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이야기, 공사를 잘못 시작해 주인과 일꾼이 나란히 다치다
앞서 신혼집을 고치다가 새 며느리가 목숨을 잃은 이야기를 했다. 그 집은 문에 손을 댄 경우였다.
그런데 구량성(九良星)이 문에만 앉는 것은 아니다. 기둥, 들보, 서까래, 벽, 마당의 흙까지 공사가 닿는 자리는 모두 이 살(煞)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문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같은 송나라 때, 절강 동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동려는 부춘강이 흐르는 고을이다. 후한의 엄자릉이 벼슬을 마다하고 낚싯대를 드리웠다는 조대가 있는 그 강이다. 물 좋고 산 좋은 자리인데, 그 물과 산이 여름마다 태풍을 함께 데려온다.
이 고을에 주선각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의 집은 문이 아니라 대청 기둥이 문제였다. 기둥뿌리가 썩어 들어가 집이 주저앉기 직전이었다. 사람을 불러 대청을 손보기로 했다.
그런데 풍수를 보는 사람이 와서 말렸다.
올해는 대청 자리에 구량살이 들었습니다. 지금 손을 대면 주인에게 이롭지 않습니다.
주선각은 성격이 곧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로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아주 현실적인 사정도 있었다. 절강은 해마다 태풍이 올라오는 땅이다. 기둥이 썩은 집을 그대로 두고 태풍을 맞으면 집이 통째로 날아간다. 살이 무섭다고 손을 놓고 있다가 지붕이 내려앉으면 그게 더 큰 화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꺼림을 범하기로 하고 일꾼을 불렀다.
먼저 탈이 난 쪽은 주인이 아니라 일꾼이었다.
목재를 다듬다가 두 사람이 말다툼을 시작했다. 손에는 각자 연장이 들려 있었다. 말이 험해지더니 도끼를 들고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한 사람은 손가락이 잘려 나갔고 피가 멎지 않았다.
주선각이 뛰어들어 뜯어말리고, 의원을 부르러 사람을 보내고, 상처를 붙들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보냈다.
땀에 절어 몸이 말이 아니었다. 물을 데우게 해서 목욕을 했다. 그 시절 목욕이라는 것은 큰 나무통에 더운물을 채우고 그 안에 들어가 앉는 방식이다.
씻고 나오려는데 통 가장자리를 짚은 손이 미끄러졌다. 몸이 그대로 넘어가면서 오른쪽 옆구리가 통 테두리에 부딪혔고, 오른손은 한 치가 넘게 찢어졌다. 통증이 심했다.
다행이라면 의원이 아직 집에 있었다는 점이다. 일꾼 손가락을 치료하던 의원이 그 길로 주인을 치료하게 되었다. 그날 한 집에서 두 사람이 같은 의원에게 상처를 맡겼다.
약을 먹고 정신이 흐릿한 채로 누웠다가 주선각은 꿈을 꾸었다. 꿈에 누가 나타나 그를 나무랐다.
나는 본래 잘 지내고 있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일부러 이렇게 건드리는가. 원래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일이지만, 그대가 평소 선을 행하는 사람이고 남에게 못된 짓을 한 적이 없으니 기회를 하나 주겠다. 집 서남쪽 구석에 흰죽 일곱 그릇과 과일 일곱 접시를 차리고, 차와 술과 향과 종이를 함께 올려라. 그러면 이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를 지켜보아라.
깨어난 주선각은 후회했다. 곧바로 제물을 차리고 공사를 멈추게 했다.
그 뒤 상처는 아물었고, 집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짚어볼 대목이 몇 있다.
하나. 왜 주인보다 일꾼이 먼저 다쳤는가. 흙과 나무에 직접 손을 대는 사람이 그 자리의 기운을 가장 먼저 받는다. 게다가 그들이 쥔 것은 도끼와 톱, 금(金)의 연장이다. 살이 앉은 자리에서 쇠붙이가 오가면 그 기운이 향하는 곳은 사람의 몸이 된다. 다툼은 원인이 아니라 통로였다. 목재 하나 놓고 벌인 시비가 도끼질까지 간 것을 보면 그날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정상적인 판단을 하고 있지 않았다.
둘. 주인은 공사장에서 다치지 않았다. 목욕통에서 다쳤다. 살을 범해서 생기는 일은 공사 현장 안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그날 그 집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동작 하나가 사고로 바뀐다. 미끄러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하필 그날 하필 그렇게 넘어졌다.
셋. 꿈속의 말이 흥미롭다. 나는 본래 잘 지내고 있었다. 이 한마디가 동토(動土)의 이치를 그대로 담고 있다. 살은 사람을 찾아다니며 해치는 것이 아니다. 제자리에 앉아 있던 것을 사람이 건드려서 일이 벌어진다. 우리말에 동티가 났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 동티가 바로 동토가 변한 말이다. 땅을 잘못 건드려 탈이 났다는 뜻이 우리 입말에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넷. 왜 하필 서남쪽인가. 서남은 곤방(坤方)이다. 팔괘에서 곤은 땅이다. 땅에게 사죄하는 제물을 땅의 자리에 차리라는 말이다. 방위를 아무렇게나 고른 것이 아니다.
다섯. 이 사람은 봐준 이유가 명시되어 있다. 평소에 선을 행했고 못된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 택일을 어긴 잘못은 그대로였지만, 살아온 이력이 형량을 깎았다. 풍수와 택일을 다루는 옛 기록에서 이런 대목은 드물지 않게 나온다.
여섯. 결국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주선각이 공사를 밀어붙인 이유는 태풍이 오면 집이 날아간다는 것이었는데, 공사를 멈추고도 집은 버텼다. 급하다고 판단한 그 급함이 실제로는 그만큼 급하지 않았던 셈이다.
중국에는 태세 머리 위의 흙을 파지 말라는 말이 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다는 뜻으로 지금도 쓰는 관용구다. 이 말이 관용구로 남아 있다는 것은, 그것을 건드린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둥이 썩었는데 올해는 손대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태풍은 오는데 공사는 못 한다. 옛사람들이 이럴 때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면,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자리를 옮겨 임시로 받치거나, 살이 앉지 않은 방위부터 손을 대거나, 해가 바뀌는 절기를 기다리는 식이었다.
주선각은 그 어느 쪽도 묻지 않았다.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바로 하겠다고 답했다.
말린 사람에게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한마디만 더 물었다면, 그날 그 집에서 도끼가 오갈 일도, 목욕통에서 넘어질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