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알고 피하려고 했지만,
원나라 말기에 백안(伯顏)이라는 권신이 있었다.
이름만 들으면 초대 공신 백안과 헷갈리는데, 다른 사람이다. 초대 백안은 쿠빌라이 시절 남송을 멸망시킨 장수였고, 이 백안은 원나라 말기에 세도를 부린 재상이다. 성도 다르다. 다만 둘 다 몽골 이름이 같을 뿐이다.
이 백안에게는 특이한 식객이 하나 있었다. 서역에서 온 여자 무당이었는데, 이름이 비비(畀畀)라고 했다. 백안이 그녀에게 자기 운명을 물었다. 내 귀결(내 최후)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비비가 대답했다.
"남인(南人)의 손에 죽을 것이다."
남인이라는 것은 원나라의 신분 제도에서 가장 아래 칸에 놓인 사람들이다. 옛 남송의 백성, 그러니까 정복당한 한족(漢族)을 가리킨다.
권력의 꼭대기에 앉은 사람에게 이것은 불쾌한 예언이었다. 그리고 백안은 불쾌한 예언을 그냥 듣고 넘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즉시 일련의 정책을 만들었다. 한족에게서 철기를 거두었다. 민간에서 열 집이 칼 하나를 나눠 쓴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왔다. 몽골인이나 색목인이 한족을 때리면 한족은 맞아야 했다. 손을 들어 막는 것조차 죄가 되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장(張), 왕(王), 유(劉), 이(李), 조(趙), 이 다섯 성씨의 한족을 모조리 죽이자는 상소까지 올렸다. 중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 다섯을 골라 잡은 것이니, 사실상 한족 전체를 겨냥한 셈이었다.
예언 하나를 피하려고 수천만 명의 적을 만든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가 한번 꺾인다. 원나라 궁정의 사정을 조금 알아야 한다.
원 명종(明宗)이라는 황제가 있었다. 이 사람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동생에게 독살당했다. 동생이 바로 원 문종(文宗)이다. 형을 죽이고 황위에 올랐으니 편할 리가 없었다.
문종은 3년 만에 병으로 죽었다. 임종 자리에서 양심이 뒤늦게 올라왔는지, 자기 아들이 아닌 형의 아들에게 황위를 돌려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조카가 바로 타환첩목이(妥懽帖睦爾), 훗날의 원 순제(順帝)다.
그런데 이 타환첩목이에게는 궁정에서도 아는 사람이 드문 내력이 있었다.
이야기는 원나라 건국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송이 멸망할 때 마지막 황제 조현(趙顯)은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였다. 사태후(謝太后)와 함께 항복했고, 몽골 조정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다가 타협안을 냈다. 죽이지는 않겠으나 살려두기도 곤란하니, 티베트로 보내 승려가 되게 한 것이다.
조현은 그렇게 장성하여 티베트 불교의 고승이 되었다. 나중에는 감숙성 장액(張掖)으로 옮겨 살았다. 세월이 수십 년 흐르고 원나라의 국운이 안정되면서 그의 존재는 더 이상 위협이 아니었다. 어느 몽골 왕족이 그를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끝에 여인 하나를 보내 시중들게 했다. 조현이 수행한 종파는 결혼이 허용되는 쪽이었다.
몇 해가 더 흘렀다. 당시 아직 주왕(周王)이었던 훗날의 원 명종이 서북 변방을 순행하다 장액에 이르렀다. 어느 절 위에 오색 용문(龍文)의 기운이 하늘로 치솟는 것이 보여 찾아가 보니, 그곳이 바로 조현이 머무는 곳이었다.
주왕이 물었다. 혹시 황제 시절에 감추어 둔 보물이라도 있느냐고. 조현은 없다고 했다. 거듭 물으니 그제야 말했다. 오늘 아침에 아들이 하나 태어났을 뿐, 달리 특별한 것은 없다고.
주왕은 그 아이의 탄생에 이런 기이한 현상이 따르는 것을 보고 범상치 않게 여겨, 아이를 데려가 자기 아들로 키웠다. 이름을 타환첩목이라고 지었다.
이후 주왕은 황제가 되었으나, 아이의 출생을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즉위 석 달 만에 동생에게 독살당했으니, 그 비밀을 전할 겨를도 없었다.
동생 문종은 형을 죽이고 3년을 재위한 뒤 죽으면서, 양심의 가책에 이 조카에게 황위를 돌려주라 했다.
여기서 핵심이 드러난다. 문종이 돌려준 황위를 받은 조카, 원 순제 타환첩목이는 원 명종의 친아들이 아니었다. 그는 남송 마지막 황제 조현의 친아들이었다.
한족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 몽골 제국의 옥좌에 앉은 것이다.
물론 중간에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시 또 다른 권신인 재상 연첩목이(燕帖木兒)가 반대했다. 명종의 다른 아들을 세우려 했으나, 그 아이는 한 달 만에 죽었다. 문종의 아들을 세우자고도 했으나, 태황태후가 막았다. 이 자리는 타환첩목이만이 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타환첩목이가 황위에 올랐다. 원 순제다.
순제가 즉위한 뒤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전조의 권신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백안은 그 목록의 맨 위에 있었다. 민심을 적으로 만든 사람이 살아 있으면 조정이 위태로웠다.
순제는 백안의 조카 탈탈(脫脫)과 손을 잡고 백안을 축출했다. 유배지는 남쪽이었다. 강서성 남창(南昌)이었다.
백안은 남창에서 죽었다. 스스로 독을 마셨다는 기록도 있고, 그가 그토록 깔보고 핍박했던 남쪽 사람들이 기회를 잡아 독을 먹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기이한 고리가 하나 보인다.
비비의 예언은 이랬다. 남인의 손에 죽는다.
백안은 그 예언을 피하려고 한족을 억눌렀다. 칼을 빼앗고, 때려도 맞으라 하고, 성씨를 들어 죽이자고까지 했다.
그런데 결국 그를 남쪽으로 보낸 사람은 원 순제였다. 그리고 원 순제는 남송 마지막 황제 조현의 친아들이었다. 한족의 피가 흐르는 황제였다.
벼락 하나가 원나라 초에서 말까지, 거의 백 년을 돌고 돌아서 정확히 그의 머리 위에 떨어진 것이다.
백안이 한족을 더 가혹하게 다루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민심을 그만큼 잃지 않았을 테고, 순제가 즉위한 뒤에도 굳이 첫 번째로 쳐낼 이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피하려고 발버둥친 것이 오히려 예언의 경로를 만들었다. 예언이 맞은 것이 아니라, 예언을 피하려는 행동이 예언을 완성시킨 셈이다.
운명을 알았으면서도 운명을 바꾸지 못한 것이 아니다. 운명을 알았기 때문에 바꾸지 못한 것이다.
그게 같은 말인지 다른 말인지는, 읽는 사람이 판단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