축이 없었다.
이런 얼굴은 성과가 없는 얼굴이 아니다. 성과가 정점 직전에서 끊기는 얼굴이다. 여덟 부까지 쌓아 올린 흙더미에 마지막 한 삽을 못 얹는 자리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그의 머릿속에서 무슨 계산이 돌았는지는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진급 심사를 앞둔 밤이 다가올수록 압박이 커졌을 것이다. 뒷말이 들릴까 겁이 나고, 떨어졌을 때 남을 눈길이 먼저 떠올랐을 것이다.
영관급이 저렇게 많은데 별을 다는 사람은 백에 하나다. 어차피 걸릴 것이다. 백에 하나에 인생을 걸 바에는, 시작되기 전에 내가 먼저 물러나는 편이 낫다. 지금 나가면 최소한 자리 하나는 확보한다. 양쪽 다 놓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말이 되는 계산이다. 인중이 짧은 사람의 셈법은 언제나 말이 된다. 그게 이 자리의 무서운 점이다. 게으르거나 어리석어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대단히 합리적인 얼굴을 하고 그만둔다.
다만 그가 놓친 것이 하나 있다. 그의 운세로 보면 그 자리는 백에 하나짜리 도박이 아니라 이미 거의 손에 들어와 있는 자리였다.
여기서 큰 코의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자부심이 큰 사람은 실패를 잘 못 견딘다. 남들 앞에서 떨어지는 그림을 견디느니, 스스로 걸어 나가는 그림을 고른다. 후자는 최소한 자기가 정한 일이니까.
턱이 받쳐주는 사람에게는 이 자부심이 끝까지 버티는 힘으로 간다. 턱이 물러난 사람에게는 같은 자부심이 도망칠 명분을 만들어 준다.
같은 코인데 결과가 갈리는 지점이 여기다. 그래서 관상은 한 자리만 떼어놓고 잘생겼다 못생겼다 말하지 않는다. 코 하나를 두고도 아래가 받치느냐 아니냐를 먼저 본다.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그의 선택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는 안정된 직장으로 옮겼고 학교에서 무탈하게 지냈다. 겉으로 보면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
얼굴은 그가 별을 달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만 말해주는 게 아니다. 그가 그 밤에 어떤 쪽으로 손을 뻗을 사람인지를 먼저 말해준다. 그리고 사람은 대개 자기 얼굴대로 손을 뻗는다.
거울 앞에서 턱을 만져보는 것보다 빠른 방법이 하나 있다. 지난 십 년 동안 거의 다 됐는데 스스로 접은 일이 몇 개였는지 세어보는 것이다.
그 숫자는 이미 나와 있고, 아마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