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乙)의 해에 덕을 쌓고 을의 해에 돌려받다
소주(苏州)에 동산엄씨(東山嚴氏)라는 집안이 있었다. 소주 토박이 명문 가문이다. 이 집안의 조상 가운데 엄유무(嚴有武)라는 사람이 명나라 말기에 이미 큰 부자였다. 그런데 청나라 순치(順治) 을유년에 소주 일대에 큰 재해가 닥쳤다. 엄유무는 가진 재산을 몽땅 털어 구호에 썼다. 그리고 파산했다.
그 손자뻘 되는 엄선(嚴選)이라는 사람이 다시 열심히 벌어서 큰 부자가 되었다. 돈이란 게 그렇다. 할아버지가 다 풀어도 손자가 악착같이 다시 모은다.
그런데 건륭(乾隆) 을해년에 소주에 또 큰 재해가 터졌다. 엄선도 할아버지를 빼닮은 사람이라, 역시 전 재산을 내놓았다. 쌀을 왕창 사서 죽을 끓여 굶주린 사람들을 먹였다. 횡령이 생길까 봐 남의 손에 맡기지도 않았다. 매일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직접 죽을 끓이고 직접 나눠 주었다.
그리고 역시 파산했다. 이 집안은 부자가 되면 한 번씩 다 풀어버리는 습성이 있는 모양이다.
다만 엄선은 할아버지에게 없던 것이 하나 있었다. 꿈이다.
파산 뒤 어느 날 밤, 엄선이 꿈을 꾸었다. 꿈에 누군가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네 집안은 두 번 다 을(乙)의 해에 덕을 쌓았으니, 앞으로도 을의 해에 좋은 보답을 받을 것이다.
꿈치고는 꽤 구체적이다. 보통 꿈에서는 복권 번호를 알려줘도 깨고 나면 기억이 안 나는 법인데, 이 꿈은 을이라는 글자 하나를 분명히 남겼다. 엄선이 이것을 마음에 새겼는지 흘렸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후로 벌어진 일은 기록이 남아 있다.
꿈을 꾸고 이십 년이 지난 을미년, 엄선의 아들 엄복(嚴福)이 진사(進士)에 급제했다. 진사는 조선으로 치면 과거 최종 합격이다. 집안이 파산해서 대가 끊기나 싶었는데 아들이 관직에 올라선 것이다.
또 이십 년이 흐른 을묘년, 이번에는 손자 엄영(嚴榮)이 진사에 급제했다. 세대를 건너뛰지 않고 아들, 손자가 줄줄이 합격하는 것도 드문 일인데, 합격한 해가 둘 다 을의 해라는 게 묘하다.
삼십 년이 더 지나 증손자 엄양구(嚴良裘)도 거인(擧人)에 올랐다. 진사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거인이면 지방에서 벼슬을 할 수 있는 자격이니 적지 않은 성취다.
기록에 따르면, 엄씨 가문에서 칠품 이상 관리로 나간 자제가 예순 명이 넘는다. 칠품이면 현재의 군수 급이다. 한 집안에서 군수급 이상이 예순 명. 파산한 집안이 맞나 싶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십 세기로 넘어와서, 1905년 을사년에 엄씨 집안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엄가순(嚴家淦). 강소성 오현, 지금의 소주 출신이다. 동산엄씨의 후손이다.
이 사람이 1975년 을묘년에 장개석 사후 중화민국 총통이 되었다. 을사년에 태어나 을묘년에 총통. 동산엄씨 가문이 벼슬길에서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였다.
대륙 쪽에도 같은 가문의 후손이 있다. 엄준기(嚴隽琪)라는 사람인데,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올랐다. 부국급 간부이니, 대륙 쪽에서도 엄씨 가문의 맥은 여전히 높은 곳에 닿아 있는 셈이다.
자, 정리하면 이렇다.
엄유무가 을유년에 전 재산을 풀었다. 엄선이 을해년에 또 전 재산을 풀었다. 그 뒤로 엄선의 아들이 을미년에 진사, 손자가 을묘년에 진사, 엄가순이 을사년에 태어나 을묘년에 총통이 되었다. 덕을 쌓은 해도 을, 보답을 받은 해도 을.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좀 겹치는 게 많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명리학의 관점에서 한 가지 짚을 것이 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는 주역(周易)의 말이다. 이 말이 그냥 예쁜 문장으로 머물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음덕(陰德)이라는 것이 개인의 사주 바깥에서 운명에 작용하는 변수로 고전 명리학에서는 분명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주는 태어난 순간의 배치다. 그런데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 수천 명이고, 그 수천 명이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가 적덕(積德)이다. 고전에서는 이것을 명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역으로 두었다. 팔자가 아무리 좋아도 덕이 없으면 복이 줄고, 팔자가 평범해도 덕이 쌓이면 복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엄씨 집안이 두 번이나 전 재산을 내놓은 것은, 계산해서 한 일이 아니다. 재해가 터졌으니 눈앞의 사람을 살린 것이다. 그것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직접 죽을 끓였다. 돈만 낸 것이 아니라 몸을 썼다. 적덕의 무게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들어간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 보답이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들, 손자, 증손, 그리고 이백 년 뒤의 후손까지 이어졌다. 고전의 여경(餘慶)이라는 글자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남는 경사. 한 세대에 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경사.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엄유무는 파산했다. 엄선도 파산했다. 전 재산을 내놓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두 사람 모두 본인의 생전에는 그 보답을 보지 못했다. 보답은 다음 세대, 혹은 그다음 세대에 와서야 나타났다.
적덕이라는 것이 이래서 어렵다. 내가 심은 나무의 그늘에 내가 앉지 못할 수도 있다. 그 그늘은 내 아들이, 내 손자가 앉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무를 심을 수 있느냐. 엄유무와 엄선은 심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요즘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개 이렇게 답한다. 그건 옛날이야기고, 나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쁘다고.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엄유무도, 엄선도 파산한 뒤에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쁘다고. 그런데 그 바쁜 와중에 다시 벌었고, 다시 쌓았고, 집안은 이백 년 넘게 이어졌다.
전 재산을 내놓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덕이라는 것이 복리(複利)로 돌아오는 물건이라면, 이자율이 확인된 계좌에 넣지 않을 이유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보면, 적덕은 가장 긴 시간축을 가진 투자다. 원금 회수 기간이 한 세대 이상이라는 점이 좀 불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