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복 이야기 — 시험 등수, 수명, 첨문 한 줄이 다 정해 놓았다
청나라 때 관제(關帝) 신앙이 크게 유행했다. 관우(關羽)를 모신 사당은 전국 어디에나 있었고, 과거 시험을 앞둔 서생들이 줄을 서서 첨(籤)을 뽑았다. 관제묘에서 쓰는 첨문(籤文)을 관제영첨(關帝靈籤)이라 한다. 대나무 막대기를 통에서 흔들어 하나 떨어뜨리면, 거기에 적힌 번호에 해당하는 시가 나온다. 그 시를 읽고 자기 일에 맞춰 풀어내는 것이다.
(이런 첨을 뽑는것은 유명한 묘[사당]에 많이 있는데, 민간에서 많이 사용하는 점의 방식, 통안에 여러게의 첨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뽑는것, 막대기인데, 거기에 글이나 뭐 길흉이 적혀 있음. 재미로도 많이 보지만, 의외로 엄청 적중율이 높은 경우가 있어서 또 많이 함)
관제영첨에는 풀기 쉬운 첨도 있고, 풀기 어려운 첨도 있다. 그중에서 예로부터 가장 어렵기로 소문난 것이 63번 첨이다.
이름은 "염파용조(廉頗用趙)", 전국시대 조나라의 노장 염파가 다시 기용되는 이야기를 빗댄 것이다. 시는 이렇다.
曩時征北且圖南 筋力雖衰尚一堪
欲識生前君大數 前三三與後三三
앞의 두 줄은 어렵지 않다. 예전에 북으로 남으로 싸우러 다녔고, 힘은 줄었으나 아직 한 번은 해볼 만하다. 염파가 늙어서도 한 끼에 밥 한 말, 고기 열 근을 먹었다는 이야기와 잘 맞는다.
문제는 마지막 줄이다.
전삼삼여후삼삼(前三三與後三三).
앞의 삼삼과 뒤의 삼삼.
이것이 대체 무엇인가.
이 말은 사실 염파와 아무 관계가 없다. 당나라 때 무착(無著) 선사가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났을 때, 이곳에 승려가 몇이냐고 물으니 보살이 답한 말이다. 앞의 삼삼, 뒤의 삼삼. 선종(禪宗)에서는 뜻을 딱 잘라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천 년이 넘도록 풀이가 분분하다.
관제영첨을 만든 사람이 왜 이 말을 염파의 시에 붙여 놓았는지도 알 수 없다. 전국시대 장군과 당나라 선사의 문답이 한 줄에 같이 앉아 있다. 논리로는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 첨이 현실에서 맞아 들어간 기록은, 논리 따위는 관계없다는 듯이 남아 있다.
등운탁(鄧雲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직 수재(秀才)일 때 관제묘에 가서 과거 운을 물었다. 뽑은 것이 이 63번 첨이었다.
전삼삼여후삼삼.
결과가 나왔다. 등운탁은 향시(鄕試)에서 3등으로 거인(擧人)이 되었다. 그리고 회시(會試)에서 9등으로 진사(進士)가 되었다.
삼삼(三三)은 셋 곱하기 셋이다. 구(九).
앞의 삼삼이 3등이고, 뒤의 삼삼이 9등이었다.
모수호(毛繡虎)라는 사람이 있었다. 역시 과거 운을 물으러 관제묘에 갔고, 역시 같은 63번 첨을 뽑았다.
전삼삼여후삼삼.
모수호의 향시 등수는 33등이었다. 진사 시험 등수도 33등이었다. 그리고 진사에 오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향년 33세.
앞의 삼삼이 서른셋, 뒤의 삼삼도 서른셋. 시험만이 아니라 수명까지 삼삼이었다.
세 번째 수재도 같은 첨을 뽑았다. 이 사람이 합격한 등수는 66등이었다.
전삼삼여후삼삼. 앞의 삼삼과 뒤의 삼삼을 더하면 육십육이다.
같은 첨이다. 같은 시다. 같은 "전삼삼여후삼삼"이다.
그런데 등운탁에게는 삼삼이 곱하기로 작동했고, 모수호에게는 숫자 자체로 작동했고, 세 번째 사람에게는 더하기로 작동했다. 읽는 방식이 사람마다 달랐다.
풀이가 먼저 있고 결과가 따라온 것이 아니다. 결과가 나온 뒤에야 그 풀이가 드러났다. 시험에 붙기 전에는 아무도 삼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몰랐다. 모수호가 33세에 죽기 전까지는 아무도 삼삼이 수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점(占)이라는 것이 이런 구석이 있다. 답이 먼저 나오고, 풀이는 나중에 붙는다. 그래서 잘 맞는 점일수록 미리 해석하기가 어렵다. 뜻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으면 맞힐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지고, 뜻이 열려 있으면 맞힐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지만 미리 읽어낼 수가 없다.
관제영첨을 만든 사람이 선종의 말을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인지, 아니면 운율을 맞추다 보니 끼워 넣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결과적으로 이 한 줄은, 고정된 뜻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어떤 결과든 받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었다.
점을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있다. 첨을 뽑는 것은 사람이지만, 어떤 첨이 떨어지는지는 사람이 정하지 않는다고. 등운탁이 63번 첨을 뽑은 것은 손의 힘이 아니었고, 모수호가 같은 번호를 뽑은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고.
그걸 무엇이라 부르든, 대나무 막대기 하나가 시험 등수와 수명까지 품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한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63번 첨을 뽑는 사람이 또 나타난다면, 그 삼삼은 또 어떤 모습으로 풀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