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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오공혈, 땅을 너무 깊이 판 사람의 이야기
남송 시대, 악비라는 명장 밑에 호굉휴라는 부하가 있었다.
그는 악비를 따라 양요라는 반란 세력을 토벌했던 사람인데, 악비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자 세상에 마음이 식어버렸다.
그래서 고향인 무원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살았다.
호굉휴에게는 사수지라는 오랜 벗이 있었다.
이 사람도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고는 호굉휴를 따라 시골로 내려와, 그 집에서 글 가르치는 선생 노릇을 하며 무려 십 년을 함께 지냈다.
어느 날 호굉휴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사수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 수십 년인데, 그동안 자네 신세를 많이 졌네. 갚을 길이 없었는데, 마침 내가 풍수를 좀 볼 줄 아니, 이번 장례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네."
호굉휴는 깜짝 놀랐다.
십 년을 함께 산 친구에게 그런 재주가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명당이라는 것의 정체
호굉휴가 물었다.
어디에 어머니를 모시면 좋겠느냐고.
사수지의 대답이 의미심장하다.
"그 자리는 내가 마음속에 오래전부터 점찍어 둔 곳이 있네. 바로 자네 집 옆 동산 위일세."
그는 어느 땅을 사야 하는지, 그리고 그 맞은편의 안산(案山)까지 짚어 주었다.
여기서 풍수 용어 두 가지를 짚고 가자.
혈(穴)은 땅의 기운이 모이는 한 점을 말한다.
집을 지을 자리, 무덤을 쓸 자리, 그 핵심 지점이다.
안산(案山)은 그 혈 앞에 마주 보고 있는 산이다.
책상 안(案) 자를 쓴다.
주인이 앉으면 앞에 책상이 놓이듯, 혈 앞에 단정하게 자리 잡은 산을 그렇게 부른다.
안산이 좋으면 그 혈의 격이 올라간다.
사수지가 말했다.
"이 자리는 비천오공(飛天蜈蚣), 곧 하늘을 나는 지네의 형국일세. 맞은편은 두꺼비의 형국이고."
지네가 두꺼비를 마주 보는 구도.
땅의 생김새를 동물에 빗대어 읽는 것을 형국론(形局論)이라 한다.
산줄기와 물길이 어떤 짐승의 모양을 이루느냐로 그 땅의 성질과 기운을 가늠하는 방식이다.
사수지의 예언은 구체적이었다.
여기에 모시면 오 년 안에 세 사람이 벼슬을 하고, 십오 년 안에는 물의 기운을 타고난 사람이 황실과 인척이 되며, 사십 년 뒤에는 이런 일이 있고, 육십 년 뒤에는 귀한 인물이 난다고 했다.
다만 한마디 단서를 달았다.
"이 땅에는 신령이 지키고 있네. 반드시 법(法)을 써서 도모해야 하고, 길일을 골라야 하네. 자네가 머리를 풀고 앞장서면, 내가 검을 들고 뒤를 따르겠네."
신령이 지키는 땅을 함부로 건드리면 탈이 난다.
그래서 의식을 갖추어 땅에 미리 알리고 들어간다.
이것이 풍수에서 말하는 동토(動土)의 절차다.
땅을 움직이기 전에 땅의 주인에게 예를 차리는 것이다.
땅을 파던 날
문제의 그 땅은 호굉휴 이웃집 소유였다.
호굉휴는 오천 전을 주고 땅을 샀고, 다시 천 전을 들여 마을 사람 전부를 불러 증인으로 세웠다.
뒷말이 나오지 않게 일을 깔끔히 한 것이다.
그러고는 산에 올랐다.
사수지가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이 점일세. 다만 도술을 아는 사람이라야 풀을 베고 관을 내릴 수 있네."
그래서 마을의 무당인 낭이라는 사람을 불러 그 일을 맡겼다.
땅을 파기 시작했다.
흙을 파던 인부가 백여 명이었는데, 그중 절반이 집에 돌아가 정신을 놓는 병에 걸렸다.
열여섯 명은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졌다.
풀을 베러 올라갔던 무당 낭이도 죽었다.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땅 한 번 팠다고 사람이 이렇게 죽어 나가니, 이 자리는 흉지가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그런데 호굉휴는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했다.
이렇게 별난 땅이라면, 분명 무언가 대단한 기운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죽거나 다친 인부들에게 넉넉히 위로금을 주고, 공사를 계속 밀어붙였다.
심지어 직접 산에 올라 감독했다.
세 여인의 꿈
그날 밤 호굉휴는 꿈을 꾸었다.
흰옷을 입은 세 여인이 나타났다.
자태가 신선처럼 가벼웠다.
그들이 말했다.
"이곳은 우리 집입니다. 당신이 빼앗아 무덤을 쓰려 하니, 이래서는 안 됩니다."
호굉휴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건 사 선생이 가르쳐 준 자리다. 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효도다. 여기가 너희 집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재앙을 내리고 싶거든 마음대로 해라. 나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여인들과 호굉휴는 몇 번을 주고받았다.
결국 여인들이 한발 물러섰다.
"우리가 사는 곳은 당신 무덤 자리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입니다. 사 선생이 이미 말한 일이니 우리도 양보하겠습니다. 다만 우리를 한데에 드러나게만 하지 말아 주십시오."
호굉휴가 꿈에서 깨어 사방을 살폈다.
과연 낡은 사당 하나가 있었다.
그 안에 여신상 셋이 있었는데, 꿈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호굉휴가 이 일을 사수지에게 전하자, 사수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내 실수일세. 아무래도 나에게 화가 미칠 듯하네."
사수지는 반 리쯤 떨어진 곳에 새 사당을 지어 세 여신을 옮겨 모셨다.
그리고 무덤 자리를 팔 때는 자기 잘못이 더 커질까 두려워, 더는 일에 끼어들지 않았다.
석어 세 마리
이제 호굉휴가 직접 굴착을 지휘했다.
그런데 그만 너무 깊이 파고 말았다.
보통 무덤은 한 길 남짓 판다.
그는 세 길, 그러니까 십 미터 가까이 파 내려갔다.
그 아래에서 돌로 된 물고기 세 마리가 나왔다.
게다가 산 물고기 한 마리가 그 안에서 펄떡 튀어나왔다.
땅속 깊은 곳에 깃들어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수지는 이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더는 머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듬해, 그는 끝내 황산에서 숨을 거두었다.
땅이 가르쳐 준 것
호굉휴 집안은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동생과 조카뻘 되는 이들 가운데 벼슬을 한 사람이 셋 나왔다.
아들 하나는 송 황실 종친인 조씨 집안의 여인을 아내로 맞았으니, 황실 인척이 된 셈이다.
여기까지는 사수지의 예언과 얼추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거기서 멈췄다.
땅을 너무 깊이 판 탓에 돌물고기까지 끄집어내어,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왕성한 기운이 새어 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나도록 크게 떨치지는 못했다.
큰 벼슬을 한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호씨 집안에는 그때부터 글을 좋아하고 책을 가까이하는 기풍이 자리를 잡았다.
무원 땅에서 수백 년을 이어 가는 큰 가문이 되었고, 그 세가 오래도록 꺾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십일 세기 초, 휘주 호씨 가문에서 마침내 천하를 들썩이게 한 인물이 나왔다고 한다.
다만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다.
땅의 기운은 그릇과 같다.
그릇에 물을 담을 때, 알맞은 깊이가 있다.
호굉휴는 명당을 얻고도 자기 손으로 그 깊이를 넘어섰다.
지네가 하늘을 날아오르려던 자리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기에 세 길을 파 내려갔을까.