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를 쏜 제방 관리관은 왜 무죄였나
황하는 예로부터 중국의 근심이라 불렸다.
제방 한 곳이 터지면 하룻밤 사이에 수백 리가 물바다가 된다. 그래서 역대 왕조는 황하 다스리는 일을 나라의 큰일로 여겼다.
송나라도 다르지 않았다. 신종 희령 10년(1077) 가을, 전주 조촌에서 황하가 터졌다. 물길이 남쪽으로 쏟아져 마흔다섯 개 군현이 잠겼다. 서주를 맡고 있던 소동파는 성벽 위에 초막을 짓고 들어앉아 직접 둑을 지켰다. 송사 하거지와 소동파 본인의 글에 그대로 남아 있는 일이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그 무렵, 황하 제방 위에서 벌어진다.
송나라에는 황하 제방을 구간별로 나누어 맡기는 벼슬이 있었다. 이름은 감소.
여기서 소라는 것은 나뭇가지, 풀, 흙, 돌을 새끼줄로 엮어 쌓은 제방 덩어리를 말한다. 감소 한 사람이 십여 리 둑을 맡았고, 대나무, 목재, 풀 포대 같은 자재도 전부 그의 책임이었다.
쉽게 말해 둑이 터지면 가장 먼저 목이 달아나는 자리다.
신종 때, 대명부 원성현에서 이 벼슬을 하는 아무개가 있었다. 원성현은 대명부 관아가 자리한 고을이니, 황하 방비의 한복판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맡은 둑에 자꾸 구멍이 났다.
지켜보니 범인은 커다란 자라였다. 둑 밑에 살림을 차릴 작정인지, 틈만 나면 와서 흙을 파먹었다.
개미구멍 하나가 천 길 둑을 무너뜨린다는 옛말이 있다. 자라 구멍은 개미구멍보다 한참 크다.
제방 관리관 눈에 이건 자라가 아니라 불붙은 도화선이었다.
아무개는 쇠뇌를 준비해 두었다. 다음에 자라가 나타나자 한 발에 쏘아 죽였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초록 옷을 입고 머리를 천으로 칭칭 감싼 사내가 다가왔다. 목을 움츠린 자라 모습 그대로다.
"네가 감히 나를 죽였겠다. 내 너를 고발하겠다."
한 달쯤 지나 아무개 몸에 종기가 났다. 그리고 그 종기로 죽었다.
혼이 몸을 빠져나와 흔들흔들 떠 있는데, 관리 둘이 양팔을 잡았다.
"사람을 죽였으니 우리와 가서 대질해야겠다."
아무개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을 죽인 적은 없다. 죽인 거라곤 자라 한 마리뿐인데. 설마 그 일인가.'
아무래도 저승에서는 자라에게도 원고 자격이 있는 모양이었다.
백 리쯤 걸어 어느 성에 닿았다. 관리 둘은 먼저 보고하러 간다며 그 자리에서 기다리라 했다.
옆을 보니 화려한 누각이 서 있고, 현판에 조원지각이라 적혀 있었다. 아무개는 발길 닿는 대로 들어갔다.
안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알았다. 전임 재상 한기였다. 인종, 영종, 신종 세 임금을 섬긴 재상으로, 바로 지난해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아는 얼굴일 수밖에 없었다. 한기는 희령 연간에 몇 해 동안 대명부를 맡아 다스렸다. 원성현의 제방 관리라면 한기는 옛 상관의 상관이다.
자기도 이미 죽은 몸이니 죽은 사람을 봐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타향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아무개는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가 절했다.
한기는 그가 관리인 것을 알아보고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아무개는 자라를 쏜 일을 털어놓고 이렇게 덧붙였다.
"제 직분이 그 둑을 지키는 것입니다. 둑이 무너지면 저도 목이 달아납니다. 죽이기를 좋아해서 죽인 것이 아닙니다."
한기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이따 재판이 열리면 상청격대로 처리해 달라고만 말해라."
얼마 뒤 관리 둘이 돌아와 그를 관청으로 끌고 갔다. 과연 자라 건이었다.
아무개가 말했다.
"상청격을 찾아봐 주십시오."
대청 위에서 누군가 두툼한 책을 가져와 한참 뒤적이더니 읽었다.
"상청격에 이르기를, 세상에 이로움이 없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죽여도 갚지 않는다. 이 사람은 목숨으로 갚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아까 그 관리 둘에게 그를 다시 데리고 나가라 했다.
십여 리를 걸어가다 발을 헛디뎠는데, 눈을 떠 보니 자기 몸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며 놀라 자빠졌다. 아무개만 알고 있었다. 되살아난 것이 아니라, 저승에 한 바퀴 다녀온 것뿐이라는 사실을.
이 재판에는 짚어 둘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자라의 고발은 기각되지 않았다.
"겨우 자라 한 마리"라는 말은 저승에서 통하지 않았다. 고발이 접수되었고, 관리가 출동했고, 재판이 열렸다. 저승의 장부는 자라 목숨도 목숨으로 셈했다.
둘째, 아무개를 살린 것은 자라가 하찮다는 논리가 아니었다.
조문은 두 가지를 따진다. 세상에 이로움이 없는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가. 둑 밑을 파먹는 자라는 두 조건에 다 걸린다. 여기에 아무개가 한기 앞에서 내세운 것은 직분이었다. 재미로 쏜 것이 아니라 맡은 일을 하다 쏜 것이다.
같은 자라를 같은 쇠뇌로 쏘았더라도, 국 끓여 먹으려고 쏘았다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갔을지는 알 수 없다.
셋째, 조문 이름 하나가 목숨을 갈랐다.
아무개는 상청격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한기가 귀띔해 주지 않았다면 대청 위에서 "직분이었습니다"만 되풀이했을 것이다. 저승 법정에서도 법전 아는 선배는 있고 볼 일이다.
명리학에서 이름에 대놓고 죽일 살 자를 달고 있는 십신이 있다. 칠살(七殺)이다.
칠살은 일간을 극하면서 음양까지 같은 글자다. 비켜 치지 않고 정면으로 친다. 나를 누르는 힘, 위협, 압박, 들이닥치는 일이다. 제어 없이 일간을 치면 사고, 송사, 질병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옛 명리서는 칠살을 한 가지로만 보지 않았다. 연해자평 계열 문헌에 이런 말이 있다.
칠살유제화위권(七殺有制化爲權).
칠살에 제어가 있으면 바뀌어 권(權)이 된다는 뜻이다. 같은 칼이 강도 손에 있으면 흉기이고, 군사 손에 있으면 병권이다.
제방 이야기를 판 위에 올려 보면 이렇게 된다.
둑 밑을 파먹는 자라는 아무개에게 칠살이다. 둑이 무너지면 그의 목이 달아나니, 그를 정면으로 치는 힘이다. 이것을 쇠뇌 한 발로 눌렀다. 제 손으로 익힌 재주, 제 몫의 일로 칠살을 누르는 것, 이것이 식신제살(食神制殺)의 모양이다.
칠살이 제대로 제어된 사주가 흔히 가는 곳을 떠올려 보면 된다. 군인, 경찰, 외과의, 검사, 방역, 도축. 직업상 무언가를 베고, 잡고, 가두고, 죽여야 하는 자리다.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을 그 행위만 떼어 놓고 보면 섬뜩하다. 사람 배를 가르고, 사람을 가두고, 짐승을 잡는다. 그것이 직분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 칠살은 권이 되고, 울타리 밖으로 한 발만 나가도 같은 칼이 그냥 칼이 된다.
아무개가 저승에서 내민 것도 결국 그 울타리였다.
다만 칠살을 누르는 손이 너무 세면 제살태과(制殺太過)라 하여 도리어 탈이 난다. 누를 것이 없어진 손은 누를 것을 찾아다닌다. 해롭다고 판정하는 손과 쏘는 손이 같은 사람일 때 특히 그렇다.
자라 입장에서 보면 강가에 집을 지었을 뿐이다. 황하에 제방이 생기기 전부터 자라는 거기서 굴을 팠다.
세상에 이로움이 없다는 판정은 누가 내렸을까.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고 할 때, 그 사람은 누구의 편에서 센 사람일까.
상청격은 저승의 법전이라지만, 조문을 읽어 보면 어딘가 제방 관리관이 쓴 것 같은 냄새도 난다.
아무개는 무죄로 풀려났다. 그런데 그에게 종기는 왜 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