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품부인 팔자인데, 여덟 살에 죽었다?
한시승(韓是升)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젊었을 때 인상이 몹시 날카로웠다. 관상으로 보면 이런 얼굴은 본인 운도 험한데, 부인 복도 박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첫 번째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나중에 다시 장가를 들었다.
그런데 먼저 죽은 그 첫 번째 부인의 사연이 좀 묘하다.
이 여자는 병부시랑 장상지(蔣祥墀)의 딸이었다. 병부시랑이면 지금의 국방부 차관쯤 되니, 작은 집안은 아니다.
갓 태어났을 때, 장상지의 형 장서원(蔣西原)이 자기 식객 중에 명리(命理)에 밝은 사람을 불러서 조카딸의 사주를 봐 달라고 했다.
식객이 사주를 뽑아 한참 들여다보더니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격국(格局)으로 보면 일품부인(一品夫人)의 명(命)입니다. 그런데 일주(日柱) 쪽 충극(冲克)이 너무 심해서, 어려서 요절(夭折)할 팔자이기도 합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합니까?"
격국(格局)은 사주가 보여주는 그릇의 크기다.
일품부인의 격국이라면, 남편이 일품 고관이 되어 그 아내에게 고명(誥命)이 내려지는 자리다. 그릇 자체는 대단히 큰 셈이다.
문제는 일주(日柱)의 충극(冲克)이었다.
일주는 그 사람 자신이다. 일주가 심한 충극을 받고 있으면, 그릇이 아무리 커도 들고 있을 몸이 버티지 못한다.
일품부인이 되려면 살아서 시집을 가야 하고, 요절하려면 시집가기 전에 죽어야 한다. 둘 다 맞다고 치면 앞뒤가 안 맞는다.
장씨 형제도 그 말을 듣고는 그냥 넘겼다. 맞을 리가 없다고 본 것이다.
집안끼리 어울리는 한씨 집안과 어린 나이에 혼약을 맺었다. 그 시절에는 흔한 일이었다.
장씨의 딸은 여덟 살에 세상을 떠났다.
충극(冲克) 쪽은 맞았다.
그러면 일품부인이라는 격국(格局)은 어찌 된 것인가.
한시승은 자라서 고씨(顧氏)라는 여자와 혼인했다.
고씨는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남편에게 원래 약혼녀가 있었는데 혼례도 치르기 전에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권했다.
"혼례는 못 올렸지만 혼약은 했으니, 부부의 연분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친정에 그냥 두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예를 갖춰서 위패를 모셔 오세요. 우리 집안 부인으로 대접하는 게 도리입니다."
한시승이 반쯤 웃으며 받았다.
"그러면 그 사람이 본부인이고, 당신은 후실이 되는 건데?"
"이름뿐인 부부인데 뭐가 대수예요. 안 그러면 바깥에서 우리 집이 예를 모른다고 수군거릴 겁니다."
한시승은 장씨 집에 가서 혼례 절차를 밟고, 세상을 떠난 장씨를 자기 본부인으로 올렸다.
세월이 흘렀다.
한시승의 둘째 아들 한봉(韓崶)이 형부에서 벼슬길에 올라, 형부상서(刑部尚書)까지 갔다. 지금으로 치면 법무부 장관쯤 되는 자리다.
황제가 한봉의 공을 치하하면서, 부모에게 일품(一品)의 영예를 내렸다.
한시승은 평생 큰 벼슬을 한 적이 없다. 아들 하나 덕에 느닷없이 일품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본부인 자리에 올라 있던 장씨에게도, 일품 고명(誥命)이 내려졌다.
여덟 살에 죽은 아이가, 수십 년이 지나서 일품부인이 되었다.
격국(格局)은 자리의 크기를 보여주고, 일간(日干)의 강약은 그 자리를 감당할 힘을 보여준다. 이 두 가지는 같은 사주 안에 있지만, 서로 다른 축이다.
장씨의 사주에는 일품부인이라는 자리가 분명히 열려 있었다. 다만 일주(日柱)의 충극이 너무 심해서, 그 자리에 앉을 몸이 먼저 꺼졌다.
그런데 자리는 비어 있었을 뿐, 사라지지는 않았다.
고씨의 한마디가 빈자리로 가는 길을 열었고, 한봉의 출세가 그 자리를 채웠다.
식객이 봤던 격국도, 충극도, 둘 다 틀리지 않았다.
다만 둘이 한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사주를 펴 놓고도 그려지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