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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섬서를 피해 다닌 사람

영남(嶺南)은 오령산맥 남쪽 땅이다. 지금의 광동과 광서.

당나라와 송나라 때 이곳은 변방이었다. 중앙에서 밀려난 관리가 가는 곳, 유배지 목록에 단골로 오르는 곳. 이름난 인물이 나기 어려운 땅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이름을 남겼다. 당나라의 장구령(張九齡), 송나라의 여정(余靖). 둘 다 소주(韶州) 곡강 사람이다. 지금의 광동 소관(韶關). 몇백 년 차이 나는 한동네 선후배다.

장구령은 당 현종의 재상이었으니 지금도 이름이 남아 있다. 여정은 사정이 다르다. 오늘날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송나라 때 그 이름은 가볍지 않았다.

1036년, 범중엄(范仲淹)이 재상과 부딪쳐 지방으로 쫓겨났다. 여정은 그를 편들다 함께 쫓겨났다. 윤수(尹洙)와 구양수(歐陽修)도 그랬다.

이때 채양(蔡襄)이 시 한 편을 써서 이 네 사람을 사현(四賢), 네 명의 어진 사람이라 불렀다. 범중엄, 구양수와 한 줄에 선 이름이다. 그 무게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당에서 꾼 꿈

젊은 여정이 소주를 떠나 수도 개봉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일이다.

같은 고향 유(劉)씨 성 선비와 함께 길을 나섰다. 유씨는 이미 네 번 떨어진 사람이었다.

여정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쪽 변방 출신이 중원 선비들과 글로 겨뤄야 한다. 저쪽에서 보면 자기는 남만(南蠻), 남쪽 오랑캐였다.

가는 길에 영험하다는 사당이 하나 있었다. 둘은 거기서 하룻밤 묵으며 꿈을 청하기로 했다. 신 앞에서 잠을 자고 꿈으로 앞날을 묻는 풍습, 기몽(祈夢)이다.

그날 밤 여정의 꿈에 신이 나타났다.

"너의 녹(祿)은 많다. 창고 몇 채를 채울 만하다. 벼슬은 상서(尚書)에 이르고, 진정(秦亭)에서 죽는다. 유씨는 궁하다. 그의 녹은 여섯 말뿐이다."

창고 몇 채. 그리고 쌀 여섯 말.


녹과 명

이 꿈이 알려준 건 딱 두 가지다.

평생 얼마를 먹느냐. 어디서 끝나느냐.

명리학의 옛 이름이 **녹명(祿命)**이다. 당송 시절, 태어난 해와 달과 날로 사람의 앞날을 보는 술수를 녹명술이라 불렀다. 녹은 벼슬과 봉급, 먹고사는 몫이다. 명은 목숨의 길이다.

후한의 왕충(王充)은 『논형(論衡)』에 아예 「명록(命祿)」이라는 편을 따로 두었다.

凡人遇偶及遭累害,皆由命也。有死生壽夭之命,亦有貴賤貧富之命

사람이 좋은 때를 만나는 것도, 거듭 화를 입는 것도 다 명에 달렸다. 오래 살고 일찍 죽는 명이 있고, 귀하고 천하고 부유하고 가난한 명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녹이라는 글자는 지금 명리에도 그대로 살아 있다.

일간(日干)이 지지에서 제 기운을 온전히 얻는 자리를 **녹(祿)**이라 한다. 갑목(甲木)이면 인(寅), 병화(丙火)면 사(巳)다. 이 녹이 월지(月支)에 앉아 있으면 **건록(建祿)**이라 부른다.

정관(正官)을 관록(官祿)의 별로, 식신(食神)을 식록(食祿)의 별로 보는 것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정관은 조정이 내려주는 녹이고, 식신은 제 손으로 지어 먹는 녹이다.

옛 사람들은 녹을 그릇의 크기로 봤다. 한평생 담을 양이 정해져 있고, 다 채우면 끝난다.

창고 몇 채와 여섯 말. 신은 두 사람의 그릇 크기를 일러준 셈이다.


진을 피하는 법

여정은 1024년 진사에 급제했다.

벼슬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범중엄 편을 들다 쫓겨났고,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여러 번 했다. 그래도 끝내 공부상서(工部尚書)에 올랐다.

상서가 맞았다. 그렇다면 진정도 맞을 것이다.

진(秦)은 섬서(陝西)의 옛 이름이다. 진시황의 그 진. 여정의 결론은 간단했다. 섬서에 안 가면 된다.

그는 평생 이 원칙을 지켰다.

구분여정의 선택
지방관 자리강서와 광동 언저리에서만 구함
사신 파견북동쪽 거란(契丹)의 요나라는 감
절대 안 간 곳서북쪽 서하(西夏), 가려면 섬서를 지나야 하므로

그가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다.

"관중(關中) 일로 보내신다면, 결코 가지 못합니다."

관중은 섬서의 한가운데 평야다. 무슨 일을 맡겨도 좋지만 그쪽만은 안 된다는 뜻이다.

거란에는 세 번이나 다녀왔다. 거란 말까지 배워서, 연회 자리에서 거란 말로 시를 지어 읊었다. 이 일로 조정에서 탄핵을 받아 좌천됐다.

섬서만 피하면 될 줄 알았는데, 사고는 엉뚱한 방향에서 났다.


진회하의 정자

1063년, 영종(英宗)이 즉위했다. 새 황제는 여정을 크게 쓰려 했다. 광주에 있던 그를 수도로 불러올렸다.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 오강(烏江)을 지날 때 풍한(風寒)이 들었다. 가까운 큰 고을 금릉(金陵)에 들러 의원을 찾기로 했다. 지금의 남경이다.

배는 물길을 타고 금릉으로 들어갔다. 금릉에는 이름난 물길이 하나 있다. 진회하(秦淮河).

여정이 배 위에서 강가를 올려다봤다. 정자가 하나 서 있었고, 편액에 큰 글씨가 걸려 있었다.

진회정(秦淮亭).

여정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진, 그리고 정. 섬서 땅은 평생 한 발도 밟지 않았다. 그 두 글자는 섬서가 아닌 곳에 걸려 있었다.

며칠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1064년, 예순다섯이었다.


여섯 말

유씨 이야기가 남았다.

그는 그 뒤로도 과거에 번번이 떨어졌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현위(縣尉) 자리 하나를 얻었다. 고을의 도둑 잡는 일을 맡는 말단 벼슬이다.

부임한 지 열흘 만에 병이 나서 죽었다.

말단 관리가 열흘 동안 받는 녹. 이 이야기를 전한 사람들은 그게 대략 여섯 말쯤이었을 거라고 했다.


여정은 꿈의 내용을 알았다. 그래서 평생 지도를 펴 놓고 방향을 골랐다.

유씨가 그 꿈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네 번 떨어지고 다섯 번째 시험을 보러 갔고, 그 뒤로도 몇 번을 더 봤다.

알았던 사람은 피해 다녔다. 몰랐던 사람은 계속 문을 두드렸다.

둘 다 꿈에서 들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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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答 1
  • 익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